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해를 주고 받으며 살아가는 우리
이 직업은 참 묘하다.
기분이 좋은 날엔 내가 마치 대단한 여행가나 탐험가 같았지만, 우울할 땐 나 혼자만이 허공에 부유하는 먼지 같았다. 이런 삶이 꽤나 괜찮게 느껴지다가도 갑자기 처량한 떠돌이 같아 보이던 감정의 냉탕과 온탕의 반복이었다.
그리고 정확히 10년 만에 고립(좋은 의미로 정착)되고 만다. 우리 모두는 멀어져야만 했고, 끊겼고, 막혔고, 단절되고야 말았다. 나는 마치 목줄에 매여있는 강아지가 된 기분으로 한 시대의 쇄락을 무력하게 보고만 있었다.
아무도 모르게 혼자만 조용히 보낸 내 아침이 태양의 고도 변화에 따라 증발해버리기를 반복하고, 어제 같은 오늘과 내일이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지나고 있었다.
코로나 블루(Corona blue)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나를 건져 올린 건 SNS에서 우연히 본 짧은 시였다.
"캄차카 반도의 젊은이가 기린 꿈을 꾸고 있을 때,
멕시코의 여자아이는 새벽 안개 속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뉴욕의 소녀가 잠자리에서 뒤척일 때
로마의 소년은 빨갛게 떠오르는 아침 해에게 윙크한다.
이 지구에서는 언제 어디서나 아침이 시작되고 있다.
우리는 아침을 릴레이하고 있는 것이다.
경도에서 경도로
그렇게 교대로 지구를 지킨다.
잠들기 직전 한동안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어딘가 멀리서 아침의 자명종 시계가 울리고 있다.
그것은 당신이 보낸 아침을 누군가가 분명히 이어받았다는 증거다."
-타니가와 슌타로 <아침의 릴레이>
일본의 한 커피 광고에 인용된 이 시는 우리가 결코 단절된 것이 아니라고 얘기한다. 우리는 멀어지지 않았고 단절되지 않았으며 그저 각자의 자리에서 아침 해를 주고받으며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것이라고. 이 시를 본 순간부터 갑자기 외롭지 않았다. 고립감에 몸서리 쳤지만 이상하리만치 괜찮아졌다. 심지어 지구 상의 누군가에게 좋은 아침을 넘겨주어야 할 것만 같은 사명감 마저 생겨났다.
오늘도 아침 8시에 일어나 커튼을 열고 요가를 한 후 강아지와 산책을 하고 커피를 사왔다. 그리고 이제 책상에 앉아 이 글을 쓰며 서쪽 나라의 누군가에게 아침 해를 넘겨 주려 한다.
경도에서 경도로.
좋은 하루를 살아 내 주시길.
좋은 아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