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모음을 하고 싶다.
가르치는 학생들의 시험일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아이들에게 격려의 의미로 주려고 편지를 쓰고 있는데, 한 사람씩 함께 했던 시간을 돌이켜 보게 된다. 여러 사람을 두고 가르치지만, 개인을 따로 보니 참 많은 이야기들이 스며 있음을 느낀다.
그러다 오래전에 사용하던 노트북이 생각났다. 일터에서 바삐 자료를 정리하고 영상 편집을 하며, 프레젠테이션까지 야물차게 쓰던 그 노트북. 그것이 언젠가부터 현저히 처리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하더니 곧이어 작동을 멈췄다.
여러 차례 세팅을 새로 하면서 기능을 회복하곤 했지만 끝내 수명을 다했다. 꽤나 가격이 나가던 그것도 결국 소모품인 것이다. 제 역할을 충분히 한 데다 새 물건으로 대체하고 나서 한 동안 존재를 잊었다.
몇 해의 시간이 흐르고 방치되었던 노트북이 생각나서 다시 켠 적이 있다. 방전된 배터리를 충전하고 시동을 걸어 보니 의외로 쉽게 윈도우가 열렸다. 백업하는 것을 잊어 조용히 묻혀 있던 자료들이 제법 남아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USB에 담아 새 컴퓨터로 옮겼다. 신기한 것은 수년만에 재회한 자료들임에도, 그것을 만들던 시간의 기억이 함께 떠오른 것이다.
'아, 이 그림을 그릴 때는 어땠지.'
'이 자료는 어느 학교를 준비하면서 만들었지.'
'이걸 따라 그리던 그 아이는 지금 잘 살고 있을까?'
이런 기억들을 모아 두고 나니, 내 삶의 부분이던 것들을 잃었다 찾은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하루나 일 년, 또는 그 이상의 시간들 속에 삶에서 떨어져 나가는 기억들은 얼마나 될까.
윈도우 시스템을 기반으로 하는 컴퓨터에는 디스크 조각모음이라는 기능이 있다. 그 기능을 통해 자잘한 공간들을 재정렬하고 컴퓨터에 새 정보를 저장할 곳을 확보하며 기능적인 활력을 불어넣는다.
가르치는 아이들의 입시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함께 보낸 시간들도 이처럼 조각모음을 할 수 있다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우리 삶의 한 해를 차지한 이야기는 어떤 장르였을까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