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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다고 Oct 11. 2024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을 축하하며

좋지 아니한가.

"소설가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

벅차서 가슴이 뛴다.^^"


 글쓰기가 직업이거나 꿈인 사람들에게 있어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엄청난 뉴스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학생들의 예고 입학시험을 코앞에 두고 마지막 담금질을 하는 수업 중에 어머니로부터 온 메시지는 들떠 있었다. 그럴 만하다. 어머니는 글로 살아온 분이기에. 수업을 마치고 통화하는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매우 흥이 넘쳤다.


어머니와 나눈 카톡 대화 일부. 나는 정말 놀랐다.



노벨상. 얼마나 대단한 상인가. 어릴 때는 이 영예로운 상에 평화, 물리학, 화학 등 다양한 분야가 있다는 것은 모르고 그저 노벨상으로만 부르던 기억이 난다. 자라면서 여러 가지 시상 분야가 있다는 것과, 얼마나 수상이 어려운 상인지 알게 되었다.

 오죽하면 할리우드 영화 스파이더맨 2(2004)에서는 주인공 피터 파커의 절친한 친구이자 사업가인 해리 오스본이 투자한 실험실에 와서 늘 입에 달고 사는 말이 노벨프라이즈다. 노벨상을 타는 것이 그만큼 엄청난 업적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영화 스파이더맨2에서 주인공의 친구 해리는 입에 "노벨상(The Nobel Prize)~!"를 달고 산다.

 

 가끔 모 시인의 수상 여부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올 때도 기대감은 딱히 들지 않았다. "한국어의 다양한 어휘를 온전히 번역하기 어려워서 노벨문학상 수상은 어렵다. "는 둥 세간에서 떠도는 말은 전혀 믿지 않았다. 일본어와 중국어로도 두 개나 수상을 했기 때문이다. 어휘가 다양한 건 다른 언어도 마찬가지고, 같은 한자 문화권인 일본과 중국어를 우리말로 번역할 때도 애매한 표현들이 숱하게 많은 게 사실이다.


 후에 우리나라에서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나왔다. 그러나 그것은 일개 자연인의 능력으로는 감히 꿈꾸기 어려운 일이기에, 수상의 영예로움과 별개로 내게는 큰 감흥이 오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내게도 감동을 준다. 노벨상 시상 분야에 예술로서 유일하게 포함되어 있는 문학으로, 개인이 갈고닦은 능력과 정신의 수준으로 성취해 냈다는 점에서다. 이것은 내가 좋아하는 어느 운동선수의 성취와 비슷한 부분이 있다. 그것은 토트넘 홋스퍼에서 활약하는 손흥민 선수의 골든슈 수상이다.


손흥민 선수의 시즌 마지막 경기를 보고 텔레비전에 나온 수상장면을 찍은 사진.



 축구의 팬으로서 내가 감동받은 몇 가지 사건이 있다. 2002 한일월드컵 4강 진출은 말할 필요도 없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속으로 뛴 박지성 선수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의 활약이다. 하지만 역시 가장 기뻤던 것은 손흥민 선수의 2021-2022 시즌에 득점왕을 차지하던 순간이다.


 한국인을 넘어 아시아인으로 처음으로, 개인의 노력과 능력으로 따냈다는 점에서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과 닮은 점이 있다. 물론 노벨문학상 정도의 권위까지 생각한다면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들만이 겨우 수상하는 발롱도르(Ballon d'Or)를 얻어야겠지만 말이다.


 좌우간 어머니가 느낀 감정도 그때의 나와 비슷했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수상자 개인의 영광이지만 내 마음도 뿌듯했으니까.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노벨상이든, 득점왕이든, 빌보드 차트 1위든, 그것은 개인의 영광일 뿐, 당신의 삶과 무슨 상관이냐고. 그들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명예를 얻고 개인의 영달을 추구하는 것뿐이다. 같은 나라 사람이라고 뿌듯해하는 것은 개발도상국 시절에나 통하던 집단의식의 발로다. 이제는 그런 사고에서 벗어날 때도 되지 않았느냐고.


 옳은 말이다. 그러나 옳지만은 않다. 연예인, 스포츠 스타나 예술가들이 사람들에게 선사하는 것은 당장의 노래와 춤, 경기력만이 아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준다. 동기를 부여하고 꿈을 꿀 수 있게 해 준다.


 월드컵에서 활약하고 명문구단에서 뛴 박지성 선수를 보며 꿈을 키운 손흥민 선수다. 지금은 득점왕이자 세계 최고 리그에서 주장 완장을 차고 활약하는 손흥민 선수를 보며 꿈을 키워가는 축구 꿈나무가 차고 넘친다. 그 예로 축구교실에 가면 아이들의 등번호가 온통 7번이라고 한다. 손흥민 선수의 등번호다.


 이제껏 글을 쓰며 살아온 작가들과 작가 지망생들도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보며 깊이 동기부여받지 않을까? 부커상을 받고 노벨상을 타야만 훌륭한 작가인 것은 아니지만, 어떤가? 좋은 소식이 하나라도 는다면 말이다.


좋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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