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람을 울리지 말아요
오늘 나는 착한데 울었다
호텔 엘리베이터의 몸을 실었다. 엘리베이터가 오를수록 점점 한강의 자동차 물결이 굽이친다.
오후 4시 집을 나섰다. 여의도 가는 버스는 사람이 많다는 이유로 정류장을 그냥 지나쳤다. 나는 급히 택시를 탔다 '기사님 국회의사당 가는데요 가실 수 있는데 까지만 가주세요' 예상대로 서강대교 초입부터 택시는 정지했다. 다리 위에서 내렸다. 대교 난간을 넘었다. 그것도 도로 서강대교 한복판에서 치마를 입고 말이다. 그나마 택시 기사가 도로 난간 가까이 내려주었다.
자동차와 자동차사이를 나는 살짝 빠르게 두어 걸음 걸어 난간을 물 흐르듯이 미끄러지면서 스므스하게 건넜다. 하루에도 몇 천만 대의 차들이 지나쳐 간 난간의 먼지가 치마사이로 다 끼어들어올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럴지언정 차 안에 있는 운전자들을 의식했다. 나의 짧은 한쪽 다리는 난간을 넘었고 바로 한쪽 몸뚱이와 다리를 서둘러 따라 넘었다. 나 스스로 살포시 놀랐다. 내 몸이 미끄러지듯 난간을 부드럽게 넘겼다. 그리 보기 흉하지 않았으리라!!!
서강대교의 노을이 흐린 날씨로 붉은 피는 토하지 못했다.
대교 중간쯤 국회의사당이 보인다.
나는 걸음을 재촉했다. 점점 더 크게 군중의 소리가 가까워졌다.
나는 낚시의자를 깔고 수많은 인파 속에 몸을 앉혔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는 부결 소리 듣고 눈물이 났다. 사실 나는 자리를 찾는 도중 십여 분전 지나가는 두 남자의 대화소리를 들었었다. 그래도 난 희망을 놓지 않았다. 아니 어쩜 '그래도 그것들도 보이지는 않아도 양심이란 게 있는데' 했던 것이다. 아니 솔직히 외치고 싶었다. 수많은 이들의 탄식을 들었다. 우리는 마음의 고요 속 폭풍이 몰려왔다. 앉아있을 수 없어 낚시 의자를 들고 서서 의자를 하늘로 들어 올리며 외쳤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하면서 그들을 죽이고 싶었다. 이렇게 나는 분노를 속으로 살인포효했다. 돌아오는 뒷길 당사에서 어느 열정의 여인 옆에서 함께 울부짖었다.
그것 또한 목이 아파와 오래 울부짖을 수 없었다. 나는 조용히 경찰 옆 구석으로 갔다.
나이 어린 경찰은 '명령에 따르고 있어요 ' 하는 눈빛과 몸짓한다. 그들이 무슨 죄와 잘못이 있으랴!!! 나는 중간급 경찰에게 그냥 결과만 알려 주었다. 중간급 경찰은 '철수만 철수 안 했네요'하며 웃었다. 분노를 삭이려 미소 지어 보였다.
소 시민의 소심한 복수
여의 공원을 지나 여의도 대로변을 건너는데 법적 건널목은 2~3분 정도 더 가야 했다.
나는 법 적 건널목을 무시했다. 사복경찰이 달려와 큰소리로 '저쪽으로 건너세요'하고 두서번 말했다. 정확히는 소리치듯 말했다. 나는 사복 경찰을 쳐다는 봤다. 무시했다. 그냥 막무가내 못 들은 척 건넜다. 결국 사복 경찰은 내 앞까지 와서 더 큰 소리로 '왜 말을 안 듣지!!' 하며 날 한번 째려보며 눈으로 욕하고 황급히 업무를 보러 뛴다. 소시민의 소심한 복수는 이렇게 심통으로 막 내렸다. 하하하
마포대교를 나와 함께 건너는 이들은 거의 가 80% 젊은 새대였다. 정확히 mz세대가 분명하다. 그들의 대화를 찔끔찔끔 들은 확신이다. 그래도 최소 이들은 이제 정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젊은이들은 영화와 교과서에 있는 그동안의 누적된 인지가 이번일로 이 현장에 와 있었다. 그들에게 희망을 걸어본다. 그리고 우리의 미래도
절대 불행하지 않다는 걸 알았다. 이번 국회의사당 현장에서 보았고 느낌이 왔다.
나는 마포대교의 저녁 한강바람을 맞아 보긴 처음이다. 그것도 걸어서 말이다.!!
함께 걸어온 젊은이들과 마포대교의 완주는 평생 잊히지 않을 것이다. 그 인파들과 한강대교 위에서 느낀 12월 7일의 밤바람을 기역 하리라. 마포대교 끝 마루호텔 22층으로 올라와 추위에 떤 내 몸을 화이트 와인으로 보상했다.
22층에서 한강을 가로지르는 자동차물결을 본다. 그리고 속으로 격하게 외친다.
제발!! 착한 나를 울리지 말아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