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가 뭐길래
의대는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런데 나도 가고 싶었다. 갈 만큼 공부를 잘했다고 믿었다. 그래서 5년을 다닌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의대공부를 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십 년 가까이 사귄 남자친구랑 결혼도 해야 하고 아기도 낳아야 하는데 언니들 사는 걸 보니 애가 있는데 공부를 다시 한다는 건 불가능해 보였고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지금 해봐야 할 것 같았다.
고3 3월에 담임선생님께서 내가 원하는 대학을 가기 위한 성적그래프를 만들어 보여주셨다. 3월부터 12월 학력고사까지 올려야 하는 상승직선이다. 1학기 동안은 그럭저럭 의대를 써볼 수 있는 성적이 나왔지만 여름방학이 지난 9월 성적은 다시 3월과 같았다. 그렇게 의대에 가는 꿈이 날아갔다.
대학만 가자는 심정으로 공대를 들어갔고 아무 생각이 없던 나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 채 시간만 허비하고 있었다. 그 사이 같은 과 동기들은 하나 둘 다시 의대공부를 하기 위해 떠났다. 용기가 없던 나는 세상에서 제일 이해가 안 되는 물리라는 학문을 겨우겨우 참아내고 공대졸업장을 받았지만 그 “의대”를 향한 미련은 졸업을 하고 나이가 들어가도 계속 내 곁을 맴돌았다. 무언가 허전한 기분. 숙제를 다 안 하고 노는 것 같은. 그래서 다시 시작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수능 1년, 한의대 편입공부 1년을 했다. 나보다 열 살이 어린 친구들과 재수학원을 다니고 나보다 열 살이 많은 분들과 편입학원을 다녔다. 수능은 학원강의를 들어도 이해가 안 됐고 편입학원에서 배우는 화학은 해볼 만했지만 한자까지 시험 보는 한의대 편입은 사주도 가르쳤다.
애초에 시작부터 딱 2년만 해보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안 됐다. 공부시기를 놓친 나의 뇌는 이미 굳어버렸고 나의 의지가 약해서 못 갔다고 생각했던 의대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생각해 보니 원래 내가 갈 곳이 아니었다. 이제 30년 동안 가고 싶었던 ‘의대의 꿈’을 접어야겠다. 그 일이 내 꿈이었다기보다는 엄마의 꿈이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의 적성이 아니란 걸 50이 다 되어서 알았다.
어찌어찌 들어간 공대는 의대를 가고 싶었으나 저마다의 사연으로 의대를 못 간 영혼이 천지였다. 그중에 나의 절친은 1년을 나와 함께 학교를 다니더니 결국 휴학을 하고 의대에 가고 싶다며 재수학원에 들어갔다. 그러나 정외과를 들어가더니 1년을 못 채우고 다시 반수를 했다. 그리고 이번엔 진짜로 의대에 들어갔다.
군대를 다녀와서 정신 차린 동기가 다시 공부해서 의대에 들어가는 것도 많이 봤다. 벌써 30년 전 일이다. 그때도 그렇게나 다들 의대를 가고 싶어 했다.
그런데 30년이 지난 지금도 점수에 맞춰 다른 전공을 선택했다가 다시 공부하는 경우가 점점 늘고 있다고 한다. 며칠 전 고3인 아이 때문에 입시설명을 듣다가 요즘 의대를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얘기가 나왔다. 전국에 의대정원이 1200명인데 현역 정시로 의대에 가는 사람이 200명이라고 했다. 그러면 나머지 1000명은 재수생이다. 그중에는 4년째 의대를 가기 위해 공부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해마다 그렇게 의대를 가고 싶은 사람이 쌓이고 그 아이들이 의대에 가기 위해 다른 전공에 등록만 해놓는 사태가 벌어진다. 그러면 의대가 꿈이 아니더라도 자기가 가고 싶은 학과에 못 가는 아이들도 그 수만큼 아니 그보다 더 많은 숫자가 자기 꿈에 다가가지 못하고 방황하는 일이 거듭된다.
내가 의대에 왜 가고 싶은지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냥 결론은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였다. 물론 모두 다 나처럼 세속적인 욕망만 가지고 의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지만 그저 단순히 돈이 문제라면 사실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그 “돈”은 더 많이 버는 것 같다. 사업으로 성공하기가 힘들다고는 하지만 의사들도 병원운영을 잘못해서 망하는 경우도 있는 걸 보면 나처럼 돈 많이 벌어서 풍족하게 살자고 의사를 하려고 하는 것보다는 아픈 사람들 고쳐주고 연구하는 의사가 있어야 한다.
사람들이 왜 모두들 의사나 판검사가 되려고 하는지 생각해 봤는데 그 드. 라. 마. 들. 이 문제였다. TV에 나오는 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잘 사는 모습만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그 드라마를 보는 대다수는 회사원이거나 주부거나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너도나도 내 자식은 “사”자 들어가는 직업을 시키고 싶어 한다. 하지만 살다 보면 그 “돈”보다 중요한 게 너무나 많다.
소설 모순에는 두 명의 쌍둥이가 나온다. 한 명은 가난하고 다른 한 명은 부유하다. 책을 다 읽기 전에는 무조건 부유한 사람이 더 행복할 것 같지만 막상 살아보면 돈이 전부가 아닌 것을 알 게 된다.
이제 드라마에도 회사에 다니지만 행복한 사람, 주부지만 행복한 사람, 자영업을 하지만 행복한 사람들이 더 많이 나오면 좋겠다. 그런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의대를 가지 못해 30년째 불행했던 나처럼 되지 않도록 우리 아이들에게 절대 의대는 가지 말라고 말한다.
의대 가봐야 니 마누라만 행복하다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