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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자란한뼘 Jul 04. 2024

남쪽 바다의 두 친구들

찾아. 스스로. 정해진 건 없어.

두 꼬마 쿠릉이 서쪽에서 부지런히 발걸음을 놀린 지 며칠이 지났다. 건조하던 바람은 어느새 거짓말처럼 눅눅해져 무거워지고, 바람결 속에 짠맛이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힘껏 숨을 들이쉬어 바람 맛을 보던 하얀이 토모를 보며 말했다.    

 

“토모 형, 여기 공기는 되게 무거워요. 그리고 신기한 맛이 나는데요?”     


“맞아, 특히나 우리가 서쪽에서 내려와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아. 이제 좀 숨 좀 편하게 쉬나 싶었더니 여기는 바람이 텁텁하네.”     


토모가 한 껏 인상을 찌푸린 채 투덜거렸다.  

    

“짠맛은 바다 때문인데 엄청나다구! 하얀, 너도 곧 보게 될 거야. 정말 기대해도 좋아.”     


하얀은 처음 듣는 바다라는 단어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는 와중에도 두 꼬마 쿠릉은 구름을 뛰어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더 남쪽을 향해 가던 중에 드디어 저 멀리 구름 아래 지평선으로 끝도 없는 물들이 가득히 보이기 시작하였다. 해는 하늘 가운데 높이 떠 있었고, 바람은 남쪽으로 향하는 살랑살랑 불어와 두 꼬마 쿠릉의 발걸음을 살포시 밀어주고 있었다.   

   

“하얀! 드디어 파랑만이 보여! 저기야 저기! 저 물들 보이지? 저걸 바다라고 부른다고!”    

 

“우와아, 토모 형 대단해요! 이렇게 많은 물을 본 적은 처음이에요! 서쪽 바랑녘에 물 구덩이도 정말 컸는데 여기는 그거에 백배 천배는 되는 것 같아요!”     


“에이, 천배라니! 만 배는 더 넘을지도 몰라. 하하”     


바다의 끄트머리를 발견한 두 꼬마 쿠릉은 신난 마음에 오랜 여행에도 지친 기색 없이 더욱더 속도를 높이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두 꼬마 쿠릉은 바다가 펼쳐지는 해안가 근처 위의 구름까지 닿은 후에야 멈춰서 숨을 고를 수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까 더 엄청나요...바다란 것은 정말 대단하네요. 그나저나 토모 형, 저기 바다 위의 구름은 덩치가 엄청난데요? 두께가 어마어마해요!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 같아요.”    

 

하얀이 가리킨 방향에는 짙검은 구름이 하늘 높이 솟아 있었다. 그 두께는 하얀의 말만 따라 어마어마하게 두꺼웠는데, 마치 온 하늘을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그러게, 요요 형이나 미누 누나가 구름 일을 하고 있으려나? 곧 비가 쏟아져 내릴 것 같은데?”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짙은 구름은 조금씩 물방울을 한 두 방울 내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바다 위로 비를 쏟아내기 시작하였다. 온 바다를 뒤덮는 비가 만드는 소리에 하얀이 탄성을 지르기 시작하던 바로 그때였다.  

   

쿠룽- (번쩍!) 쿠루룽-      


저 멀리서부터 번쩍이는 빛들이 스치고 온 하늘에 굉음이 진동하였다. 삽시간에 발생한 일에 하얀은 깜짝 놀라서 토모의 구름 속으로 숨어들었다. 토모도 순간 얼어붙었지만, 애써 괜찮은 듯 으스대며 구름 속의 하얀에게 말하였다.     


“하얀, 괜찮아. 저건 번개와 천둥이라고 해. 저렇게 검고 두꺼운 구름에서 큰 비를 내릴 때면 일어나곤 해. 너무 놀라지 않아도 돼.”    

 

하얀은 토모의 안심시키는 말과 이내 잠잠해진 하늘을 느끼고는 머리를 반쯤 구름 밖으로 내밀었다. 눈만 겨우 구름 밖으로 나와 바깥 상황을 바라보았는데, 아까만큼은 아니지만 간간히 천둥과 번개가 쉬지 않고 세상을 흔들고 있었다.      


“으아, 토모 형. 깜짝 놀랐어요. 하늘이 무너지는 줄만 알았다구요.”     


하얀의 말에 토모는 어깨를 으쓱이며 너스레를 떨었다.     


“하얀, 이 정도는 익숙해져야 훌륭한 쿠릉이라고 할 수 있다구. 너도 언젠가는 저만한 천둥과 번개를 내리는 구름을 쌓을 수 있을 거야.”     


“으에, 저 정도 구름을 쌓으려면 며칠은 쉬지 않고 일해야겠는걸요? 혼자서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러게? 혼자 하기는 너무 커 보이긴 하네. 요요 형이랑 미누 누나가 같이 있는 걸까? 하얀, 한 번 가보자.”  

   

두 꼬마 쿠릉이 작은 조각구름들은 종종거리며 거대한 비구름으로 다가가기 시작하였다. 짙검은 비구름은 어찌나 큰지 가뜩이나 조그마한 두 쿠릉의 조각구름이 손톱만 해 보일 정도였다.


“요요 형! 미누 누나! 저 토모에요! 하얀이랑 같이 왔어요!”     


토모는 아무리 소리를 쳐봤지만 쉴만하면 내리치는 번개과 하늘을 울리는 천둥소리에 묻히기 일쑤였다. 토모를 따라 하얀도 함께 소리를 쳐보았지만 거대한 비구름을 뚫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대신 거대한 비구름을 열심히 거슬러 올라가 보니 그 위에 두 쿠릉이 비구름 정상 한편에 널브러져 있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 저기 요요 형이랑 미누 누나다! 여기요 여기!”     


토모는 반가움을 숨기지 못하고 양손을 흔들며 다시 소리를 치기 시작했고, 그제서야 멀리서 두 쿠릉이 두리번거리며 일어나기 시작했다. 하얀과 토모를 발견한 요요는 환히 웃으며 미누에게 무언가 말을 하였고, 고개를 돌려 두 꼬마 쿠릉을 확인한 미누의 무표정한 얼굴에도 미소가 잠시 스쳐지나갔다다. 구름 몇 개를 훌쩍 뛰어넘어 순식간에 두 꼬마 쿠릉에게 다가온 요요와 미누는 피곤해 보였지만, 사랑스런 손님들의 등장에 기분이 좋아 보였다.     


“토모, 하얀. 모모 할머니께는 벌써 다녀온 거야? 이번 구름 일을 하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네. 봐봐 엄청나지? 미누가 없었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어. 혼자 이 많은 구름 일을 할 것만 상상해도 정말 끔찍한 걸.”   

  

요요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미누를 바라보며 감사를 표했고, 미누는 그저 고개를 한 번 까닥일 뿐이었다.


“맞아요! 지난여름에 여러 쿠릉들이 쌓은 비구름에 못지않게 엄청 커요! 대단해요!” 

    

토모의 요란에 요요는 조금 쑥스러운 듯이 두 눈을 꿈뻑거렸다. 그새 또 하늘을 흔드는 천둥 번개가 지나갔고, 순간 요요가 고개가 깊게 움츠러들었다. 하얀은 어느새 적응이 되었는지 구름 속에서 뻗어나가는 번개를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었고, 이 모습을 본 요요는 서둘러 짐짓 괜찮은 척을 하였다.     


“거 참, 천둥 번개는 언제 봐도 익숙해지지가 않는다니까. 저번에 실수로 구름 일을 하다가 번개를 한 번 맞은 적이 있는데 정신이 번쩍 들더라구. 으으.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아.”    

 

부그러워서인지 수다스러워진 요요를 보며 미누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몇 마디를 내뱉었다. 

    

“요요. 겁. 많아.”     


“에이, 미누. 내가 겁이 많은 게 아니라 정말 찌릿했다니까. 경험해보지 않으면 그 느낌은 정말 몰라.”     


요요가 툴툴거리며 말했다. 번개를 맞았다는 요요의 말에 하얀은 놀란 표정을 지었고, 토모는 이를 보며 깔깔대며 웃었다.     


“하하, 하얀. 너무 걱정 마. 나도 맞아보지는 않았지만, 요요 형도 멀쩡한 거 보면 별 문제없는 거야. (근데 쿠릉이 번개 맞는 게 흔한 일은 아냐.)”     


“토모, 다 들리거든? 마지막 말은 굳이 할 필요가 없는데 말이야.”   

  

요요의 핀잔에 토모는 멋쩍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고, 이에 미누가 다시 한 마디를 더했다. 

    

“토모, 맞는 말.”     


“미누, 너까지 자꾸 그럴래!”     


그렇게 소란스런 구름 위에 소란스런 네 쿠릉이 있었다.     


요요와 미누가 고생해서 쌓아 올린 거대한 비구름은 며칠을 더 바다에 비를 쏟아 내렸다. 하얀과 토모는 그동안 멍하니 비가 내리는 모습을 바라보거나 때론 눈을 감고 비가 후두두 내리는 소리를 그저 즐길 뿐이었다. 그렇게 몇 날이 더 지나자 비구름은 서서히 흩어졌고, 어느새 조막만 해진 구름 위에 네 쿠릉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구름이 걷히고 내리는 햇살에 반짝이는 바다를 바라보던 하얀이 그동안 내내 참고 있던 궁금증을 풀어내었다.     


“그런데 우리 쿠릉은 왜 구름 일을 하는 걸까요? 때로는 이렇게 힘들게 말이에요.”     


하얀의 질문에 요요는 할 말을 미처 찾지 못하다가 마지못해 대답하였다.  

   

“그야...우리는 쿠릉이니까...?”     


“으휴, 토모. 그런 대답은 지나가는 구름도 하겠다. 사실 어려운 질문이긴 해. 바퉁은 우리가 구름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당연한 거라고 말하거든.”     


“에에! 요요 형, 내 대답이랑 다를 게 없잖아요!”    

 

“음, 맞아. 네 말도 사실 틀린 건 아니지. 그런데 구름들은 우리가 일해주지 않으면 여기저기 흩어지고 바람 따라서 그저 돌아다니기만 할 거야. 하지만 저 밑에는 구름이 만들어 주는 그늘이 필요한 곳도 있고, 때론 구름이 내려주는 비나 눈을 필요로 하는 곳도 있거든. 누가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느낄 수 있잖아?”     


요요의 말은 조금 모호하지만 토모의 말과 근본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얀의 머릿속에서는 한 번 시작된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하였다.     


“그럼 쿠릉들은 구름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나는 걸까요?”   

  

그동안 묵묵히 듣고만 있던 미누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쿠릉의 탄생. 목적. 그런 건 없어. 그저 태어나. 살아가다. 돌아가. 어머니 하나께.”   

  

미누의 진지하고 진중한 목소리에 토모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혼잣말을 속삭였다. 물론 모두에게 다 들렸지만 말이다.     


“와, 미누 누나가 저렇게 말 많이 하는 거 처음 봤어.”     


미누는 그런 토모의 속삭임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요요도 그런 미누의 모습이 꽤나 신기한 듯 미누의 말에 집중하였다.     


“쿠릉의 목적. 찾아. 스스로. 정해진 건 없어. 하얀, 너만의 목적. 찾을 수 있어.”   

  

“그렇구나...나만의 목적이라...나라는 쿠릉이 태어난 이유는 내가 만들어간다는 거네요? 처음 생각해 봤어요! 미누 누나는 찾았어요?”     


초롱초롱한 눈망울 하고 있는 하얀의 질문에 미누는 여전히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비밀. 하얀, 찾아오면. 그때. 말해줄게.”     


“네! 약속이에요! 꼭 찾아서 미누 누나가 찾은 비밀을 들으러 다시 올게요!”     


하얀의 당찬 포부에 미누는 희미한 미소를 띠고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하얀과 미누의 대화를 듣던 토모도 이에 질세라 외쳤다.     


“나도! 나도 내가 태어난 이유를 찾을 거라고요! 하얀, 찾으면 너한테 가장 먼저 말해줄게!”     


요요는 잠시 생각에 깊이 잠긴 듯 보였다. 구름 일이 당연한 쿠릉들에게는 이러한 질문이 쉽지 않은지도 모른다. 그건 두 꼬마 쿠릉뿐 아니라 요요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이거 나도 한 번 고민해 봐야겠는걸. 지금까지 미처 생각지도 못했어. 나의 목적이라.”   

  

그렇게 상념에 잠긴 겁쟁이 쿠릉과 두 꼬마 쿠릉에 뒤로 하고 미누는 자신의 영역으로 돌아갈 채비를 시작하였다. 얼마 남지 않은 구름 한 조각을 떼어내 올라타고서는 두 꼬마 쿠릉을 향해 말하였다.   

  

“토모, 하얀. 또 봐. 나중에.”     


“미누 누나! 다음에 봐요!”     


“약속 꼭 지킬게요! 다음에 초롱골에도 놀러 오세요!”     


반가운 만남은 항상 아쉬운 작별을 낳는다. 요요는 미누의 떠나는 뒷모습을 보면서 남은 구름을 마저 정리하며 두 꼬마 쿠릉에게 말했다.     


“너희도 이제 슬슬 출발해야지. 다음은 동쪽 구릉이지? 갈 길이 만만치 않네. 가면서 굶지 말고 구름 잘 챙겨 먹어.”     


한층 씩씩해진 두 꼬마 쿠릉은 요요가 한 움큼 챙겨준 구름에 올라탄 후 요요에게 손을 흔들었다.   

   

“요요 형, 정말 즐거웠어요! 다음번에는 번개 안 맞게 항상 조심하구요!”

     

토모의 장난스러운 말에 요요는 쓴웃음을 지으며 손을 휘저었다. 하얀은 그 모습을 보며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얼른 출발이나 해, 이 꼬마 쿠릉들!”     


그렇게 두 꼬마 쿠릉의 남쪽 파랑만 여정이 마무리되고, 두 조각구름은 총총히 동쪽으로 향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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