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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li Whale Apr 03. 2023

R. 나를 위해 남을 이해하기

분노 다스리기 3탄

상담에서 처음에 절대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습니다. 상담에서 뿐만 아니라 생활 속에서도 '이 말'이 먼저 나오면 부모님, 아내나 남편, 아이, 친구들에게 욕을 먹을 수 있거든요.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말로 "넌 누구 편이냐?"가 있습니다. '이 말'은 상대가 욕하는 대상을 두둔하는 말이죠. 엄마가 화가 나서 아빠 욕을 하는데, 아빠를 두둔한다든지, 아내가 시어머님에 대해 서운했던 얘기를 하는데 남편이 시모의 입장에서 얘기를 한다든지 하게 되면 작은 일도 큰 가족싸움이 될 수 있습니다.  


상담을 하면 혼자 힘들어서 오는 경우보다는 사람들 속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힘들어서 상담실에 오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 경우 초반에는 그 힘듦을 충분히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과정이 정말 중요합니다. 상담이 누군가와 편을 나누는 활동은 아니지만, 상담사가 자신을 진심으로 이해해 주고 자신의 편에서 듣고 말한다는 믿음을 받지 못하면 어렵게 상담실에 온 마음은 조개처럼 꼭 닫히게 됩니다. 그래서 상대에 대한 이해의 노력, 그 이해를 돕기 위한 말들은 내담자와 신뢰로운 관계가 되었을 때 비로소 할 수 있는 말입니다.  


그런데 왜 남을 이해해야 할까요? 


TCI는 C.R. Cloninger의 심리생물학적 인성모델에 기초한 성격검사입니다. 이 검사의 특징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기질적인 특징과 후천적으로 발달되는 성격을 구분해서 설명해 준다는 것입니다. 기질은 잘 바뀌지 않기 때문에 알고 이해하는데 목적을 두고, 성격은 현재 보다 더 노력하여 성장하는데 목적을 둡니다. 남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은 '연대감'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인간의 성격에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자율성'도 중요하지만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잘 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잘 공감하며 타인과 자신의 가치를 조율하고 타협하는 능력도 매우 중요합니다. 연대감이 떨어질 때, 인간은 사회적으로 성공하기 어려울 수 있고,  자기중심적이 되어 외로워집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상황을 이해하려 하지 않으면 나만 옳은 사람이 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한심하고 이기적이며 나에게 해를 끼치려 한다고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화가 난 사람에게 첫 번째는 그 화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줄 필요가 있다고 얘기했었습니다. 그다음에 여러 가지 화를 이해하고 조절하는 방법이 있지만 그중 하나가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입니다. 흔히 남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상대를 위한 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는 노력,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참고 남의 얘기를 먼저 들어주려는 노력은 분명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이니까요. 하지만, 남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궁극적으로 자신에게 매우 득이 됩니다. 특히 화가 날 때 그렇습니다. 


이전에 언급된 Q와 분노에 대해 나누던 여러 이슈 중, 분노를 줄이기 위해 "할머니를 이해해 보기" 연습이 있었습니다. 이해를 위해 노력할 때는 오로지 할머니의 삶만 관찰해 보기를 권했습니다. 나와 엄마와의 관계나 엄마와 할머니의 관계는 잠시 옆에 두고, 할머니 만을 관찰해 보고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Q는 일주일 간 할머니를 그냥 한 인간으로 바라봤다고 합니다. 여전히 고집스럽고 자신이 옳다고 믿지만 이제는 늙고 병들어 집에서 가족들에게만 호령하는 이빨 빠진 호랑이. 다시 보니 할머니는 전 보다 많이 약해졌고 살짝살짝 가족들의 눈치를 보며 누구와도 정말은 어울리지 못하고 외롭게 집안을 배회하고 있더랍니다. 그런 할머니가 좋지는 않지만 측은하고 안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런 마음이 들자, 놀랍게 화가 줄어들고, 할머니가 여전히 부스럭 거리며 집안을 돌아다녀도 크게 짜증 나지 않고 일을 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할머니도 자신만 옳다는 생각에서 며느리나 손녀의 입장에서 그들을 한 인간으로 충분히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었다면 살면서 그들에게 그렇게 화를 내지도, 지금처럼 가족들에게 완전히 소외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당장은 남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왜 나만 그래야 하나 억울하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의 능력은 결국 자신에게 가장 큰 득이 되어 돌아올 겁니다. 



내가 죽을 것 같은데 남을 먼저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 이제 숨은 쉬겠어' 싶을 때, 

'그럼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지?' 싶을 때, 

바로 그때!

상대를 있는 그대로, 그 사람의 굴곡진 삶의 문맥 속에서 바라봐 보세요.  


나를 위해 남을 이해하는 것은 지극히 자기중심적이면서도 이타적인 작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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