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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urel Apr 17. 2023

엄마 말이 맞다는 걸 18년 만에 알았어

겨울방학이 끝났다. 그녀는 기숙사로 돌아갔다. 

방학 시작하고 한 달은 기숙사에 잔류했고 집에 와서 고작 3주 남짓이었지만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나 아이 입맛에 맞는 아침밥을 고민해서 준비하고, (같은 메뉴는 적어도 3주 이상 간격을 두어야 겨우 새 모이만큼이라도 한술 떠먹고 가는 분이다) 차로 마치 나도 매일 출근하는 직장인처럼 다른 사람들과 같은 출근시간에 아이를 (라고 쓰고 공주님이라고 느끼는) 관리형 독서실에 정확히 8시 40분까지 모셔다 드리고 밤 10시에 데려오고, 하루하루 기분이나 컨디션이 어떤지 점심시간, 저녁시간 전후로 3-4번 체크하고 식사는 제대로 하셨는지 물어봐야 하는 생활이었다.      


힘들었다. 몸도 마음도.     


어차피 자기 기분대로 먹거나 굶거나 하지만 그래도 엄마가 한번 물어봐주면 조금 신경 쓰지 않을까 싶어서 안 물어볼 수가 없다. 나는 항상 을이다.

그저 나 배고플 때 밥이나 차려주면 하루종일 거의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게임을 해도 되는지 아주 조심스럽게 물어보면 큰 인심 쓰는 듯 조금만 하라고 하면 되는) 순둥이 아들과는 다르다.     


야호~~~~~~~ 신난다!!!!! 자유다!!!!! 외치고 싶지만 그래도 아들이 남았다. 

아직 방학이 일주일이나 더 남았다.      


아들과 단둘이 보내는 방학이라면 대충대충 살았겠지만 딸이 있다면 절대 그럴 수 없다. 자기가 부지런한 만큼 다른 사람이 대충 한다거나 게으른 꼴을 못 본다. 나도 그런 딸에게 괜히 책 잡히고 싶지 않아서 적어도 딸 앞에선 부지런한 척이라도 한다.     


고3 겨울방학을 준비하면서 부족한 과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대부분 이제는 자기가 알아서 하지만 그래도 하루라도 더 산 내가 너보다 낫다고 생각하니 상의를 빙자한 면담을 하는 중이다. 사춘기 아이가 부모랑 말이라도 섞어주니 감사하다.


수학을 싫어하는 아이가 여전히 수학 때문에 고민하다가 그런다.     

“엄마 말이 맞다는 걸 18년 만에 알았어”     


고등학교 들어가기 전 2달 동안 같은 학교에 입학하는 다른 아이들은 대치동까지 내신학원을 다닌다더라는 내 얘기에 어차피 그전에도 학원에 목메지 않고 살았던 아이는 내 말은 무시하고 자기가 알아서 한다며 그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20개까지 지원할 수 있는 동아리를 전부 지원하느라 한 달 내내 지원서를 썼고 동영상 면접을 준비했으며 그중 17개 동아리에 합격했다. 그와 동시에 유튜브에 브이로그를 올리는 공모전에도 참가해서 기어코 자기 얼굴을 유튜브에 올리기도 했다. 그리고 증명사진 잘 찍기로 소문난 사진관에 가서 사진 찍느라 하루를 다 보내기도 하고. 


그렇게 두 달을 보내고 고등학교에 들어갔는데 1학년 중간고사에서 반 1등을 했다. 그러고 나서 기말시험에선 성적이 떨어져서 우울해하기도 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아니 2학년이 다 끝나갈 때까지도 내가 틈틈이 수학공부를 더 해놓으라고 했던 말은 생각도 안 났나 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2학년때도 동아리를 7개 유지하고 (보통 담임선생님이 2학년때는 1개, 많으면 2개 정도 하라고 권유하신다) 그중 두 개는 동아리 부장을 하고 축제 mc에 연극공연까지 했을 리가 없잖은가.     


그동안 내가 딸에게 했던 말 중에 어떤 말을 18년 만에 맞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항상 내가 하자는 대로 바로는 아니더라도 거의 결과는 내가 원하는 대로 해왔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나만의 착각이었나 보다. 그래서 그렇게 혼자 큰 것처럼 굴었구나..     


가고 싶은 고등학교를 입학하던 며칠 전, 주말에 미리 이것저것 짐들을 옮기러 식구들이 총출동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아이가 내 머리에 뚜껑을 열어버리는 한마디를 했다.

“내가 알아서 할게”

알아서.... 알.. 아.. 서???

지금까지 자기가 혼자 알아서 한 게 뭐가 있다고? 아침밥도 잘 안 먹어서 떠먹여서 키웠는데? 밥도 혼자 안 먹었으면서 혼. 자. 알. 아. 서?

이런... 제길...


그렇게 아이는 그토록 소망해 마지않던 고등학교의 첫날을 아빠와 단둘이 가게 되었다. (아빠와 아이가 성격이 똑같아서 아직도 서먹서먹하다. ) 짐을 캠핑카트에 바리바리 싣고. 엄마 가슴엔 대못을 박아놓고. 엄마는 속상해서 며칠 동안 밥도 못 먹고 앓아누웠는데 자기는 혼자 햄버거 시켜 먹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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