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데 검사받으면 멀쩡해
‘엄마, 나 정신병인 거 같아’.
내가 이 말을 꺼낸 것은 중학교 2학년이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이 말을 하던 당시의 나와 이 말을 듣던 당시의 엄마는 어떠했을까.
중학교 2학년이 되던 해에 우리 가족은 해외로 떠났다. 아버지의 일로 인해서 해외에 나가게 되었는데 그게 어린 나에게는 큰 스트레스였던 걸까. 사춘기의 작은 반항심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나는 기어코 한국에 돌아가겠다며 짐을 싸서 문 앞에서 기다리기도 했다. 삶이라는 게 지나고 나면 왜 그랬지 하는 것들이 많은 거 같다. 그 당시에는 뭐가 그렇게 불만이었을까?
나와 다르게 두 살 터울의 형은 잘 적응하고 있었다. 크게 불만을 가지지도 않고 힘들지만 꾸역꾸역 버텨갔다. 하지만 나는 그게 안되었다. 언제나 이곳에 있는 게 싫었고 점점 머릿속은 복잡해져만 갔다. 가끔 머릿속에 들려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들이 있었지만 뭐가 중요하리.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지만 나의 상태는 도무지 나아질 것만 같지 않았다. 귀에서는 삐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나는 점점 내가 이해가 되지 않기 시작했다.
‘왜 나만 이런 거지?’
우리는 태어나 살아간다. 그 과정에서 숱한 경험들을 하고 환경이 변하고 그걸 다 포함한 게 인생이다. 하지만 나는 단절을 선택했다. 방 문을 걸어 잠그고 인터넷 세상으로 들어가 그 속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런 쾌락적인 삶을 살면서도 머릿속은 복잡했다. 아이러니하다.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데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니. 도대체 내 머릿속은 무엇을 원했던 걸까.
사람은 이해되지 않는 것을 두려워한다. 우리는 그것들을 이해하기 위해 수많은 시간을 들여 연구하고 노력한다. 그 대상이 본인 스스로라면 어떨까. 나는 나라는 사람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밤에 잠을 자려고 누우면 스스로가 ‘이 세상을 물리치는 악당이 될 거야’ 라며 마음을 다잡는 아이가 어디 있겠는가(떠올리니 그냥 중2병 같다). 그즈음이었을까. 어머니께 진지하게 정신과에 가고 싶다고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중학생이 어머니께 이런 말을 꺼내다니, 아마 드문 케이스가 아닐까? 그래서였을까, 어머니에게 이 말은 큰 충격으로 다가온 듯하다. 어머니는 정신과 이외에 모든 병원에 다 보내주셨다. CT를 찍고, 위 검사를 받고 등등. 안 가본 병원이 없을 정도다. 그래도 내 몸은 성치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신체화라는 정신병의 증상 중 하나였다. 표현되지 않은 감정이 몸속에 남아 신체의 어느 부분에서 어떤 형태로든 표현되는 것이다. 답답함이 쌓였을 때에는 공황이 왔고, 짜증이 쌓였을 때에는 만성 두통이 왔다. 그때마다 방문한 병원에서는 이보다 건강할 수 없다며 깨끗한 진료표를 보여주었다.
그렇게 나는 정신과 이외에 모든 병원을 가본 중학생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