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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짓

일곱 번째 詩의 집 (235)

by 봄비전재복
저수지 건너편에서ㅇ바라본 우리 집


아직도 잠들지 못한 바람을 눌러 앉히지 못하고 구성없이 허수아비 춤을 추고 나섰다.

얇은 귀를 뒤늦게 후회했다. 분수에 넘치는 일은 말았어야 했다.


주제파악도 못하고 영어로 번역한다니 마음이 덜컥 기울었다.

자기가 모르는 일을, 남의 말에 솔깃하여 그렇게 쉽게 손뼉을 치며 나서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사람은 눌변에(그래서 더 진실해 보였다.) 스펙도 변변찮지만 영어번역은 자신 있으니 한번 열심히 해보겠다 했다. 그의 열성을 믿고 지지해주고 싶었다. 영어권에서 다년간 공부하고 왔으므로.

좀체로 자신을 근사하게 포장하거나 드러내지 않는, 어쩐지 짠해 보이기까지 하는 사람, 그래서 지금은 현실적으로 내세울 것 없는 그가 나를 시험 삼아 혹시 대박은 아닐지라도 작은 바가지라도 터뜨릴지 누가 아는가?


나의 일곱 번째 詩의 집 <푸른 비를 맞고>는 그렇게 나를 비롯하여 별 볼 일 없는 사람 두셋이 작당모의 끝에 호기롭게 출발했다. 봄기운이 익어가는 3월이었다.


첫 번째와 여섯 번째 시집은 빼고, 2,3,4,5 네 권의 시집에서만 65편의 시를 뽑아 건넸다.

4월이 막 시작될 때였다. 벚꽃이 톡톡 터지고 있었던가?

(번역을 위해 시를 먼저 보낸 것은 2월이었다. 목차를 만들고 시인의 말까지 보낸 것이 4월 초)


한글과 영역이 함께 들어가니 너무 페이지가 많아진다고 몇 편을 빼면 좋겠다 하여 그러라고 했다.

출판에 관한 모든 것을 알아서 잘하라고 밀어(믿어?) 줬다.

어차피 영시번역을 내가 알지 못하고, 출판도 그가 서울 쪽에서 알아보고 맡긴다 하니 믿고 맡겨야 할 것 같았다.

초벌 번역을 마치고 원어민 두 명과 함께 낭독회도 가졌다.

서울 쪽에 아는 교수에게 감수를 받으러 간다고도 했다. 무척 애쓰는 것 같았다.

중간에 번역료 등 미리 지급해야 한다고 걱정해서 아예 출판비 전액을 선지급해 줬다.

이제 책이 되든 죽이 되든 기다리는 일만 남았었다.


4월과 5월이 꽃잎 따라가고, 6월 7월이 폭염과 폭우 속에 지나갔다.

그리고 안갯속 같은 더딘 시간이 지나고, 속이 좀 상한 뒤에사 8월 초에 책이 내게 왔다.



왠지 왈칵 반가운 맘이 들지 않더니

작은 꾸러미에서 한 권을 빼내 펼쳐본 순간 기분이 팍 상했다.

다섯 개의 쳅터를 알리는 시작 페이지에 파스텔톤의 간지를 넣어달라고 했는데 그것도 반영되지 않고, 내가 그린 수채화 그림은 흑백으로 넣어서 무엇을 그린 그림인지 도대체 알아볼 수가 없었다. 첫 번째 꼭지의 주제 이름도 틀렸다. 딱 한 번 내게 보내준 메일을 잘 살피지 못한 내 탓도 있지만, 망했다.

속이 너무 상해서 책 박스를 한쪽에 쌓아두고 일주일동안 쳐다보지도 않았다. 꼴도 보기 싫었다.


그러다가 어제야 평소 아껴주시는 회장님께서 주소록 스티커를 만들어 보내주셔서 오늘 오후 빡세게 발송작업을 해서 차에 실어두었다.


미쳤지! 제 돈으로 책 내고, 부치는 일도 보통 손 가는 일이 아닌데 이게 무슨 짓인지!!

그래도 누가 만약 내게 묻는다면, 나도 할 말은 있다.

살아있으므로, 책을 내는 일은 내가 나에게 주는 가장 값비싼 선물이며, 스스로 누리는 고가(高價)의 사치라고!



그동안 마음 빚, 책 빚을 진 고마운 분들께 비에 젖은 아이 하나 보내며,

다소 부족하더라도 따뜻하게 맞아주시길 두 손 모은다.


2005. 8. 12. 옥정리에서 봄비 절

*서툴지만 정성껏 그렸기에 넣고 싶었던 그림 ( 봄 ,여름 ,가을,겨울,1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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