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가 오늘인지, 오늘이 주말인지 헷갈리는 하루가 시작된다. 온 가족이 한 달째 집에 같이 있었더니 모두 다 날짜를 헷갈려한다. 그렇다고 해서 한 달이란 시간이 엄청 길었던 것은 아니다. 그냥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갔다. 비단 나만 느끼지는 않았으리라.
“오늘 수요일이지? 재활용 버리러 가야 하는데 너무 귀찮네.”
“이따가 택배 오면 다 같이 버리면 되겠다.”
9시가 다되도록 택배가 안 와서 남편은 짜증 나는 투로 주섬주섬 재활용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에잇, 짜증 나.”
“왜 벌써 들어왔어?”
“오늘 수요일 아니야. 재활용 버리는 데가 없어.”
“뭐? 하하하. 오늘 목요일이네. 근데 이걸 아무도 몰랐단 말이야?”
남편이 수요일이라고 얘기했음에도 아무도 의심하지 않고 확인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냥 당연히 수요일이라고 여겼다. 목요일이라고 했을 땐 정말 황당했다. 아이들도 다 같이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집에만 있으니 날짜감각이 상실됐나 보다. 특별한 이벤트도 없이 주말이고 평일이고 매일 집에만 틀어박혀 정해진 스케줄대로 움직이니 어쩔 도리가 없다.
정신 차리고 보니 벌써 2월이다. 개학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방학 동안 무얼 했나 생각해 본다. 특별히 한 게 없다. 설날에 시댁방문을 빙자한 경주여행 말고는 계속 집에만 있었다. 코로나는 일상화되고, 실내 마스크도 해제되었지만 우리는 변화가 없다. 오히려 더 마스크를 꼼꼼하게 눌러쓴다. 외식은 생각해 볼 수도 없다. 배달앱을 기웃거린다. 밀키트만 주문한다. 이렇게 우리 가족은 코로나를 당연시 여기고, 함께 지지고 볶으며 방학을 보낸다.
그렇다고 집에서 뭔가 한 것도 없다. 방학이라고 해서 하루 종일 놀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계획해 놓은 공부부터 마무리 지어야 한다. 하지만 계획대로 실천한다면 아이가 아니겠지. 충분히 할 수 있는 양인데도 하질 못한다. 이걸 청개구리라고 해야 할까, 엄마에 대한 반항이라고 해야 할까. 그냥 엄마 말은 무조건 듣기 싫은 것일까? 그저 공부가 하기 싫은 것으로 해두자.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잔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아이들 학원 가는 시간은 나에게 허락된 휴식시간이다. 하지만 그조차도 바쁘다. 앞으로 다가올 3월 개학을 앞두고 학원스케줄을 다시 짜야한다. 아이들 없는 시간엔 글도 써야 한다. 글을 쓰기 위한 책도 읽어야 한다. 할게 산더미이지만 하나도 제대로 못하고 결국 아이들은 한 시간 만에 집에 돌아온다.
방학 전부터 계획이 있었다. 첫째 아이는 6학년이니까 중학교 가기 전에 중등단어와 문법을 끝내리라 다짐했다. 단어집 1권은 학기 중에 이미 끝냈으므로 다시 한번 복습하고 2권을 끝내리라. 문법도 이미 학기 중에 하던 거니까 이번 방학 동안 마무리 지어서 대략적으로 한 바퀴는 돌아야겠노라. 하지만 몇 차례 반복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모르는 거 투성이다. 첨부터 다시 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발견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남들 한 번에 끝낼 것을 두세 번 해야 하니 마음은 급하고 속은 쓰리다. 둘째 아이는 이제 3학년 되니까 사회, 과학 관련 책을 많이 읽히리라. 영어단어는 지금부터 매일 조금씩 외우게 하자. 사고력수학을 좀 많이 풀려야겠다. 혼자 고민하는 시간을 많이 갖게 해야겠어. 하지만 사고력수학 문제집은 풀기 싫다고 징징대는 이 아이를 어쩌면 좋을까.
혼자 원대한 꿈을 품고 계획을 세웠지만 정작 중요한 책 읽기와 글쓰기는 제대로 해보지도 못했다. 공부시간도 다 채우지 못하는 아이들을 보면 한숨만 나온다. 시간이 남아야 영화도 보고 게임도 할 텐데 주말인데도 아무것도 하질 못한다. 제대로 놀아 보지 못하는 아이가 안쓰러우면서도 왜 제대로 공부하지 않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내 계획은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다. 어설프게 ‘시간 때우기’식의 공부만 하며 이렇게 5학년, 2학년의 마지막 방학이 지나간다. 1학년의 겨울방학이나 5학년의 겨울방학이나 똑같다.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의 두 달여간의 긴 방학이므로 뭔가 하나는 이루리라 목표를 세우지만 제대로 되지 않는다. 결국 이것 또한 엄마의 욕심인 것인가. 아이가 스스로 정한 목표라면 어느 정도는 지켜졌을 테지. 하지만 아이가 이번 겨울방학 때 단어와 문법을 다 끝낼 것이라고 과연 말할까? 겨울방학에 시간이 많으니 사고력수학을 집중해서 해야겠다고 말하는 아이는 드물다.
결국 그냥 이렇게 지나간다.
허무하게.
아무것도 남지 않은 채로.
허송세월 보낸 듯이.
이번 겨울방학도
망. 했. 다.
하지만 새 학기가 다가온다. 이제 3월도 몇 주 안 남았다. 새 학기가 되면 무얼 할까 다시 계획을 세워본다. 이번 겨울방학에 하지 못했던 것들을 어떻게 하면 다시 잘해볼 수 있을지 생각을 한다. 앞으로 시간은 많으니까. 조급한마음을 내려놓자. 아직 1년이나 남았잖아. 지금 시작해도 늦지 않아. 스스로를 다독이며 다시 도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