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4.17 브리즈번행 비행기 안에서
*메모장 발췌
퍼스에서 브리즈번 가는 비행기에서 쓰는 글. 시간도 밤 11시에 잔잔한 노래를 듣고 있고 살짝 졸리기 때문에 새벽 감성으로 잘 쓸 수 있을 것 같다.
일기장을 쭉 읽어봤는데 퍼스에 온 지 고작 73일밖에 되지 않았더라. 딱 10주를 머물고 가는 거니까 정말 짧게 있다 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드니를 떠날 때에는 떠나는 전날까지도 고민이 많았다. 지금 내가 한 결정을 얼마나 후회하게 될지, 여길 떠나는 게 정말 맞는지 하는 그런 고민 말이다. 진지하게 윌한테 퍼스를 안 가겠다고 말하고 비행기값을 받고 퍼스로 가겠다는 계획을 취소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물론 그러진 못했다. 왜냐면 집을 나가겠다고 이미 노티스를 내서..
처음에 퍼스에 와서 엄청 후회했고, 많이 울었다. 내가 시드니에서 퍼스로 오면서 포기하고 두고 온, 잃은 것들이 있었는데 그 모든 걸 퍼스에서 다시 누릴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말로 그 모든 걸 퍼스에서 되찾진 못했다.
그래도 퍼스에 온 걸 후회하진 않는다. 내가 시드니에 두고 온 것들 덕분에 시드니에서의 내 나날들이 정말 소중해졌고 행복한 나날들로 기억될 수 있었다. 퍼스에서 와서 그 외로움과 불안함을 견디면서 나는 더 단단해진 것 같다. 그래 나는 여기서 많이 성장했다.
호주에 온 이유를 누군가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해외 취업이 하고 싶어서 미리 보기와 같은 느낌으로 호주 워홀을 왔다고 얘기하곤 했다. 그리고 내가 퍼스에서 느낀 감정들은 정말 해외취업을 하게 된다면 느낄 감정들과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퍼스에 와서 우울함과 불안감에 빠져있을 시기에는 해외 취업은 못하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떠나는 지금은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나는 이미 한번 겪어봤고 이겨냈으니까
퍼스에서 내가 힘들었던 순간들과 느낀 부정적인 감정들은 살면서 언제 어디서든, 여행 중이든 한국에서 사는 중이든 느껴낼 수 있는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그 모든 걸 이겨낸 내가 얼마나 더 단단해졌는지 나는 알 수 있다.
그리고 퍼스를 떠나는 지금의 나는 퍼스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간다는 생각이 든다. 이 도시에서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미련이 남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내가 이 도시를 사랑한 순간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나는 그 부정적인 시간들을 견뎌냈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고 가는 것 같다. 시드니는 아직 이 도시를 다 보지 못했다는 생각도 들었다면 퍼스는 정말 다 보고 가는 기분이다. 내가 퍼스에 살면서 하지 못한 것도 있고 놓친 것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로서는 만족한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도시를 이동한 다는 건 또 색다른 경험인데, 언젠가 퍼스를 그리워할 순간이 또 오겠지
여기서는 내 시간이 정말 많았어서 나에 대해서, 내 미래에 대해서, 내 친구들이나 가족들에 대해서, 내 주변의 모든 것들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았다. 덕분에 나 자신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된 것 같다.
나를 더 알게 될수록, 더 많은 경험을 할수록 내 미래가 더 기대된다. 꿈꾸는 게 많아지면서 더 많은 것들이 욕심나고, 더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를 내게 만들어준다. 앞으로의 내가 얼마나 더 어떻게 더 성장할지, 다음으로는 무엇을 성취해 낼지, 그걸 통해 나는 어떤 사람이 될지가 기대된다. 호주 워홀은 내가 그런 것이다.
다음 목적지인 브리즈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어떤 새로운 문제를 마주하게 될지 나는 모르지만 그 모든 일들이 기대되는 걸 보면 나는 이 나라를, 이 도전을, 이 찰나를 사랑하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