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의 계절
새벽 6시. 저절로 눈이 떠졌다. 아직 30분 정도 더 자도 되지만 내 시험도 늦을 수 없는데 아이의 첫 면접을 망칠 수는 없다.
작년에 시험 본 친구 아들은 오전 8시가 면접시간이어서 새벽 6시에 집에서 나갔다고 했다. 그럼 도대체 몇 시에 일어나야 하는 거야? 나라면 4시쯤엔 일어나야 했을 텐데.
다행히 우리는 오후 면접조다.
어차피 눈을 떴으니 어제저녁에 준비해 논 소고기뭇국을 덥히고 얼른 새 밥을 한다.
흰쌀밥, 소고기뭇국, 시금치나물 이렇게 아이가 원하는 아침메뉴가 완성됐다. 하지만 조금 느끼할 거 같아 백김치도 넣어본다. 아이가 피곤하지 않게 아침밥은 도시락으로 준비하고 눈 뜨자마자 옷만 입은 아이를 데리고 출발했다.
회사 면접 말고는 본 적이 없어서 내 시험도 아닌데 더 떨린다. 아이는 잘하고 올 거라고 자신 있게 얘기하지만 다 붙은 시험을 몇 시간 차이로 등록을 못했다던가 하는 기사를 보면 사람 일이란 알 수가 없고 두 번 세 번 놓고 간 건 없는지, 시간이 틀리지는 않았는지 확인한다. 아이가 신분증을 놓고 왔을까봐 남편은 따로 여권을 챙겼단다. 병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식구들 모두 같은 병이다.
면접 4시간 전. 학교 오는 길은 막히지 않았고 지하주차장에 자리도 많다. 시작이 좋다. 아이가 아침밥을 차에서 먹는 동안 주차장 밖으로 나가 건물 주위를 둘러보고 면접장에 들어가는 입구도 눈에 익혀두었다. 이제 남은 시간을 보낼 카페를 찾으러 떠난다. 한 건물 안에 카페가 5개도 넘게 있는데 모든 자리에 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님들이 죽치고 앉아있다. 역시 지원자가 5 배수라서 사람이 정말 많구나.. 이제 막 면접이 끝난 아이를 데리고 나가는 빈자리에 우리도 바리바리 싸 온 보따리를 풀고 앉았다. 아이는 마지막 면접준비를 하고 나는 책과 아이패드를 꺼낸다.
4시간 후 수험표를 들고 면접장에 들어가려고 줄을 서는 아이들 옆으로 여러 학과 선배들이 응원을 시작한다. 나도 저 나이엔 저렇게 에너지가 넘쳤나 싶게 낯설다.
아이가 들어가자마자 학교에서 보호자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이가 나올 시간을 미리 알려주니 우리는 그동안 점심을 먹으러 가야지. 하필 오늘부터 기온이 영하다. 그래도 소달구지 타고 다닐 거 아니니 상관없다고 생각했었지만 식당 찾으러 학교 주위를 헤매다 보니 갑자기 냉동고에 들어간 고기가 된 거 같다.
아이는 학교에서 보낸 문자대로 시험이 끝난 후 정시에 나왔고 점심도 못 먹은 아이를 데리고 신당동 즉석떡볶이를 먹으러 갔다. 원조집은 늘 그렇듯이 기다리는 시간이 있어 잠시 기다리는 동안 아이가 좋아하는 맞춤케이크 집에서 겨우 하나 남은 케이크를 사고 내 입에는 도대체 왜 사 먹는지 모르겠는 즉석떡볶이를 먹고 집으로 왔다. 아침 일찍 나갔는데 오는 동안 해가 져서 깜깜해졌다.
이제 겨우 첫 번째 면접이 끝났다. 수시를 준비하는 아이가 쓸 수 있는 원서 6개 가운데 면접이 없는 곳도 있고 같은 학교의 다른 전형으로 넣은 원서도 있다 보니 앞으로 세 번 남았다.
일주일 후 두 번째 면접. 그리고 또 나흘 후 세 번째 면접. 바로 다음 날 있는 네 번째 면접. 다행히 네 번째 면접은 처음 치른 첫 번째 면접의 합격으로 안 가도 된다. 같은 학교의 다른 전형이다.
올해 초, 서로 아이 키우느라 뜸했던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아이가 이번에 서울대 공대에 붙었다고 했다. 물론 열심히 공부하느라 아이가 제일 힘들었겠지만 그렇게 공부만 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했을 친구에게 먼저 마음이 갔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진심으로 수고했다는 말이 나왔다. 내 마음을 느꼈는지 친구도 바로 고맙다고 했다. 아들만 둘을 키우는 친구는 아이가 너무 철이 없어서 언젠가는 영등포역 앞에 가서 노숙자들을 보여주고 왔다고도 했었다.
그래도 아이가 열심히 공부해서 세종과학고에 다닌다고 들어서 잘하려니 했는데 내 아이를 고등학교에 보내보니 그게 끝도 아니었다. 아무리 잘하는 고등학교에 보내도 아이는 아이일 뿐이었고 공부만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건 또다시 새롭게 시작되는 일이었다. 특히 몸은 다 자랐지만 정신적으로 어린아이들이 기숙사학교에서의 외로움을 이성친구에게 기대기 시작하면서 연애를 하게 되면 그렇지 않아도 힘든 특목고의 내신은 물 건너간다. 그러지 않으려면 아이에게 정신적으로도 힘이 되어 주어야 하고 학교 내신을 배울 학원이 대치동에만 있는 경우 주중엔 기숙사에 있지만 주말에 집에 와서는 주말 이틀을 모두 대치동을 오가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그렇게 2년 반. 금요일 저녁에 아이를 학교에서 데려오고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대치동에 데려다주고 데려오고 일요일 밤엔 다시 학교로 데려다주었다. 그 일상은 면접의 계절에도 다름이 없어서 학교생활하는 중간중간 파이널 면접 수업까지 매일 다니니 정말 11월은 다른 생각할 틈이 조금도 없었다. 이래서 다들 대치동으로 이사를 가나 싶기도 하지만 큰아이 라이딩 때문에 대치동으로 이사 갔던 친구가 결국에는 작은 아이 대입 때문에 그 이사를 후회하는 걸 보면 쉬운 일은 없다.
남편의 회사동료가 큰아이의 내신 학원이 대치동 밖에 없다는 사실을 부러워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행히 아이가 남들보다 조금 일찍 진로에 대한 목표가 확실했고 고1 때부터 하루에 3시간만 자며 귀에서 피가 나도록 열심히 공부해 주는 게 고맙기는 하지만, 그만큼 잠을 안 자서 키도 너무 작고 이제 와서야 귀에서 피가 났다는 이야기를 듣는 부모의 마음은 그저 안타깝고 슬프다.
큰아이는 어려서부터 뭐든지 빨랐다. 그래서 덕분에 좋은 학교를 다닐 수 있는 거지만 뭐든지 느린 아들을 보면 누구에게나 삶을 살아가는 속도가 다른 것 같다. 그렇다고 큰아이가 작은 아이보다 훨씬 더 행복하냐면 꼭 그렇지도 않다. 그 속도가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라고 생각하면서 큰아이와 둘째를 비교하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는다.
아이의 모든 면접이 끝나고 일주일 후 내게는 긴 후유증이 왔다. 감기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