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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전재복 Aug 16. 2024

두 마당으로 갈라진 광복절

길 잃은 79년(174)

어쩌자고 이러는지 모르겠다.


미묘한 이념의 차이 그것이 큰 파장을 일으키고, 결국에는 79년이나 이어온 광복절기념식은 각기 다른 마당에서 불편하게 치러졌다.


그날에 부여하는 의미를 가지고 꼭 이래야 되는지, 하필 이 날에 자중지란으로 남부끄러운 모습을 드러내야 하는지...

이 날은 그냥 왜놈들이 종전을 선언하고 지놈들 나라로 쫓겨가고, 암흑 속에서 시난고난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한 우리 백성들 밝은 빛을 되찾은 날로 기리면 안 되는 것일까? 하나 된 모습으로 조국의 광복을 기리면 안 될까?

79년 전 그날처럼 벅찬 만세를 목청껏 부르짖을 날은 언제쯤 올 것인가!


나는 정치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 식견도 부족하거니와 잘나지도 못한 나 한 사람이라도 말을 아껴야지 싶다. 적어도 내 분수는 안다는 말이다. 

금뺏지 찬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거기까지 닿으려고 머리가 터지는 쌈박질도 불사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인데,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귀중한 한 표를 잘 행사하고, 다수에 의해 뽑아놓은 사람들을 믿어보는 일이다. 국민들 불안하게 하지 말고 민생을 잘 살펴 평화롭고 안정된 살림을 해달라고 축원이나 드리는 일이다.

그런데 도대체 왜 이렇게 시끄러운지 모르겠다. 날마다 접시 깨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올림픽대회에 참가한 우리 선수들을 한마음으로 밤잠 설쳐가며 응원하듯 그렇게는 안 되는 것일까?



내 나라를 상징하는 태극기는 무슨 잘못이 있어서 외면당해야 되는지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국경일에 태극기를 내거는 일은 국민으로서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닌가?


올림픽대회에서 국기게양대에 올라가는 태극기와 애국가를 얼마나 가슴 벅차게 바라보며 울먹이는데, 

국경일이나 기념일에 대문 앞에 어린 손녀와 함께 태극기를 달며, 보이지 않는 애국이 뿌리내리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내가 잘못인가?


비단 오늘 만이 아니라 국기를 달아야 할 날에 온 동네를 둘러봐도, 우후죽순처럼 치솟는 아파트숲에서도

태극기를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언제부터 국경일에 태극기를 게양하는 것이 눈치 보는 일이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남이사 그러거나 말거나 광복절 이른 아침, 대문 앞에 태극기를 내 걸고 남편과 은성이 이렇게 셋이서 임실호국원에 다녀왔다.

날마다 폭염과 열대야가 이어지니 한낮을 피해 일찍 다녀오자고 서둘러 나섰지만, 풀잎 하나 까딱하지 않는 날씨는 오전 10시 무렵에도 햇살아래 서 있기가 힘들었다.



호국원 6.25 참전용사 묘역인 산중턱에 아버님 어머님이 함께 계신다.

현충일 무렵에 찾아뵈었고, 이번엔 아버님기일 하루 전인데 아버님의 증손녀 은성이를 데리고 오느라 광복절에 나선 것이다.

우리처럼 성묘를 온 가족이 띄엄띄엄 눈에 띄었다.


"상할아버지 상할머니, 두 분 행복하게 지내세요."


절을 마치고 인사말씀드리라고 했더니 우리 은성이 제법 의젓하게 인사말을 드린다.



그러나 저러나 비는 언제나 내리려나? 시원하게 한줄기 쏟아지면 좋겠다. (이 글을 쓰고 있는데 방금 한 줄기 소나기가 찔끔 다녀갔다.)

뜰 안의 배롱나무꽃들은 아껴가며 피어나고, 다 끝난 줄 알았던 마당 끝 연꽃들이 다시 피어 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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