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士들의 모임 (189)
오랜 시간 동안 같은 동인으로 활동하던 노시인의 부음이 날아들었다.
10월의 끝자락이었고 마음이 아팠다. 이태원에서 못 다 핀 159송이 꽃들이 꺾여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된 그날이었다.
2년 전 그날의 시(이태원에 배꽃도 피지 마라 / 전재복)를 다시 꺼내 SNS바람벽에 걸었다.
그리고
이향아시인의 문하에서 글나무를 키워가는 문인들의 세미나에 참가했다.
군산에서 충주까지는 직통버스도 없다는데 참 난감했지만, 여차여차 길이 만들어져서 집을 떠나게 되었다.
꽉 찬 이틀간의 외출을 하기 위해 내겐 사흘이 필요했다.
떠나기 전 하루는 안 먹을지라도 반찬 준비를 해 놓아야 하고, 국물도 준비해야 했다.
병원에 가서 무릎연골 주사도 맞고 처방전 받아 약도 챙겼다.
아침 8시 10분, 스쿨버스로 등교하는 우리 은성이와 더 꼬옥 더 길게 껴안고 이틀간의 이별식을 했다.
8시 20분, 중간지점에서 기다리는 두 분 선배를 태우러 나도 대문을 나섰다.
오늘 내 역할은 예술의 전당 주차장까지 두 분을 태우고 가서 후배P의 차에 합승하면 되는 일이다.
연지당 시담으로 인연을 맺고, 먼길을 더군다나 초행길을 자가용으로 봉사하는 후배가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9시 10분 출발!
모처럼 운전대를 놓고 다른 사람이 운전하는 차에 실려 한들한들 가을 속으로 실려가는 맛이라니!
참말로 편하고 꼬숩고 좋았다.
더디게 오는 단풍이야 퉁박을 주어 무엇하랴! 느리면 느린 데로 즐기며 가야지.
3시간 반 정도 걸려서 멀리 산중턱에 오늘의 목적지 켄싱턴리조트 건물이 보이는 곳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30명만 초대했다는 오늘의 모임에는 군산팀 네 명을 포함 얼굴이라도 아는 사람은 열 명, 나머지는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다.
행사는 1,2부로 나누어 시상식, 인문학강의, 시낭송, 문학과 삶 등 체험 발표... 가족적인 분위기에 따뜻하고 정겨웠다.
주최 측에서 역할을 고루 분배해 줘서 나도 축시로 이향아시인의 '시인의 집에서'를 낭독했고,
2부에서는 이승하시인의 '늙은 어머니의 발톱을 깎아드리며'를 낭송했다.
도란도란 정담으로 깊어가는 밤은 짧고, 아쉬숨은 길었다.
而江!
그리고 강물처럼, 그래서 강물처럼, 그러니까 강물처럼, 그리하여...
우리는 시를 쓰고 사랑하며 생을 강물처럼 이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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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시>
*시인의 집에서 / 이향아
우리는 오늘 여기 이렇게 모였습니다.
충청북도 충주시 양성면 가을 숲이 아름다운 언덕
두고 온 세상은 백리 밖에 밀어 두고
여기는 지금 시인의 집입니다
시를 쓰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른다지만
시 말고 알아야 할 것이 무엇이냐고
시를 아는 사람은 세상 물정에 어둡다고 하지만,
시를 아는 사람이면 믿을 수 있다고
우리는 서로 위로하며, 서로 탄식하며, 서로 다독이며
시월의 마지막 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밤이 깊을수록 눈은 밝아지고
아직도 그리운 것들 있어 잠이 오지 않는
고원의 도성처럼 은밀한 지붕 아래, 별들은 모여서 우리를 옹위하고
우리는 목청을 가다듬어 지치지 않은 목소리로 축하하면서
길지 않은 인생의 하루를 멈추게 할 것입니다
은하에 발을 담그고 갈증에 사무치던 시절,
시인을 하늘의 별처럼 우러르던 시절, 시인만이 꿈이었던 시절,
그날이 바로 오늘입니다.
면류관을 쓰고 시를 이야기하는 자리
낮은 목소리로 돌아다보고 다시 추스르면서
이 밤도 지나가면 시가 될 수 있을 거야
우리들의 웃음소리도 노래가 될 수 있을 거야
바라며 믿으며 우리는 생애의 소중한 순간 속에 잠겨 있습니다
내 노래여 시여, 하늘에 사무치소서
오늘 지금 우리들 메마른 심지에 향기로운 기름을 부어
아름다운 불꽃으로 타오르고 싶습니다
아름다운 영혼으로 피어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