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되니 감사한 마음이 크다. 한 해 동안 감사한 분들에게 카드를 써야지 하고 생각하니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아들의 담임선생님이었다. 나는 미리미리 예쁜 감사카드를 고르고 골라 사놓았다. 그리고 컴퓨터에 미리 글을 쓰고 고치고를 반복한 후, 내가 가장 좋아하는 펜으로 한 자 한 자 정성 들여 카드에 적었다. 여름에 찾은 네 잎클로버도 하나 붙였다.
엄마로서의 나는 그다지 멋지지 않다. 오늘도 남편에게 제발 아들에게 그만 집착하라는 충고를 들었다.
아들에게 이 닦으라고 했을 뿐인데... 이를 닦으라고 하면 그뿐 실제 이를 닦든 안 닦든 그건 걔의 일이라는 것이다. 남편은 그게 된다. 정말 신기한 사람이다. 남편은 아들이 칫솔을 입에 꽂고 자도 화가 안 난다고 한다. 나는 저녁을 먹고 바로 이를 닦으라고 10년 넘게 얘기하지만 아들은 더 먹을 것이라며 이 닦기를 거부한다. 그러다 졸리면 그냥 자거나 자기 직전에 이를 닦는다. 그러다 한 번씩 침대에 누워 치약이 묻은 칫솔을 입에 꽂고 그냥 잔다. 내가 화장실에 가서 뱉으라고 하면 번뜩 눈을 떠서 자신은 계속 닦고 있는 거라며 빽 하고 소리를 지른다. 속이 터진다. 부글부글해서 안방으로 돌아갔다가 한참 뒤에 방으로 가 보면 여전히 입에 칫솔이 꽂혀있다. 남편은 입안에 치약 거품이 보글보글 올라오고 있어도 아이가 자면 그냥 돌아온다. 방 밖으로 나와 난동만 부리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다 괜찮다고 한다. 나는 칫솔이 목구멍을 뚫는 것은 아닌지, 양칫물이 기도로 넘어가는 것은 아닌지, 최소 입 밖으로 새어 나와 빨아놓은 침대 시트와 패드를 다 더럽히지 않을까 신경이 쓰인다. 좀 미리미리 닦으면 좋을 텐데 어쩌자고 저 지랄인지 분노가 치민다.
아들을 나의 소유물로 생각하고 존중하지 않는 태도인가, 아니면 교육의 일환인가? 솔직히 까놓고 말하면 교육이라는 핵심은 있으나 내가 옳다고 믿는 생각이 관철되지 않을 때 내 마음은 이미 계엄상태다. 아들의 자유를 짓밟고 싶다. 하지만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국민인 아들은 불합리한 계엄을 앉아서 호락호락당해주지 않는다. 탱크도 밀어버릴 야수 같은 놈이라는 것을 알기에 마음만 그렇고 현실은 깨갱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마음이 어떻든 혼자 방으로 들어가 화를 삭이는 것뿐이다. 물론 참지 못하고 비아냥 거리다 결국 으르렁 거리는 아들 앞에 또 깨갱하고 방에 숨는다. 남편은 세상 편한 얼굴로 이미 잠들어 있다. 어라 웃고 있네. 얄밉다. 남편의 넓은 이마를 (살짝) 깨물었다. 얼굴을 조금 찡그릴 뿐 굳이 눈을 뜨지 않는 전략을 구사한다.
오늘 새벽 한 시의 일이었다.
그냥 평범한 한국 가정의 일이라고 믿고 싶다. 공부도 못 시켜, 편식도 못 막아, 여행도 같이 못 가. 이제는 이를 닦지 않는 것도 존중해줘야 할 일이라니! 제기랄! 새삼 오은영이 밉다. 병원비도 내가 내고 학원비도 내가 내고 밥도 내가 하고 설거지도 내가 하고 청소도 내가 하는데! 성인이 될 때까지 저 야수를 책임져야 하는 것은 나인데! 의무는 넘치고 권리는 없다.
이 어려운 일을 함께 나누는 사람, 그분이 바로 아들의 담임선생님이다. 내가 올해 다른 어떤 규칙보다 철통같이 지켜온 규칙이 등교시간이었다. 아들이 학교만 가면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다. 학교에는 나에게는 그 어느 위인보다 훌륭한 담임 선생님이 계셨다. 아들의 말에 따르자면, 선생님은 공정하고 화를 내지 않는 분이라고 했다. 세상에! 나의 아들의 24가지 다른 버전의 어린 청소년과 함께 있으시면서도 화를 안 내다니 믿을 수가 없다. 게다가 공정하다니, 정말 대단한 분이다. 심지어 중학교 대비를 위해 필기 방법을 가르쳐 주시고, 사비와 개인시간을 들여 학업준비를 해주셨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 내가 집에서 때때로 부족한 엄마였어도 학교에서 선생님들께서 아들을 바르게 키워주신다는 믿음이 있었다. 나에게는 세상 든든한 미드필더 같은 분들이다. 물론 모든 선생님들이 그렇지 않았을지라도 많은 분들이 그랬고, 그래서 아들이 학교에서 특별한 사고없이 잘 적응하고 다녔다고 믿는다. 아들의 초등학교 선생님들은 엄마인 나의 부족함을 채워 아이를 키워주신 분들이셨다. 그래서 매년 부디 내년에도 훌륭하고 따뜻한 선생님을 만나 많이 사랑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나는 빌고 또 빈다.
오늘 아침 선생님께 드리는 카드를 아들에게 쥐어 보내며, 선생님 꼭 갖다 드리라고 했는데... 아들이 가방에 그대로 넣어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행이다. 아들이 다시 가서 드리고 온단다. 휴...
화요일의 감사
- 엄마의 부족함을 채워주신 선생님들이 계셔서 아이가 무탈하고 건강하게 성장한 것 같습니다. 제가 좀 잘못해도 선생님들이 채워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학교에 보냈습니다. 그 무엇으로도 감사함을 다 담을 수 없지만... 진심으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