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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싱긋 Jan 02. 2023

빌려 읽는 책의 불편함

부지런해야 책도 빌려읽는다

아. 결국 이번에는 연체로구나. 

지난번에 상호대차 서비스로 동네 도서관에서 빌려올 때 그나마 욕심을 최대한 자제해서 두 권만 빌려온 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출기간 14일이 다 지나도록 두 권 모두 겉장 한 번을 열어보지 못한 채 책 등 제목만 몇 번이나 읽었는지 모른다. 

손 닿는 곳에 두었는데도 그걸 못 열어보고 있다가 오늘 아침에 날아온 대출이 연체되었다는 알림톡에 부랴부랴 반납을 하고 왔다. 이 동네 이사 와서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연체다. 

대출 연체 알림은 마음을 매우 불편하게 만든다.


불편했던 마음은 어디로 가고 또 이놈의 책 욕심이 발동했다. 

반납하러 가서는 다른 두 권을 빌려오려는데 안된다고 한다. 명색이 사서로 일했던 사람이라 대출 연체에 민감하고 연체 시 불이익이 있으리라 예상은 했건만.

"아, 오늘 안돼요?" 

그래도 우리 동네 사서  친절하시네. 

살짝 웃어주시며 "네, 내일 되셔요." 해준다. 두고 가시면 정리도 본인이 해주신다고.

하필 한파경보 오는 추운 날 유모차 밀면서 스마트폰 쳐다보는 초등생까지 옆에 데리고 가서 봐준 걸 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오늘 못 빌린 두 권은 내일 빌리려나.

그냥 중고로 사서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으려나.


그렇다. 나에게 이렇게나 불편한 것이 바로 빌려 읽는 책이다. 




도서관이 불편해진 것은 아마 고등학교 때? 

주말마다 도서관 가는 걸 좋아했다. 거기 가면 라면도 싸게 사 먹을 수 있고 시간 맞으면 공짜로 영화도 보고. 그래서 자주 가던 인천 화도진도서관이었는데 어느 날 구석진 서가에서 노출증 남환자를 맞닥뜨렸다. 날도 화창한 어느 토요일 환한 대낮이었는데 말이다. 그날 어린 마음에 많이 놀래서 그다음부터 공공도서관 도서열람실은 혼자서 안 가게 된 것 같다. 


빌려 읽는 책이 불편해진 것은 확실히 대학생 때이다.

평소에 술퍼 마시고 놀러 다니느라 책을 안 보다가 갑자기 '하루에 책 한 권 읽기'라는 목표를 세우고 독서에 열을 올리던 때다.

고등학생 때부터 간간이 보던 이외수 작가의 책을 전부 다 읽어보리라 하는 마음으로 연이어 읽어나가고 있었다. 어느 날 어떤 책 책갈피에 몇 가닥의 짧은 머리카락이 들어있는 걸 보고는 털어 버렸다. 몇 장 넘기니까 또 머리카락이 서너 개 들어있어서 털어냈다. 두어 장 넘겼는데 이번에는 핏자국과 머리카락이 같이 있었다! 일부러 묻힌 것이 분명해 보이는 핏자국과 일부러 뽑은 것이 확실한 머리카락들. 심지어 그다음에도 이렇게 머리카락과 핏자국이 묻은 곳이 반복되었다. 

너무나도 소름이 끼치는 경험이었다. 

하필 책 내용도 난해했기에 그 찝찝한 기분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빌려 읽는 책에는 밑줄을 그을 수가 없어서 불편하다.

난 책을 매우 깨끗하게 보는 사람이었다. 그러다가 사이토 다카시의 '3색 볼펜 읽기 공부법'이라는 책을 읽은 후로는 밑줄 그어가며 읽는 행위에 매우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 


3색 볼펜 읽기는
객관적으로 중요한 내용은 파란색 줄을,
가장 핵심이 되는 내용은 빨간색 줄을,
주관적으로 재미있는 내용은 초록색 줄을 그으면서 읽는 독서법


교과서나 강의 교재에 밑줄 긋고 부연설명 쓰며 열심히 공부할 때 남는 것이 많지 않았던가? 

취미로 읽는 책일지라도 한 단어 아니 한 문장이라도 줄을 그어보면 더욱 남는 게 많아진다. 

그래서 이제는 밑줄을 그을 수 없는 빌려 읽는 책이 좀 불편하다.


2주일 동안 빌려 읽으려다가 못 읽은 두 권의 책은 이렇다. 






당신의 뇌는 최적화를 원한다 / 저자 가바사와 시온 / 출판 쌤앤파커스 / 발매 2018.05.25.


이전에 가바사와 시온 저자의 책을 몇 권 읽었는데 쉽고 편하게 쓰여있어서 믿고 읽는 작가가 되었다. 역시나 이 책은 상태 좋은 중고로 사서 밑줄 좍좍 그어가며 편하게 읽어야겠다.





인간 플랫폼의 시대 / 저자 배명숙 / 출판 스노우폭스북스 / 발매 2016.11.25.


반납하기 전에 목차를 후루룩 훑어보고 관심 가는 소제목의 페이지도 몇 장 읽어봤는데 잘 모르겠다. 과연 다시 빌려서 읽게 될까. 그런데 목차를 보면 읽어내야만 하는 책이다. 이런 강제적으로 읽어서 남겨야 하는 책일 경우에도 사서 강제성을 부여하는 것이 좋다. 또 빌리면 또 안 읽고 반납하게 될 테지. 


그러나 나는 책 반납하러 도서관에 다녀온 후 다시 가지를 못하고 있다. 빌리려고 했던 두 권의 책은 도서관에 그대로 있을 텐데. 추운 겨울 날씨와 콧물을 줄줄 흘리는 8개월 아기가 도서관을 못 가게 한다. 


아무래도 빌려 읽는 책은 영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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