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
울트라매니아 11
나를 대표가 직접 부른 일은 요 근래 몇 년간 처음이었기에 조금 긴장을 했다.
아침 출근하자마자 회사 로비엔 인사발령을 알리는 공고가 붙어 있었으나,
나와는 무관한 일들이었기에 아예 들여다보지도 않았는데 아는 사원이 과장님 영전 축하드린다는 말에 무슨 일 인가 싶었다.
그곳에는 몇몇의 승진 내용과 함께 내 이름 석 자가 붙어 있었다.
‘ 영업팀 우둔호 과장 명 마케팅팀 홍보담당 부장 ’
여남은 명의 직원들이 주변에서 축하한다는 말을 했지만 나는 찝찝했다.
전혀 해 본 일도 없는 부서에, 게다가 부장 이라니.
이사급 팀장 바로 밑 직책인데 그곳에는 나와 스펙 비교 자체가 안 되는 부하직원이 즐비한데.
영업에서 버티니 이런 식으로 승진시키는 척하면서 알아서 퇴사하기를 종용하는 건지.
그렇지만 저렇게 공식적으로 나온 인사이동을 거부할 방법은 없었다.
하다못해 지방 영업소로 가라 해도 가야 하는 게 내 입장이었으니까.
그렇게 대충 짐 정리를 하고 마케팅 팀에 가서 어색하게 자리를 잡았다.
부장이라고 별도 칸막이로 구분되어 있는 자리라 갑자기 용이 된 느낌이긴 했지만,
그 자리가 내 프라이버시가 아닌 타 직원들과 완전히 격리된 공간에 가깝다는 걸 보니 좋은 의도로 느껴지진 않았다.
정작 마케팅 팀장은 내가 사무실로 인사를 갔을 때 눈은 웃지도 않는 입매만 살짝 올리는 웃음기로 나를 맞았다.
그러면서도 정작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아니면 하다못해 면담 비슷한 것이라도 하지 않는다.
마케팅 팀장인 그녀가 내게 해 준 말은 딱 한 마디.
" 소속은 우리 팀 맞지만 우 부장님은 앞으로도 대표님이 직접 업무 지시를 내리기로 했으니,
그냥 사무실에서 대기하세요. "
딱 한 마디로 나를 맞고 내보내는 마케팅 팀장의 눈초리는 마치 혐오하는 벌레를 보는 것 같았다.
내게 주어진 사무실은 꽤 괜찮았다.
물론 생수기와 복사기 곁의 자리에 비견할 자리가 있을까 싶긴 하지만,
꽤 넓은 책상과 의자.
커다란 모니터의 컴퓨터.
굳이 물을 찾으러 갈 필요도 없을 개인 생수기.
아주 크진 않아도 밖이 내다 보이는 창문.
그리곤 아무 업무도 없었다.
팀장의 지시대로라면 대표가 나를 불러줘야 하지만 조용했으니.
내가 대체 대표와 직접 업무를 할게 뭐가 있나? 싶다.
창업 초기에야 한 개 사무실에서 부대끼던 입장이지만 인원수가 10명을 넘어서부터 대표가 내게 직접 지시하는 것이라고는 늘 구두를 닦아오라던가 아이 하교를 대신 챙기라거나 사모님이 장을 보는 데 따라다서 짐을 들어주라거나 거의 하인과 같은 일뿐이었는데.
것도 얼굴을 마주하는 게 아닌 일방적인 문자로 말이다.
그렇다고 그런 심부름을 본격적으로 시키려고 부장 타이틀을 달아주며 월급을 올려주진 않을 텐데.
그런데 대표가 호출을 한 것이다.
그것도 몇 년 만에.
노크를 하고 대표실에 들어서자 과장된 몸짓으로 대표가 호들갑을 떨며 책상 앞 응접 소파에 앉으라고 손짓을 했다.
근 오십 평 가까운 공간에 무겁게 보이는 고급 수입가구와 두텁고 묵직한 가죽 소파들과,
요란한 페르시아 양탄자로 이루어진 대표실은 첨단 게임 개발 업체 대표실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부동산 개발업자들의 사기성 사무실에 가까워 보였다.
게다가 오랜 기간을 함께 일을 해 왔기에,
대표가 저리 호들갑을 부릴 때면 대개 뭔가 거부할 수 없는 부탁
–실제로는 지시-을 하기 위한 시동을 거는 행동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어정쩡한 자세로 소파 끄트머리에 허리를 곧추 세우고 앉아있는 사이,
대표는 인터폰으로 비서에게 커피를 시키고 – 물론 내 의향 따윈 묻지 않는다 –
나이에 비해 훨씬 젊어 보이는 얼굴을 뻣뻣이 들고 소파에 앉아 과장된 몸짓으로 깊숙하게 기대었다.
대표의 눈이 렌즈라도 낀 것처럼 번들 거렸다.
무섭다.
저럴 때 대표는 뭔가 엄청난 아이디어 혹은 큰 투자를 앞두고 있을 때란 것을 알기에.
아니나 다를까. 대표는 상상하지도 않았던 말을 꺼냈다.
대표가 꺼낸 아이디어는 황당 하다못해 어이가 없을 일이었다.
우부장. 너 자신도 나도 이유는 모르지만 갑자기 슈퍼맨처럼 네 몸이 변한 거 알고 있다.
힘이 세진 건 아니지만 물리적 충격이나 화학적 공격으로도 멀쩡 타는 걸.
그래서 이십층서 뛰어내려도 피 한 방울 안 난다는 걸.
그게 무슨 쓸모가 있을까.
죽지 않는다는 거 빼곤 날아다니는 것도, 힘이 세진 것도 아니니.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지만 대표는 내가 외부의 충격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몸뚱이로 변한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회사에서 쓰자고 제안을 하는 거다.
회사가 마침 게임 회사이고 하니 홍보모델 같은 걸 해 보라는 거였다.
물론 볼품없는 얼굴과 몸매를 앞세운다는 건 불가능 하니,
이벤트 성으로 ‘불멸의 사나이’ 같은 퍼포먼스를 동원해서 회사 게임도 홍보하고 세간의 주목을 받자는 것.
말하자면 대학 축제 같은데 등장하는 물 풍선을 맞아주는 인간 이라거나,
전직 권투선수가 팔을 묶고 관객들의 주먹질을 버티는 따위 이벤트를 하자는 거였다.
물론, 그 강도는 달라서 실제 죽어 마땅한 상황들을 만들고 끝없이 살아나는 걸 보여줘서,
고객들의 호응을 이끌어내고 회사의 이미지를 높이며 매출을 올리겠다는 거였다.
그로 인해서 생기는 유튜브 트래픽은 당연하게 부차적 수입이 될 것이고.
내게 대한 처우는 앞으로는 임원급 이상으로 해 줄 것이니.
이게 대표가 내게 꺼낸 제안 아닌 강요였다.
근데.
솔깃한 제안이긴 한데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내가 정말 죽지 않는 몸이 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