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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다고 Mar 05. 2024

죽은 자전거의 단상

누군가의 발이던 것

1. 자전거의 지금


자전거를 처음 타던 기억은 흐리다. 날씨도, 함께 있던 사람에 대한 기억도, 온통 잿빛으로 흐린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하늘과 도시가 저채도의 먼지와 함께 묶여 있는 가운데 라이딩한 오늘이다. 한참을 달리다 보면 비로소 시야가 또렷해진다. 멀리서 보면 미묘한 채도의 색상들이 실체에 다가갈수록 선명한 발색으로 다가온다. 페달을 밟는 감각 뒤로 노면의 모래알갱이들이 느껴진다. 자잘한 진동이 자전거 프레임을 타고 안장으로 올라온다. 그렇게 내 자전거는 오늘도 생존신고를 한다. 지금 이 순간, 이 녀석이 내 양발이다.


 늘 다니던 한강공원이 아니라, 도심 속의 호수를 들러보자. 어린 시절의 낭만으로 가득한 기억이 석촌호수를 향해 나를 이끌었다. 빛바랜 추억은 여전히 탈색된 채이지만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자전거의 지금은 '설렘'이다.

 

석촌호수 전경
석촌호수 공원 앞 조형물

2. 변하는 것들


오랜만에 찾아간 그곳에는 지난날에 본 적 없는 건물들과 조형물이 서 있다. 사람들은 변하는 것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지만, 나는 퍽 재미있다. 변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두렵다. 발전이든 퇴보든 변화는 생명의 자연스러운 활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오늘의 석촌호수를 보며 나는 즐거움으로 감정의 포만감을 느꼈다.

 사진에 담는 정경은 실제와 사뭇 달라, 입체감을 평면에 구속하는 기분이다. 그래도 셔터를 눌러 기억의 보조를 돕는다. 이렇게 켜켜이 쌓아두다 보면, 습작과 같은 기억들이 언젠가 새로운 아이디어로 떠오를 것이다.

롯데월드 매직아일랜드 전경

호수를 한 바퀴 빙 돌다 보면 롯데월드의 매직아일랜드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포인트가 있다. 노이슈반슈타인성이 생각나는 모습이 예쁘다.


아파트들 사이에 보이는 매직아일랜드 전경

잿빛 도시의 한복판에 있는 매직아일랜드를 보며, 내 추억도 함께 회색으로 변해 갔다는 것을 느낀다. 내일도 색은 바래갈 것이다. 그러나 보수와 덧칠, 철거와 새 어트랙션 설치로 계속해서 변화하며 사람들을 맞을 것이다.


3. 죽어 있는 자전거


잠실-수서간 자전거도로 난간에 묶인 채 버려진 자전거들

상기한 내용들을 곱씹으며 페달을 힘차게 밟던 중 눈에 들어온 것들이 있었다. 한 때는 누군가의 발이 되어주던 자전거들. 차량의 매캐한 연기와 먼지들이 쌓여가는 처량한 모습을 보니 생각이 복잡해진다.

 공장에서 막 출고되어 번쩍이는 자태를 뽐내며 누군가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었을 자전거들. 대리점 주인과 새 주인의 손을 오간 거래의 현장에서, 힘껏 달릴 준비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주인은 어떤 마음으로 난간에 묶어뒀을까? 잠시 보행로에 산책을 가던 길이었을까? 잠시 떠나간 뒤로 그만 잊고 만 것일까?

그렇게 자전거들은 죽어 있다. 그들의 묘지가 길의 한편에 줄지어 있다.


4. 죽은 자전거의 사회


 자전거는 이름과 달리 스스로 구르지 못한다. 누군가의 발길에 의해 구르고, 구르면서 생명을 얻는다. 구르지 않는 자전거는 죽은 것과 같다. 그것은 마치 노래하지 않는 가수, 글을 쓰지 않는 소설가, 그림을 그리지 않는 화가. 그 외에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회에도 각자의 역할이 가진 이름값을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을 비난하고 싶지 않다. 각자의 사정이 있으니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을 테니까.


다만 나는 그런 죽은 자전거의 사회에 살고 싶지 않다. 열심히 페달을 밟고 달려서 세상에 태어난 목적을 찾고 완수하며 살아가고 싶다. 혹시라도 잠시 가사 상태에 있다면, 마음에 달아 둔 자물쇠의 비밀번호를 풀고 페달을 밟자. 완전히 해체되어 고물이 되지만 않았다면, 잠시 닦고 조이고 기름치면 죽은 자전거도 언제든 다시 굴러갈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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