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아 Nov 18. 2022

엄마이지만 나이고 싶기도 해서

[친구와 떠난 애둘맘의 이탈리아 여행기 - ① prologue]


마흔, 숫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말하기로 약속한 시간의 흐름일 뿐. 아무것도 아닌 이 숫자에 왜마음이 흔들리는 걸까.  어제처럼, 그리고 오늘처럼.  그냥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평탄하게 굴러가는 하루하루 속에서 문득 마주치는 물음이었다.



첫 아이를 가진 때부터 난 전업주부가 되었다.

우리 부부가 처음 마련한 신혼집은 내가 태어나 처음 방문한 낯선 도시였다.  가까이 도움을 요청할 만한 가족도 편하게 속내를 나눌 친구도 없는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아이를 가지고 싶었고 축복처럼 어렵지 않게 아이가 생겼다.  온갖 기대를 가득 담아 기다린 아이였다.  하지만 예쁜 아이만 상상했던 나는 나의 24시간을 모두 써서 도와야 하는 존재임을 간과하고 있었다.  심지어 낮잠은 매일 고작 30분, 밤잠도 2시간 간격으로 일어나는 예민한 아이.  우는 아이를 남편과 밤새 번갈아 안아 재우며 어찌할 줄 모르던 시절이었다.  모유수유에 실패하면 마치 모성애를 시험받는 분위기 속에 모유를 쥐어짜던 날들.  밤새 이유식을 갈고 다지고 쪄서 만들고 그걸 먹는 것보다 버리는 것이 더 많았던 밤들.  초보 엄마, 아빠의 치열한 시간이었다.  모성애와 부성애를 끌어모아 아이는 조금씩 자라기 시작했다.



아이가 걷기 시작할 즈음, 하나는 외롭고 둘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삼 남매와 사 남매로 자란 우리 부부는 자라고 보니 형제만큼 의지 되는 것도 없더라며 그렇게 둘째를 가졌다. 내가 낳은 예쁜 아이가 둘이나 되다니 행복했다.  하지만 왜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을까?  당황스러울 정도로 두 아이를 키우는 일은 더 힘들었다.  육아는 그래도 한 번의 경험이 쌓였지만 두 아이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원치 않게 사랑을 나누어 가져야 하는 첫째와 늘 사랑이 부족한 둘째.  어미가 잡아온 먹이에 서로 입을 쩍쩍 벌리는 둥지의 새들처럼 자기만 봐 달라고 소치리는 아이들이 나는 늘 당황스러웠다.  하나만 낳았으면 더 잘 기를 수 있었을까?  더 많은 사랑을 충분히 줄 수 있었을까?  늘 답답한 마음이었다.  육아는 해도 해도 실력이 늘지 않는 기분이 들었다.  편히 밥 한 끼 단정히 즐기는 것이 간절한 소원이었던 시간들.  몸뚱이는 존재하지만 나라는 사람도 존재했던 걸까 싶은 신생아들과의 시간이 천천히 지나갔다.  남의 집 어른들이 보기엔 훌쩍 자라나는 아이들이지만 부모는 절대 눈치 채지 못할 만큼 아이들은 아주 조금씩 자랐다.  이제 두 아이는 유치원도 가고 초등학교도 간다.



매일 아침 두 아이를 챙겨 보내고 나면 나는 밖으로 나간다.  

집에서 쉰다는 것은 나에게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커피 한 잔을 하며 무심히 시선을 둔 집안에는 아이들이 늘어놓고 간 장난감들이 보인다.  빨래가 끝났다고 나를 부르는 세탁기 소리도 들린다.  물을 마시고 주방을 지나오다 보면 불규칙하게 쌓여있는 설거지 거리도 눈에 밟인다.  책을 읽다가도 문득 냉장고에 빨리 먹어치워야 하는 식재료들이 떠오르곤 한다.  분리수거해야 하는 쓰레기도 있는데.. 살림 알고리즘의 지옥.  그러다 보면 내 시간을 가지겠다 다짐했던 마음과 달리 어느새 내 손에는 청소기가 들려있곤 했다.  나의 일상이 가득한 환경을 벗어나야지만 나는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

 


매일 규칙적으로 출근할 곳도 마감도 보상도 없는 전업주부.  

사십 대가 되고 나니 나는 더 혼란스러워졌다.  왜 인지 더 많은 고민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난 무엇이 되고 싶은 사람인지, 나의 취향은 무엇인지, 그리고 나의 앞으로의 삶은 지금의 매일과 같을 것인지.  40년이라면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닌데 지금 나에게 남아있는 콘텐츠가 하나도 없는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  머릿속으로 바람이 지나가는 느낌이 들어 서늘해졌다.  인생 환기가 필요했다.  아이를 키우는 일 보다 의미 있는 일은 없겠지만 육아는 온전히 나를 내어주기만 해야 하는 일이다.  내 아이를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그 사랑을 주는 내가 비어 가고 있었다.  



나의 존재를 직접 느낄 수 있는 감각, 의미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고 있는 확실한 경험이 절실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짧더라도 오로지 나만을 위한 시공간이 존재해야 했다.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이 곧 내일인 일상의 연속에서 잠시 떠나보는건 어떨까.  난 오랜 계획이었던 마흔 여행을 정말 실행하기로, 또 기록하기로 마음먹었다.  일상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그 어떤 것이든 마주하기 바라면서.  나를 현재로만 그리고 나 로만존재하게 하는 시간을 떠나보려 한다.  



힘내라 나의 필력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