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9시부터 식탁에 다 같이 둘러앉아 공부를 시작한다. 엄마가 작성한 계획표를 보며 아이들은 각자 할 일을 한다. 공부를 시작하기 전부터 옆으로 가라고, 만지지 말라고, 지우개 달라고 아우성이다. 도서관처럼 조용히 공부하길 원하는 엄마는 잔잔한 피아노곡을 틀어준다. 하지만 소음에 소음이 겹친다. 점점 더 소란스럽다. 결국 하루를 ‘샤우팅(shouting)’으로 시작한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나흘 동안은 강의를 보고 문제집을 풀며 진도를 나간다. 금요일 오전에는 그동안 푼 문제를 채점한다. 채점을 해서 틀린 문제는 그냥 고치지 말고, 개념 확인을 통해서 답을 공부해 오라고 한다. 밑줄을 긋고 필기를 하라고 한다. 그것조차 하기 싫으면 찾은 페이지를 적으라고 한다. 공부는 엄마를 위한 게 아니라 본인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다시금 되새겨준다. 답을 찍어서 하는 공부는 시간낭비라고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한다.
얼마나 많이 틀린 것인가. 다 맞은 페이지에는 용돈 100원이 걸려있는데도 소용이 없다. 하루가 다 지나도록 다하지 못했다고 한다. 재 채점을 하는데 틀린 게 한두 개가 아니다. 쉽게 말해 ‘오픈 북’이지 않는가. 답을 찾아서 고치라고 했는데 왜 틀리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
공부한 걸 가져오라고 한다. 아이는 쭈뼛쭈뼛하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화가 나지만 꾹 참고 다시 공부를 해서 가져오라고 한다. 이번에는 기필코 열심히 해오겠다는 굳은 결심을 내비치며 큰소리로 대답한 뒤 방으로 후다닥 들어간다. 대답만큼은 최고다.
다시 채점을 한다. 또 틀린다. 필기한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그냥 찍어온 거라 여길 수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 일주일, 이주일이 흘렀다. 틀린 페이지에 붙은 라벨은 점점 더 늘어간다. 진도는 100페이지가 넘어가는데 틀린 곳을 표시해 주는 라벨은 20페이지부터 붙어있다. 틀린 문제부터 고쳐오라는데 계속 진도만 나가는 아이가 기가 차다.
주말에는 마지막으로 기회를 준다며 아파트 북카페에 가서 공부하게끔 했다. 평일 공부시간도 다 채우지 않아 모자란 시간만큼 공부를 더 하게 시켰다. 다했다고 해서 채점을 하는데 중간에 한두 개씩 문제를 안 풀었다. 어떤 것은한 장을 붙여서 넘겼는지 아예 풀지도 않았다. 재차 확인하라고 했건만 변화가 없다. 단전에서부터 쌓여있던 화가 순식간에 폭발을 한다.
“너 이게 뭐야? 한두 번도 아니고. 북카페까지 가서 공부했잖아. 확인하라고 몇 번을 말했니? 중간에는 도대체 왜 안 푼 거야? 문제를 처음부터 안 풀고 왜 중간부터 풀어? 개념부터 순서대로 풀어야 할 것 아냐? 이런 자세로 무슨 공부를 하겠다는 거야! 이럴 거면 공부하지 마. 여기서 공부하는 척하지 말고 할머니 집에 가서 그냥 놀아!”
“엄마, 잘못했어요. 공부할게요.”
“아니, 넌 지금 공부하는 의미가 없어. 공부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면 시간만 낭비하는 거야. 네가 제대로 안 해서 지금 엄마도 너도 스트레스받잖아. 당장 할머니집으로 가!”
“안 갈 거예요. 할머니집 가면 집에 못 오잖아요.”
“엄마 지금 힘드니까 할머니집 가서 하루 밤 자고 놀다가 공부하고 싶으면 그때 공부 제대로 해서 와!”
한참을 실랑이하다가 방에서 조용히 눈치를 보던 아이는 단호한 말투에 주섬주섬 옷을 챙겨 앞동에 사는 할머니집으로 향했다. 아이가 없으니 조용하다. 나에게도 휴식이란 게 찾아왔다. 모르는 게 약이라고 아이가 뭘 하는지 눈에 보이지 않으니 화도 덜 난다. 마음을 가라앉히니 머릿속이 분주해진다. 도대체 이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
지금껏 다양한 방법을 써봤다. 책도 읽고 유튜브도 보며 나름의 방식을 찾아서 노력했다. 하지만 아이는 점점 크면서 변한다. 아무리 애써 봐도 잘 되질 않는다. 그렇다고 아이가 모난 것은 아니다. 이제 6학년을 앞두고 있는데도 아직 철부지 어린애이다. 다 컸다고 생각되는 아이가 아직 어린애처럼 행동하니 답답해서 더 화가 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이 방에 들어가 본다. 들어가지 말았어야 했다. 매일 정리정돈을 시키고 주말마다 대청소를 시키는데도 방이 지저분하다. 책상엔 책과 문제집이 널브러져 있다. 얼마나 지워댔는지 반쪼가리가 된 지우개옆에는 지우개똥이 너저분하다. 묵직한 3단 서랍장을 빼는데 덜컹한다. 책이 서랍장 밑에 끼었다. 책 여러 권을 겨우 꺼내는데 그 옆에 빵빵한 가방들이 내 눈을 사로잡는다. 종이가방, 비닐봉지, 캔버스 백에 학교가방, 학원가방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지금까지 정리하라고 했던 잡동사니와 책을 그 가방 안에 다 쑤셔 놓았다. 책상 옆 커튼 밑에는 재활용박스와 나무젓가락이 수두룩하다. 숨겨놓은 건지 떨어진 건지 잘 모르겠다. 엄마한테 혼나고 급하게 나가느라 그런 걸까, 옷걸이에 있던 옷가지와 가방은 바닥에 나뒹군다.
한숨이 나온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방에 있는 것들을 다 없애야겠다. 이미 몇 차례 책을 다 빼서 정리를 해줬는데도 여전히 지저분하다. 남아 있던 공간엔 A4용지 무더기와 만들다 만 재료, 잡지책들이 꽉 들어찼다. 변화가 없는 방구석을 보니 답답하다.
책을 훔치듯 몰래 가져가 읽는 아이를 어쩔 도리가 없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주체하지 못하고 엄마 몰래 가져간 재활용품으로 이것저것 만들어대는 이 아이를 어쩌란 말인가. 만들기를 너무 좋아해서 이번 겨울방학에는 일부러 미술학원에 보냈는데 이제는 학원에서도 만들고집에서도 만든다. 공부하다 말고 계속 만들어대니 그게 문제다.
아이 방에 있는 온갖 것들을 한데 모았다. 꺼내니까 더 난장판이 되었다. 4학년때 했던 프린트물들도 아직 여기저기 처박혀있다. 매년 한 학년이 끝나면 정리를 하는데, 왜 정리가 안 되어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정리하라고 잔소리만 했었나 보다. 확인을 제대로 안 한 내가 잘못한 것인가, 정리 안 한 아이가 잘못한 것인가. 작년에 재작년 프린트물까지 쌓여 있으니 두 배로 속 터진다.
이참에 정리해서 싹 갖다 버리리라. 시무룩한 아이를 집에 보냈다는 친정엄마와의 통화를 끝내자마자 아이가 집에 왔다.
“정리할 거면 빨리 정리하고, 정리할 거 없으면 다 갖다 버릴 거니까 그냥 놔둬.”
“정리할게요.”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났는데도 족히 500장은 돼 보이는 종이들은 줄어들지가 않는다. 4학년 거, 5학년 거, 글쓰기&그림 세 개로 나눠 정리하고 나머지는 분리수거함에 넣으라고 얘기를 했는데도 소용이 없다. 혼자 하라고 내버려 뒀더니 하나하나 구경을 하고 있었나 보다. 정리가 끝나지 않으면 밥을 안 주겠다고 반 협박을 하며, 버릴 것&안 버릴 것 두 개로 정리하라고 기회를 줬다. 정리가 끝나지 않아 결국 밥을 먹이고 또다시 정리를 시켰다. 10시가 넘었는데도 부스럭부스럭 소리가 난다. 빨리 불을 끄라고 다그친다. 프린트물 정리만 시켰는데 4시부터 10시가 넘도록 끝내지 못한 아이가 답답할 뿐이다.
다음날아침 아이 방에 들어가 보니 어제 상태 그대로다. 그냥 책상 위에 올려놨다. 또다시 화가 난다. 정리부터 하라고 잔소리를 한다. 아이는 오전 내내 정리를 하다가 학원 갈 시간이 돼서 급히 나갔다. 샅샅이 뒤지면 또 맘에 안 들게 뻔하다. 그래서 보지 않기로 했다. 정리했다고 한 것은 그냥 그렇게 두기로 한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이젠 어쩔 도리가 없다. 마음을 비우고 내려놓는다.
아이마다 다 다르고, 다르게 키워야 한다는 것쯤은 나도 안다. 하지만 난 전문가가 아니다. 책을 읽고 배운 것을 아이에게 접목시켜 보지만 제대로 되지 않는다. 내 아이에겐 다양한 성향이 존재한다. 특별한 아이라서 그런 건지 전문가가 알려주는 획일화된 방법은 통하지 않는다. 머리를 굴려가며 이것저것 다 해 보았지만 잠시잠깐뿐이다.
공부도 다이어트도 하다 보면 계단식으로 성장을 하는데 엄마라는 배움은 아직 한 계단도 오르지 못한 느낌이다. 지금껏 나는 무얼 한 것인가. 제대로 된 교육과 코칭을 한 것이 맞나. 그냥 시간낭비만 한 것 같다. 유튜브에 떠도는 남의 자식들은 그렇게 훌륭하기만 하던데 유독 내 아이는 왜 그런 것인가, 내가 뭘 잘못한 것인가. 자괴감이 든다.
엄마로서 12년을 살았지만 아직도 초보딱지를 떼지 못했다. 육아는 너무나 힘들고, 학부모 되는 건 더 힘들다. 나와 너무도 다른 이 아이를 후회 없이잘 키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저 책 읽기와 만들기만 좋아하는 이 아이를 어쩌면 좋을까. 해야 할 일은 하지 않은 채 하고 싶은 일만 하는 아이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공부를 제대로 안 한다고 안 시킬 수는 없다. 산만하고 집중하지 못한다고 내버려 둘 수도 없다. 안 돼도 노력은 해야 한다는 게 내 지론이다. 포기할 순 없다. 노력한다면 분명 어제보다 한 뼘은 더 성장하겠지. 호흡을 가다듬고, 오늘도 아이에게 노력하라고 권유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