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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림이스트 포로리 Oct 21. 2023

엄마 무릎 학교로 등원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채워지는 것들.

"몇살이니?"


나른한 오전, 아이와 길을 걷노라면 자주 받는 질문이 몇 가지가 있다.


"어린이집은 안 가니?"

"어디 아프니?"


그러면 나는 그냥 싱긋 웃고 아이도 덩달아 싱긋 웃는다. 그럼에도 집요하게 물어보는 손이 있을때면 정중하게 대답을 하곤 한다.


"이제 33개월이에요."

"어린이집 다니지 않아요."


또 이어서 질문이 따라온다.


"아니, 왜?"


나 어릴 적에는 어린이집이 없었다. 동내에 나서면 삼삼오오 모여 놀기가 바빴다. 놀이터에 나가면 동내 언니, 오빠들이 서로 진영을 이루어 자신만의 성을 세우기 바빴다. 남자, 여자 따로 없었다. 뛰기 좋아하면 다 같이 뛰어다니고, 소꿉놀이가 좋으면 모여서 소꿉놀이도 했다. 남자, 여자 가르는 건 학교나 가야 가르는 거지 대여섯 살 동내 꼬맹이들에게 남자, 여자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부모님 대부분은 일터에 나가시고 어르신들이 오며 가며 아이들에게 참견 정도나 하셨다. 작은 시골마을이라 그랬는지 모르겠다. 


요즘은 밖에 나서면 아이들이 없다. 순전히 어른들뿐이다. 동내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건 강아지들뿐 아이들이 없다. 모두 어린이집에 다니기 때문에 평일 오전 길거리에서 아이들을 찾기란 여간 쉽지가 않다. 도시생활이 다 그런가 보다 했는지만, 문득 서서 멍하니 있다 보면 아이들은 없다.


아이와 길을 걷노라면 어르신들은 신기한 걸 보았다는 듯 말 걸기가 바쁘시다. 간혹 유모차에 타고 다니는 아기들이 보이지만 우리 아이들처럼 길거리를 걷는 아이들은 오랜만에 봤다면서 말을 걸어주신다. 그런 애정에는 감사하지만 어린이집을 다니지 않는다는 말에 마치 나를 아동학대나 하는 그런 눈으로 바라볼 때가 있다. 불쾌하기 그지없는 그런 시선은 무례한 경우가 많다. 어린이집에 가서 친구들을 사귀어야 한다던가, 사회생활을 배운다던가, 규칙을 배운다던가 등등 일장 연설을 늘어놓기 바쁘다. 자기 손주들은 다 어린이집을 다니기 때문에 똑똑하단다. 그럼 어린이집을 다니지 않는 나의 아이들은 멍청하단 건가? 어른이라는 사람들이 왜 생각은 하지 않고 자신의 잣대로 나를 평가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아는 사이도 아니고 처음 본 사이에 나의 아이가 이뻐서 다가왔다면 그냥 아이 이쁘다 하고 가면 될 길을 왜 나에게 오물을 내뱉는지 말이다.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부터는 사람이 보이면 은근슬쩍 길을 틀어버리곤 한다. 사람들이 없는곳으로 사람들이 다니지 않을만한 곳으로 피해 다니게 된다.




나는 공교육을 매우 신뢰한다. 어린이집은 보육 시설로 단어 그대로 보.육을 하는 곳이다. 밥 주고,재워 주고, 놀아주는 곳. 맞벌이 엄마들이 아이를 편안하게 맡기기 위한 곳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렇다고 전업주부는 맡기면 안 되냐? 그건 아니다. 모든 엄마들이 아이들 보육에 특화되어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때론 기관이 도움을 받아 보육을 하는 건 매우 옳다고 생각을 한다. 엄마들도 쉬는 시간이 있어야 하고, 아이를 돌보는 것 말고도 집안일 등 대소사가 매우 바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시스템을 이용하는 건 매우 바람직하고 현명하다고 생각을 한다. 다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이 모든 것이 의무가 아니라는 것이다. 


의무교육은 만 7세가 되면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는 것. 그것이 의무교육이고 공교육이다. 국가에서 

"거기, 어린이, 공부할 만큼 컸으니 학교에 나와서 공부하렴."

이라고 입학 통지서가 나온다. 그건 의무이기 때문에 보내야 한다. 하지만 어린이집은

"이봐, 아기. 너도 이제 친구들도 사귀고 엄마한테 떨어지는 연습 좀 해야지."

라고 입원 통지서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의무가 아닌 선택지의 사항이다. 

선택은 내가 원하면 가는 것이고 원치 않는다면 가지 않아도 되는 자율의지의 문제인데 간혹 선의라는 이름으로 무례로 다가오는 이들이 많다는 게 문제다. 


나도 처음에는 보육 시설을 알아보았다.  돌 즈음 어린이집을 보내지 않으면 안 되는 줄 알았기에 열심히 알아보았다. 단 한 가지 특수한 조건이 붙었다. 바로 천 기저귀였다. 천 기저귀라고 하면 다들 고리짝 시대 소창 천 기저귀 둘둘둘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요즘은 천 기저귀가 일회용 기저귀만큼 좋아졌다. 한두 시간에 한 번씩 쌌는지 확인만 해주면 되고 방수가 되기 때문에 바지 밖으로 오줌이 새어 나올 걱정도 없었다. 대변을 본다면 변기에 대변만 털어내고 기저귀만 웻백(젖은 기저귀를 담는 방수용 가방)에 넣어주면 집에서 빨면 그만이었다. 일회용 기저귀와 다른 건 일회용은 싸면 버리는 거고, 천 기저귀는 웻백에 담는 것 그것 하나다. 아이가 아토피가 있어서 천 기저귀를 사용하는 중이었기에 정중히 보육 시설 몇 곳을 돌며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전부 난색을 표현하였다. 딱, 한 곳은 원장님이 너무 좋다며 괜찮다고 하셨지만 원장님이 아니라 담당 선생님의 표정이 당황을 하셨었다. 그리곤 다시 나는 가정 보육의 길을 선택하게 되었다. 어차피 아이는 자라서 기저귀를 뗄 테고 기저귀를 떼고 나면 그때 유치원을 보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와 더 놀고, 먹고, 자기로하니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런 이야기를 구구절절 모르는 사람에게 하기도 민망하다. 아이가 왜 어린이집에 다니지 않는다는 이야기에 대답을 할 의무도 없거니와 이리 구구절절 이야기해봤자 그 사람은 또 무례한 질문을 나에게 쏟아내기에 나는 그냥 싱긋 웃고는 자리를 피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아이의 일상은 매우 단조로웠다. 매일 아침 일어나 느긋하게 아침을 먹는다. 등원할 어린이집이 없으니 세상 느긋하게 밥을 먹는다. 아빠가 출근하고 나면 나는 집안을 청소하고 아이는 장난감을 가지고 홀로 논다. 엄마가 설거지와 청소를 마치면 외출할 것을 알기에 아이는 보챔도 없이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 세탁기를 돌리고 나면 기저귀 가방 덜렁 들고 아이와 손을 잡고 외출을 한다. 주변 공원을 거닐거나 도서관을 가기도 한다. 장 볼 거리가 있으면 마트에 가기도 하고 시장 구경을 가기도 한다. 



정해진 시간 같은 건 없었다. 그저 느긋하게 아이가 구경할 것 다 구경하고, 만져보고 싶은 것 만져보고, 보고싶은 것 보면서 느긋하게 아이의 시선에, 아이의 시간에 맞추어 천천히 걸어갈 뿐이었다. 그런 오전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잤다. 적게는 1시간 길게는 3시간 대중이 없지만 아이가 충분히 잘 수 있도록 두었다. 낮잠 자는 시간에는 나도 잠시 한숨을 돌리며 책도읽고 밀린 집안일도 하는 시간이었다. 아이가 낮잠을 자고 일어나면 저녁식사시간이라서 함께 저녁 준비를 하곤 했다. 어린이용칼을 사서 두부도 썰게 하고 호박도 썰게 했다. 밀가루 반죽을 꺼내서 쿠키도 구우며 저녁을 준비했다. 저녁을 먹고 나면 목욕을 하고 퇴근을 한 아빠와 한바탕 놀이 후 아이는 꿈나라로 여행을 떠났다. 


내가 여유가 있으니 아이도 여유가 있었다. 시간에 쫓기지 않아도 되니 아이의 시선만큼 나도 머물 수가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이의 일과를 들은 다른 엄마들은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


"어린이집 스케줄이네!"


아침에 9시 등원한 아이들은 10시에 산책을 한다고 한다. 우리도 그쯤 산책을 한다. 그래서 산책하는 다른 어린이집 친구들과 종종 만나곤 했었다. 12시쯤 밥을 먹는데 우리도 그 시간이 점심시간이었다. 1시면 낮잠을 자고 일어나 놀이 후 4시 즈음 귀가를 하는데 우리 아이도 낮잠을 그 시간에 잤다.

차이가 있다면 아이들이 아침마다 일어나기 힘들어해서 8시에 깨우기 바쁘다는 것이다. 또 밤에는 잠을 자지 않아 걱정이라는 소리도 많았다. 우리는 9시면 잠자리에 들었고 아침 7시면 스스로 일어난다. 이건 지금도 그렇다. 9시면 스스로 잠자리에 들고 7시면 스스로들 일어나 깨운 적이 없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묻기에 9시에 다 같이 불을 끄고 잠들고 7시에 일어나면 따라서 일어난다고 말해주었다. 아이 친구 엄마가 아이 잠자리에 고민이 많았는지 불 끄고 함께 자기를 일주일 했더니 아이가 9시면 잠자리에 들어갔다고 했다. 너무도 당연한 건데 왜인지 나까지 뿌듯해지는 느낌이랄까! 까짓 드라마 안 보면 어때. 드라마는 재방송도 있는걸! 


아이에게 특별히 해준 것은 없었다. 일과가 너무 단조로울 땐 함께 박물관도 가고, 미술관도 갔다. 장점은 평일 오전이라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간혹 소풍 온 친구들과 겹칠 때도 있지만 대부분 우리밖에 없어서 미술관도 박물관도 전세 낸듯한 기분이었다. 또 하나의 장점은 아이가 36개월 미만일 때는 무료인 곳이 상당히 많다는 것이다. 성인 요금만 내고 마치 1+1인 것처럼 아이는 그냥 들어갔다. 그래놓고는 온갖 체험을 질릴 때까지 만지고 눌러보고 그려도 보았다. 가끔씩 1인 1개 체험인데 혼자밖에 없으니 3개 다 해보라고 주는 경우도 자주 있었다. 그렇게 느긋하게 지내서인지 아이는 여전히 느긋하다. 6시 반에 일어나 느긋하게 거실을 배회하다 책을 읽는다. 아침을 먹자고 해도 느긋하게 밥을 먹는다. 이제는 학교를 가야 하는데도 세상 느긋하게 밥을 먹는다. 옷을 입을 때도 느긋하게 상의 입고 동생 참견하고, 하의 입고 아빠 참견하고 다닌다. 

너무 느긋하게 키웠나보다.

그래도 그런 느긋한 시선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도 든다. 너무 빠르게 바뀌는 세상 속에서 내가 보아야 할 것들도 보지 못하고 지나친다면 그것만큼 아까운 건 또 없지 않을까. 마차를 타고 가던 길을 자동차를 타고 가고, 자동차를 타고 가던 길을 고속 기차를 타고 간다면 분명 빠르게 도착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길을 천천히 두발로 걷다 보면 보지 못했던 나뭇가지 속 새도 볼 수 있고 파란 하늘의 뭉게구름도 볼 수 있다. 빠르게 도착만 하는 게 아니라 여유를 배울 수 있는 걸음도 배우는 아이가 되었으면 한다.


오늘도 아이는 엄마 무릎학교로 등원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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