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그 방향은 북쪽이라구요...”
서쪽 바랑녘을 지나 남쪽 파랑만까지의 여정을 거쳐온 두 꼬마 쿠릉은 어느새 이 긴 여정 동안 많이 익숙해진 듯 능숙하게 구름을 뛰어 넘어가고 있었다. 뛰어넘는 구름의 거리도 보다 멀어지고 있었지만 짧은 다리는 어쩔 수 없는 듯 부지런히 발을 놀리는 두 꼬마 쿠릉이었다. 그렇게 두 조각구름들이 총총거리며 맑은 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그때 저 멀리서 조가 구름이 성큼이며 다가오고 있었는데 두 꼬마 쿠릉의 조각구름을 합친 것보다도 커 보였다.
“어라? 이 근방에 지내는 쿠릉이 있다는 소리는 못 들었는데. 누구지?”
토모는 갸웃거리면서도 보다 선명히 보려는지 눈에 힘을 잔뜩 주어 다가오는 구름을 바라보았다. 하얀도 그런 토모를 따라 눈에 힘을 가득 주어 다가오는 구름을 보았지만, 거리 때문에 제대로 보일리가 만무하였다. 그렇게 두 조각구름과 한 뭉치의 구름이 서로 가까워지기 시작하였고, 그 위를 훌쩍 뛰어넘고 있는 한 쿠릉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훤칠한 키에 동그란 안경을 쓴 그 쿠릉은 구름 목도리로 한껏 멋을 부린 모습이었다. 서로 목소리가 닿을 정도의 거리가 되었을 때, 안경을 쓴 쿠릉이 반가운 얼굴로 두 손을 좌우로 흔들며 소리쳤다.
“어이! 꼬마 쿠릉들! 안녕! 소문의 꼬마 쿠릉들을 이제야 보네. 나는 쿠비라고 한다. 다른 쿠릉들은 나를 떠돌이 쿠릉이라고들 부르지.”
쿠비의 인사를 들은 토모의 눈이 순간 동그래졌고, 그걸 본 하얀이 의아한 표정으로 토모에게 물었다.
“토모 형, 아는 이름이에요? 왜 이렇게 놀라요?”
“우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지! 그 소문으로만 듣던 떠돌이 쿠릉인 쿠비인걸! 어디에 정착하지 않고 정해진 곳 없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쿠릉은 쿠비가 처음일 거라고! 나도 지나한테 이야기로만 들었는데. 어떻게 여기서 만나지? 신기하다 신기해.”
토모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자 쿠비는 이내 민망해졌는지 헛기침을 해대었다.
“큼큼, 아니 내가 그렇게 유명했나. 그나저나 너희는 왜 북쪽에서 오고 있는 거야? 서쪽 모모 할머니께 인사드리러 간다고는 들었는데 말야.”
“저기 쿠비...? 저희는 지금 서쪽 바랑녘 들렀다가 남쪽 파랑만 거쳐서 동쪽으로 가는 중이에요. 그리고 북쪽은 이쪽이 아니라 저기인데요...?”
하얀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그러자 토모가 하얀에게 바싹 다가와 속삭였다.
“(떠돌이 쿠비는 온 세상을 돌아다니는데, 방향을 몰라서 그렇다는 이야기도 있데. 그게 사실이었나 봐)”
“(설마요...? 말도 안 돼...)”
하얀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토모와 쿠비를 번갈아 바라보았고, 두 꼬마 쿠릉의 속닥임을 바라보던 쿠비는 헛웃음을 치며 고개를 저었다.
“어이어이, 거기 다 들리거든? 말 많은 걸 보니 네가 동쪽 구릉의 토모고 이 뽀얀 꼬마 쿠릉은 초롱골의 하얀이겠구나. 반가워. 하하.”
자신들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쿠비를 보며 두 꼬마 쿠릉은 더욱 신기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하얀이 쿠비를 향해 물었다.
“우와, 저희를 어떻게 아세요?”
“이봐, 하얀. 이 떠돌이 쿠릉 쿠비가 모르는 일은 없다구. 모든 소문과 이야기는 이 몸의 입에서 시작해서 이 몸의 입에서 끝난다고 할 수 있지!”
금새 우쭐해진 쿠비의 어깨가 으쓱이며 올라갔다. 그 말에 두 꼬마 초롱은 금세 눈이 반짝이며 쿠비를 바라보았다. 마치 무언가 더 말해 달라는 눈빛이었다. 마치 네 개의 보석이 햇살에 반짝이듯이자 쿠비는 순간 당황했지만, 목에 걸고 있던 구름 목도리를 한 바퀴 휙 돌리고는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좋아, 우리 꼬마 쿠릉들! 무슨 이야기부터 해주면 좋으려나.”
두 꼬마 쿠릉은 가득 찬 기대감에 아예 구름 위에 자리를 찾아 앉고는 쿠비를 바라보았다. 쿠비는 서서 그 두 꼬마 쿠릉 주위를 뱅뱅 돌며 강의를 시작하는 선생님 마냥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하였다.
하얀은 그동안 토모가 가장 말이 많다고 생각했지만, 쿠비의 수다에 비하면 토모의 수다는 그저 떠다니는 아기 조각구름만 하였다. 하얀의 그동안 짧은 생에 최고의 수다쟁이를 만난지도 몰랐다. 쿠비의 입에서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는 각지의 신기하고 새로운 이야기들에 두 꼬마 쿠릉은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어갔다.
수많은 이야기 중에서 두 꼬마 쿠릉의 흥미를 가장 돋우는 것은 역시나 구름 아래 펼쳐진 세계였다. 서쪽 바랑녘을 넘어 더 먼 서쪽의 이야기, 북쪽 어름망을 넘어 더 추운 북쪽의 이야기, 남쪽 파랑만을 넘어 끝이 없이 펼쳐진 바다 위의 이야기, 동쪽 구릉을 너머 지평선 너머로 굽이치는 산맥들의 이야기까지 근처만 다녀보았던 토모나 이 모든 이야기가 처음인 하얀은 각자의 머릿속에서 열심히 그림을 그리면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구름 아래 땅과 바다, 산과 강, 나무와 동물들에 대한 신기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쿠비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와, 쿠비. 얼마나 많은 곳을 돌아다닌 거예요? 저는 이제 겨우 두 세 곳을 돌아다니는데도 지치는데 정말 상상도 안 되는걸요? 대단해요!”
하얀의 꾸밈없는 감탄에 쿠비는 괜히 쑥스러운 듯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냥 부지런히 다니는 거지. 난 새로운 것들을 보는 게 정말 즐겁거든. 세상은 너무 넓어서 아직 못 가본 곳도 많구. 뭐, 바퉁은 쿠릉의 의무를 저버린다고 매번 뭐라 하지만 말이야.”
쿠비를 만나는 여러 쿠릉들은 쿠비가 풀어놓는 많은 이야기를 좋아하지만, 특히 인기 있는 이야기는 쉽게 만나 볼 수 없는 각지의 다양한 쿠릉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는 자신의 지역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쿠릉들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아참, 토모. 동쪽 구릉 지나면서 지나를 만났는데 네 걱정을 많이 하고 있던걸? 제대로 가르쳐주고 있나 몰라하고 말이야, 하하.”
쿠비의 말에 토모는 금새 쌜쭉이는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가슴을 탕탕 치며 자신 있게 말했다.
“아무렴요! 제대로 가르쳐주고 있죠! 그치 하얀?”
“맞아요! 토모 형한테 정말 많이 배우고 있어요!”
두 눈에 힘이 잔뜩 들어간 꼬마 쿠릉들의 의기투합에 쿠비는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하하, 이거 예상외로 믿음직스러운데 토모? 다른 쪽에는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둬야겠어.”
쿠비의 말에 금세 우쭐해진 토모 뒤로 하얀이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쿠비는 이제는 어디로 가는 거예요?”
“바람 따라 흘러가는 구름 따라다니는 거지. 음, 사실은 모모 할머니 쪽으로 가보려는 중이야. 최근에 몸이 안 좋았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해서 말야.”
토모가 쿠비의 말에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저희도 최근에 모모 할머니 뵙고 왔어요! 걱정했던 것보다는 좋아보이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그래? 그거 참 다행이네. 좋아! 꼬마 쿠릉들! 이제 나는 다시 길을 서둘러야겠어. 너희도 더 늦기 전에 부지런히 이동해야지?”
금세 다가온 이별의 순간에 하얀이 두 볼 가득 섭섭함을 담고는 우물거리며 말했다.
“쿠비, 이렇게 금방 헤어져서 아쉬운걸요..”
“우리 꼬마들. 쿠릉은 만남과 헤어짐이 익숙해져야 한다구. 너희가 만지는 구름들도 그렇잖아? 어느덧 밀려들어와서는 언젠가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는 하지. 그리고 우리는 또 새롭게 밀려올 구름들을 기다리잖니. 헤어짐은 또 새로운 만남을 약속하니까, 너무 아쉬워하지 않아도 돼. 하얀은 그때까지 더 멋진 쿠릉이 되어 있으라구. 토모도 지나 말 잘 듣고 있고.”
“네! 쿠비 말이 맞아요. 다음 볼 때까지 멋진 쿠릉이 되어 있을게요!”
“에잇! 지나 말 잘 듣고 있다니까 걱정하지 말라구요!”
짧은 인사가 끝나고 잠시 정적이 흘렀다. 아직 두 꼬마 쿠릉에게는 헤어짐이 남기는 아쉬움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쿠비는 피식 웃고는 크게 구름을 떼어놓고 훌쩍 올라탔다. 그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발걸음을 떼놓기 시작했는데, 쿠비는 등 뒤로 두 꼬마 쿠릉의 시선이 느껴지자 목을 가다듬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떠돌이 쿠비♪
동서남북 온 하늘을 떠돌지♪
나는 떠돌이 쿠비♪
지금은 어디로 떠나는 걸까♪
나는 떠돌이 쿠비♪
그래 서쪽, 서쪽의 바람을 맞으러 가자♪
두 꼬마 쿠릉은 그렇게 멀어지는 쿠비의 노래와 함께 떠나는 그의 뒷모습이 점이 될 때까지 한참을 바라보았다.
“아니...그 방향은 북쪽이라구요...”
망연자실한 하얀의 한 마디만이 허공을 맴돌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