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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산사에 안겨서

짧았지만 충만한 기쁨(250)

by 봄비전재복




"바쁘지 않으면 잠깐 단풍 보러 갈까요?"


태블릿 pc에 빠져있는 남편에게 내가 기특한(?) 제안을 했다. 어쩌다 있는 일이지만, 나 혼자 밖에서 점심을 먹고 와서 미안했으므로.


처음엔 가까운 대학교 교정에서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사진 몇 장만 찍고 올 요량이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전에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뭔가 많이 아쉬웠다. 풍성한 나무를 기대했는데...


그래서 내친김에 금산사로 방향을 틀었다.

거의 한 달 전부터 시화전이 열리고 있었는데 미처 가보지 못했다. 걸어둔 시화작품을 한 달이 지나도록 보러 가지도 못했으니 수고하신 문우님들께 면목이 없다.

가면서 혹시 전시기간이 끝나지는 않았는지 살짝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이왕에 나선 길 전시 기간이 끝나버렸다면, 가을 한 자락 품고 오면 되지! 하는 생각이었다.


모악산에 깊숙이 들어앉은 1400년 고찰 금산사! 공기가 청정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초입부터 단풍 든 나무 색깔이 그토록 선명하고 고울 수가 없다. 빨강도 노랑도 남아있는 초록과 바랜 갈색조차도...

가을이 정말 가을다운 진액을 뽑아서 맘껏 보고 가라 펼쳐주고 있었다.


그냥 그 공간에 서 있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산이, 바람이, 숲이, 청정한 도량의 맑고 고즈넉한 기운이 나를 깊게 안아주었다. 그것이 나 하나에게만 온 것일까만, 그 시간 그 공간 안에서 만큼은 오롯이 내게로 부어주는 축복! 충만한 사랑에 가슴이 벅찼다.


다행히 전시된 시화작품들도 한 달여 사찰경내 노천에 걸려 있었음에도, 비, 바람, 찬이슬에 전혀 시달린 기색 없이 평안해 보였다.


주차장으로 내려오다가 전통찻집에 들러 깊은 맛의 쌍화차 한 잔씩 앞에 두고 동행해 준 남편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단풍이 하늘까지 번진 것처럼 노을이 유난히 붉고 곱다.

다섯 시간 남짓, 짧지만 긴 여운 충만한 행복을 안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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