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능선오름 Jul 22. 2024

라면 연대기 40

라면 연대기 40     


라 군은 물끄러미 노랗고 번쩍이던 황금색이 허옇게, 부분적으로는 거뭇하게 변해버린 냄비를 들여다보았다.

‘양은 냄비’라고 불리는 냄비는 오랜 세월에 여기저기가 살짝 우그러지고,

금색처럼 보이던 겉 색상이 세월의 흐름만큼 깎여나가 이제 거의 은색. 은색이라기에는 좀 뭣한 탁한 알루미늄 색으로 변해 있었다.

자신의 신세가 어쩐지 낡은 양은냄비라고 문득 생각이 들었다.

그 안에 담긴 라면은 불그죽죽한 국물 위에 구불구불한 면발이 팅팅 불어서 마치 대전역 플랫폼에서 파는 맛없는 우동 가락처럼 보였다,

녹색, 갈색, 하얀색의 정체불명의 건더기들도 불어서 묵직하게 국물 위에 떠 있었다.

라 군은 어린 시절부터 어지간히 라면을 좋아했었지만,

몇 달간을 줄곧 라면으로 저녁을 때우다 보니 라면 끓이는 냄새만 맡아도 좀 식욕이 떨어졌다.

좋아서 먹는 것과,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먹는 것은 분명 달랐다.     

사실 식욕이 떨어진 것은 라면의 문제만은 아닐 수도 있었다.

이 주간의 경계태세를 마치고 병촌으로 돌아온 라 군에게 그 기간 동안 영애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부터 입맛이 싹 달아났다는 게 맞았다.

처음 마담에게 그 이야기를 듣고서 라 군은 설마 했었다.

무슨 일이 있었을 거다.

소식을 알리지 못한 건 내가 부대 안에서 대기를 했기 때문일 거다.

자신이 영애에게 돈을 준 것으로 얼추 빚은 갚을 수 있었을 텐데 굳이 그런 방식으로 도망치지는 않았을 거다.

이런 식으로 라 군은 영애를 믿었다.

믿으려고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좁디좁은 병촌에서 영애가 여기저기서 돈을 빌렸고,

그 빌린 돈들까지 들고 사라져 버렸다는 소문을 듣고 나서는 라 군도 어느 정도 인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고의건 아니건, 라 군에게 더 말 못 한 어떤 사정이 있었건,

영애가 라 군에게 받은 돈에 더해서 다른 돈들을 마련해서 이 병촌을 탈출했다는 것을.   

  

아무리 쪼들려도 가끔 외식을 못 할 정도로 라 군이 궁핍하진 않았다.

어쨌든 영내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방법을 쓰다 보면 어느 정도 빚을 갚아가면서도 약간의 여유는 있었으니까.

물론 라 군에게 '여유'라는 것은 쥐꼬리 만한 하사 월급의 재정적 여유가 아닌, 그래도 가끔 짜장면이나 순대국밥 먹을 돈은 있었다는 의미다.

그렇지만 라 군은 매일 라면 한 개로 저녁을 때우곤 했다.

그것이 어설픈 동정심과 무모한 베풂으로 빚어진 배신감에 대한 속죄라고 생각했다.

매일매일 지겹게 라면을 먹으면서, 뭔가 이런 행위를 통해 자기 자신의 태만하던 마음에 벌을 주고 반성을 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일종의 종교 행위처럼 되어버렸는데, 

그러다 보니 라 군이 그토록 좋아하던 라면은 이제 곤욕에 다름없었다.

다행히 부대 PX에서 라면을 구매하면 간부라는 조건 덕분에 싼값에 구할 수는 있었으니까.     


매일 아침이면 조금 일찍 출근해서 병사들의 아침 식사에 끼어 대충 아침을 먹고,

점심이면 간부식당에서 나오는 밥을 먹고,

저녁에 근무가 있을 때는 아침과 마찬가지로 병사들의 식사를 끼어서 먹고,

아니면 자취방에 와서 라면을 끓여 먹고는 티브이에 시선을 고정하다 잠든다.

차라리 단체로 훈련을 나갔을 때는 괜찮았다.

좋건 싫건 아침, 점심, 저녁을 먹는 행위도 훈련 일정의 ‘일과’였으니까.

어느 순간부터 라 군은 먹는다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행위가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산다는 것이 먹는다는 것조차  버거울 때가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하사관학교에서 훈련을 받을 때 라 군은 인간은 먹기 위해 사는 동물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늘 배가 고팠다.

식판이 넘쳐흐를 정도로 가득 배식을 받고도 모자라 추가로 밥을 더 얹어 먹어도 밤에 잠이 들려고 하면 늘 배가 고팠다.

야간 불침번 근무가 있는 시간이면 자다 일어나서 총알도 없는 빈 총을 들고 복도와 행정반을 서성이곤 했는데,

교육을 담당하던 교관들은 야간에 당직사관을 하면서 후보생들을 시켜서 라면을 끓여 먹곤 했었다.

늘 배가 고픈 피 교육생 처지에서,

졸음을 참아가며 불침번을 서면서 자신은 먹지도 못하고 남이 먹을 라면을 끓여 갖다 바치는 것은 고역이었다.     

어떤 당직사관도 라면을 끓여 오는 후보생에게 라면을 나누어 주는 일은 없었다.

불침번을 서는 후보생은 당직사관에게 라면을 끓여다 바치고,

남은 국물을 버리고 식판을 닦는 게 부가적인 임무였으니까.

라면에 대한 유혹을 참지 못해서 이따금 식판을 닦으러 가다가 몰래 바닥에 남은 국물을 홀짝거리던 경우도 없지 않았다.

라 군도 그리하다가 언젠가 당직사관에게 걸려서 죽지 않을 정도로 얻어맞은 적도 있었으니까.

당직사관의 발길질에 몸을 맡긴 채 라 군은 생각했었다.

인간이 왜 군대에 들어오면 이렇게 별 것 아닌 먹을 것에 집착하는지.

그리고 자신이 자대에 배치되어 영외거주를 하게 되면 원 없이 라면을 먹어보겠노라고.

그랬는데.     

이제 라면이 도리 없는 삶의 수단이자 일종의 자신에 대한 ‘벌’이 되자 라 군은 그토록 좋아하던 라면이 싫어져 버렸다.

덩달아 그가 영애에게 품고 있던 어린 시절의 풋풋한 기억마저도 돌이키기 싫은 나쁜 기억으로 서서히 변해갔다.

추억은 악몽으로 나타나고, 이어서 증오로 서서히 진화되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라면 연대기 39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