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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전재복 May 15. 2024

*스승님께서 물으신다

한 예순은 되었는가?(159)

*스승님께서 물으신다

내내 잊고 살다가 일 년에 한 번 잊었던 숙제를 떠 올리듯 퍼뜩 정신이 드는 스승의 날이 돌아왔다.


나에게 뼈와 살과 생명을 주신 부모님의 은혜, 나에게 지혜를 심어주고 바르게 키워주신 스승님의 은혜!

그런 부모님에게 그런 스승님께 나는 얼마나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살았던가?

늘 죄송하고 죄송하다.


내 아버지 천안 全, 炳字 來字(1917.12. 26~ 1982. 5.1)

내 어머니 추계 秋, 貞字 順字(1919. 1. 24~ 2003.11.20)

올해도 부처님 전에 하얀 연등으로 두 분의 이름을 적어 영가등을 밝혀드렸다.

그리고 달력에 박제된 글자 한 줄로 남은 씁쓸한 스승의 날, 이제 두 분 밖에 연락이 닿지 않는 은사님께 전화로 안부를 여쭈었다.


금낭화가 연등인 양 꽃불을 밝혀들었다. (사월 우리 집 뜰)
86세 서병숙선생님이 쓰신 글씨


국민학교 2학년 때 가르쳐주신 서병숙 선생님은 올해 86세의 할머니시다. 일생을 처녀로 사시는 우리 서병숙 선생님은 지금도 소녀 같으시다. 목소리도 생각도 때가 묻지 않으셨다.

날마다 성당에 나가 기도하시고 부채에 붓글씨를 써서 지인들에게 나눠주는 재미로 사신단다.

고작 일 년에 두세 번 전화를 드리는 알량한 제자인데 언제나 깜짝 반기시며 그렇게 좋아하실 수가 없다. 

이번에도 전화를 쉬 끊지 못하고 오래오래 선생님의 말씀을 들어드렸다.


또 한 분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신 고석종선생님은 올해 93세이시다. 다행히 같은 지역 내에 사셔서 매년 스승의 날 전후로 찾아뵙는다.

몇 년 전 사모님을 먼저 떠나보내시고 혼자 지내시는데, 다행히 자녀들이 순번을 정해 아버지를 돌보고 있다고 한다.

어제도 전화를 먼저 드리고 집에 와 있는 따님과 약속시간을 잡았다. 주간보호센터에서 돌아오신 뒤인 저녁시간에 찾아뵙기로 했다.

작년에 찾아뵙고 나올 때, 올해도 무탈하게 선생님을 뵈올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얼마나 다행인가!

귀가 많이 어둡고 인지 장애도 약간 오셨다고 하는데, 잠깐 머무는 동안에 같은 질문을 여러 번 되풀이해 물으셨다.


나이가 한 예순 되었지?

부모님은 같이 사는가?

몇 살이신가?

남편은 이름이 뭐라 했지?

남편은 몇 살인가?

지금은 어디서 사는가?

주로 내 주변인들의 안부를 묻고 또 물으셨다.

선생님께서는 같은 질문을 자꾸 하시고 나는 같은 대답을 되풀이해 드리고...

그래도 선생님의 손을 잡고 나란히 앉아 즐겁게 얘기 나눌 수 있는 오늘이 너무 고마웠다.


올해는 용돈보다 기력을 보하시라고 정관장에서 나오는 건강식품을 사다 드렸더니, 우리 선생님 당신은 줄 것이 없다고 걱정하신다. 사모님이 살아계실 때는 의례히 직접 농사지으신 쌀 한 포대를 한사코 마다하는 내 차에 실어 주셨었는데...

선생님 식사 잘하시고, 노치원에도 잘 다니시고 건강히 계시라고, 또 뵈러 오겠노라고 인사를 드리고 나오는데 혼자서 어찌 가느냐 걱정 걱정하신다.

나는 선생님을 내년에도 또 뵐 수 있을까 마음을 졸이는데, 선생님은 아직도 어린 제자가 집까지 어두운 길을 어떻게 찾아갈지 걱정하고 계신다.


"몇 살인가? 한 예순 되었는가?"


"일흔다섯이에요. 선생님~"


"그렇게나 많이?"


선생님께서 허허 웃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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