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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li Whale Mar 27. 2023

Q. 화날만하네!

분노 다스리기 2탄 

살다 보면 내 가치와는 다르지만, 누군가에게는 큰일이 많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폭탄 같은 일이지만 누군가는 별일 아닌 것처럼 지나가기도 하고요. 친구와 싸우고 죽고 싶은 아이에게 "야! 친구 다 쓸데없어. 졸업하면 만나지도 않을걸 뭘 그렇게 신경 쓰니."라고 한다면 그 아이는 다시는 당신과 고민을 얘기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 내가 힘든 건 내가 멍청한 사람이라서라는 건가?라고 발끈하는 마음이 들 수도 있고, 이런 일에 힘들어하는 자신이 나약하고 쓸모없게 느껴져 죽고 싶어질 수도 있습니다. 내 마음을 몰라주는 상대에게 화가 나고, 내 마음이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면 힘든 일도 아닌데 힘들어하는 자신에게 또 화가 납니다. 상대가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일이 반복되면 타인과의 관계가 끊어지고, 내가 나 자신이 옳지 않다는 생각을 반복해서 하면 나 자신과의 관계가 끊어집니다. 자기 자신과의 관계가 끊어지면 자신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사라집니다.      


Q는 20대 직장인으로 아프고 예민한 오빠로 인해 어릴 때부터 집에서는 손 안 가고 자기 할 일을 스스로 하는 착한 딸이 되었습니다. 3대가 함께 사는 집에서 친할머니는 아들인 오빠만 편애를 하셨고, 드세고 이기적인 성품 때문에 어머님과는 현재까지도 갈등관계에 있다고 합니다. 고부간의 갈등 속에서 아버님은 주로 방관자였고, 그런 남편에 대한 분노를 수십 년간 오롯이 Q가 받아왔습니다. 최근에는 할머니가 몸이 편찮아지시면서 또, Q가 코로나 때문에 재택근무가 늘어나면서 아픈 할머니와 한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하지만 몸이 불편한 할머니는 더 막무가내였고 그런 할머니와 함께 있는 것에 Q는 너무 화가 난다고 얘기합니다. 


- 할머니와 함께 계시는 것이 어떤 점이 가장 화나고 불편하세요? 

- 할머니는 정말 너무 이기적이에요. 다른 사람이 일을 하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삼시새끼를 꼭 차려 드려야 해요. 지금은 몸이 불편해서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몸이 괜찮았을 때도 그랬어요. 엄마가 밖에서 일하시다가도 중간에 와서 밥을 차려드려야 했어요. 지금은 제가 해야 하고요. 하지만 그것도 괜찮아요. 편찮으시니까 그 정도는 할 수 있어요. 

-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도 다른 사람을 시켜서 꼭 대접을 받고 싶어 하시는 모습에 화도 나고 그로 인해 어머님이 힘든 생활을 하셨다는 것이 안쓰럽게 생각되셨나 봐요. 하지만?

- 하지만 할머니가 집에 계시면 계속 집안을 돌아다니세요. 정말 끊임없이요. 일을 하고 있으면 할머니가 돌아다니는 소리가 계속 들리고 그러면 집중이 안 돼요. 저는 정말 할머니와 좋았던 경험이 거의 없거든요. 지금도 당당하시지만 과거에는 정말 대단했어요. 엄마가 할머니 때문에 정말 많이 우셨어요. 제가 보기에는 엄마는 최선을 다 하셨지만 할머니는 언제나 못마땅에 하시고 다른 친척들에게 엄마를 욕하기도 했어요. 그것 때문에 엄마랑 아빠가 정말 많이 싸우셨고, 엄마는 지금은 그냥 다 포기한 채 지내세요. 이번에 엄마가 너무 힘드니 고모네 집에 일주일이라도 가 계셔라 해도 절대로 말을 안 들으세요. 할머니는요, 지금도 화장실에 가실 때 문을 열고 볼일을 보세요. 거실에 나오면 원치 않아도 화장실에서 할머니가 볼일을 보는 모습이 보일 때가 있어요. 정말 막무가내예요. 

- 할머니에 대한 안 좋은 경험들이 집안을 배회하는 할머님의 모습이나 소리로 들릴 때 하나하나 되살아 나나 보네요. 내가 그로 인해 힘들었던 것도 있지만, 할머니로 인해 더 크게 고통받았던 어머님의 입장에 많이 이입되는 면도 있는 것 같아요. 

- 엄마의 얘기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집에서는 저뿐이었거든요. 

- 그러게요. 예민하고 아픈 오빠, 무심한 아빠, 무서운 시어머님 사이에서 그래도 속 터놓고 얘기할 사람은 Q 뿐이었겠지만 그 얘기를 다 받아줘야 했을 Q는 정말 힘들었겠어요. 

- 네. 지금도 그래요... 엄마를 이해하고 엄마가 불쌍하지만 저는 아빠 딸이기도 하고 그런 얘기를 계속 듣는 것이 너무 힘들어요. 

- 네 맞아요. 그 고통의 중심에는 할머니가 있고, 수십 년을 달라지지 않는 할머니의 이기적인 행동들이 지금은 하나하나 거슬리고 화가 나는 것 같아요. 

- 네... 할머니랑 있으면 정말 너무 화가 나요.  

- 네. 정말 화날만하네요! 

- 그죠? 화가 나는 게 이상한 건 아니죠?

- 그럼요. 단순히 지금의 할머니의 모습 때문이 아니라 이제까지 할머니로 인해 생긴 힘든 일들이 지금 할머니를 보면서 다시 되살아나 더 화가 나는 것 같아요. 그런데 화가 나는 건 왜 그렇게 불편한가요? 

- 일을 해야 하는데 집중도 잘 안되고... 그냥 짜증이 나요. 그런데 할머니는 이제 늙고 아픈데 내가 이래도 되나 싶고요... 

- 네. 불편한 건 일이 잘 안 되어 그런 것도 있지만, 화가 나는 내 모습이 옳지 않다는 생각도 있는 것 같아요. 

- 네...  

- 화가 날 수 있어요. 그렇다고 할머니에게 욕을 하고 식탁을 엎은 것도 아니잖아요. 화를 부적절하게 표현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지만 화가 나는 마음 자체는 잘못이 없어요. 


이전 글에 썼지만 저는 고질적인 울화병을 가진 상담사입니다. 저는 스스로  화가 나는 일에 대해 잘 알고 있어 가능한 그런 상황을 피하고 어쩔 수 없을 때 대처방식도 많이 있습니다. 고백하건대, 화를 빵빵 못 내서 힘들지 화가 나는 것이 그렇게 불편한 일도 아닙니다. 하지만 인내의 역치가 보통보다 높거나 자신의 분노를 부정하는 사람들에게는 화가 나는 일 자체가 낯설고 불편할 수 있습니다. 그 감정자체가 힘들고, 감정이 만드는 생각들이 나를 괴롭힙니다. 그렇기에 복잡하고 피곤한 일이지만 자신의 감정이 어떻게 발생되고 내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낱낱이 파헤쳐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어떤 일에 얼마나 화가 나는지, 그 화의 크기는 적절한지, 화가 날 때 어떻게 행동하거나 기대하는지, 이 화를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또 화를 조절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말입니다.  


Q의 상황을 들어보면 또 그녀의 상황은 충분히 화가 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아마 저라면 하루에도 몇 번씩 분통을 터트렸을 겁니다. 자신을 차별하고 가족들에게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할머니에게도 화가 나지만, 나를 감정쓰레기통처럼 쓰는 엄마에게도, 방관하는 아빠에게도, 혼자 쏙 빠져있는 오빠에게도 부당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P의 분노는 합당합니다. 충분히 그렇게 느낄만합니다.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것 만으로 화는 그 몸집이 작아집니다. 


착한 아이 컴플랙스가 있는 사람들은 부정적인 감정이 자신의 착해야 한다는 가치와 상반되기에 혼란을 느껴 부정하거나 자책합니다. 하지만 순간순간 느끼는 분노와 억울함은 사라지지 않고 켜켜이 쌓여 우울증이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첫 번째는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흔히 양가감정이라고 하는 감정은 사람을 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만듭니다. 그 감정은 나와 관계없는 사람에게서 보다는 나와 친한,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많이 느끼게 됩니다. 흔히 "애증의 관계"라고 하지요. 사랑하는데 누구보다 미운. 아예 나쁜 사람이어 그냥 미워만 하면 편한데 가족 안에서는 그러기가 참 힘듭니다. 자식이 부모를 미워하기 어려워하는 만큼 부모도 자식을 미워하게 되면 죄책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우리는 가족이라고 꼭 모든 순간 사랑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미울  때는 미워하고 사랑스러울 때 또 사랑하면 됩니다. 내가 미워했다고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사랑했다고 어떤 한순간도 미운적이 없어야 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Q는 어떤 순간순간 가족들이 밉고 그들에게 화가 났을 겁니다. 피하고 싶고 도망가고 싶은 마음도 컸을 거고요. 하지만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자신의 분노와 억울함 부정하고 억눌러 왔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할머니가 문을 열고 볼일을 보는 모습이, 끊임없이 돌아다니는 행동이 이미 가득 차있는 분노의 탱크를 드디어 넘치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분노의 탱크를 터지지 않게 하는 방법은, 더 단단한 마개로 탱크의 입구를 막는 것이 아닙니다. 

탱크를 끓어오르게 한 불을 줄여야 합니다. 


 "화 날만 하네!" 


지금 느끼는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것.

그렇게 어느 정도 팔팔 끓어 올라 넘치는 감정이 사그라졌을 때, 나의 화에 대해 하나하나 점검해 보면 됩니다. 



* 본문의 사례는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실제 사례를 재구성한 것으로 실제와는 다른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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