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짐의 순간을 준비하며
세상에는 다양한 만남과 이별이 있다. 친구, 연인, 가족, 직장 동료 등 모든 관계에는 늘 시작이 존재하고 그 어딘가에 반드시 끝이 존재한다. 진학, 이사, 이직, 유학, 사별 등 이유도 가지각색. 이별은 만남의 시작이 주던 설레는 기분이나 막연한 두려움과 결이 다른 느낌이다. 그것이 다음을 기약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라면 기분 좋게 헤어질 수 있으나, 영영 볼 수 없게 되는 이별이라면 마음과 영혼에 깊은 생채기를 남긴다.
나는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 가르치는 아이들의 예술고등학교 입학 실기 시험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비록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직업이지만, 내 품에 들어왔던 아이들의 미래가 달려 있기 때문에 크건 작건 책임감을 가지고 일하고 있다. 그런 아이들과 부대끼며 지내온 시간이 벌써 일 년 가까이 흘렀다는 것을 디데이를 표시한 달력을 보며 새삼 깨닫고, 빠른 세월의 흐름에 놀란다.
아이들은 순수하다. 성격이나 재주와 의지는 다르지만,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그들의 눈망울에는 기대와 걱정, 안도와 두려움이 혼재한다. 나는 그 눈에 어떤 빛을 던져줄 수 있을까. 함께 즐겁게 그림을 그리다가도, 가끔 내 존재가 앞으로 이 아이들에게 어떤 의미가 될지 상상하는 순간에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이 들곤 한다.
내게도 선생님이 있었다. 그들 각자 가진 재주들이 달랐고, 지금 회상해 보아도 꽤 뛰어났다. 시시콜콜한 농담 사이로 매서운 질책도 있었고, 따뜻한 격려 뒤에 따가운 채찍질도 있었다. 나름대로 괜찮은 사람들이었다. 즐거운 추억도 많다. 그러나 난 그들에게 제대로 배운 것이 없다.
고등학교 2학년 재학 중에 남들에 비해 늦게 미술에 뛰어든 나는, 공포를 통해 그림 실력을 단련했다. 선을 잘 긋는다, 형태력이 좋다, 손재주가 좋다는 말을 들으며 기쁘게 그림을 배우던 것은 초보자 시절 한 때였다. 본격적인 석고 소묘의 단계 - 당시에는 ‘환’이라고 불렀다. - 에 들어서자, 시간 내 완성을 위한 체벌과 공포 분위기가 내 손에 속도를 부여했다. 수채화는 어떻게 배웠는지 모르겠다. 그저 내 눈에 보이는 상황과 다르게 막대기 같은 터치를 쌓아가며 밀도를 올리는 것만 부단히 반복했을 뿐이다.
맞으면서 배우는 것은 때리는 것뿐이라는 말이 있다. 그들은 본인들이 배웠던 방법으로 우리를 가르쳤고, 열심히 자기 일을 했다는 건 분명하다. 아마 그들도 맞으며 배웠을 테지. 그러나 난 당시에도 때리는 것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고, 여전히 그렇게 생각한다. 그 선생님들의 지도 하에, 1년 반의 실기 경력으로 좋은 학교에 합격을 한 것만은 분명하다. 감사하는 마음은 있다. 언제라도 한 번쯤 만나게 되면 즐겁게 추억을 이야기할 용의도 충분하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내가 그분들을 추억하는 것처럼 내 학생들이 나를 추억하게 되면 어떨까. 아이들의 마음을 속속들이 알 수 없지만, 혹여 그렇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꽤 괴로운 일이 될 것 같다. 어쩌면 예전에 가르친 아이들 중에 이미 그런 생각을 가진 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지난 일은 어쩔 수 없으니, 지금 가르치는 아이들은 나를 떠올릴 때 좋은 기억을 갖게 되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나는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 부디 기분 좋은 헤어짐이 되기를. 먼 훗날, 작가로서 대등하게 만나서 즐겁게 추억을 이야기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