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아파트공원의 조경 나무는 오랜 세월 동안 깊이 뿌리내려 아름드리 거목이 된다.나무는 시시각각 변하는 싱그러움으로 생동감 있는 사계를 알린다. 봄에는 윤중로 부럽지 않은 벚꽃길을 선물하고 여름엔 푸르른 신록으로눈을 맑게 해 준다.
여름, 뜨거운 여름이 왔다. 나무만 단지를 둘러싼 게 아니다. 매미울음소리도 함께 아파트 단지를 둘러싼다. 매미들은아파트가 떠나가라 떼창을 한다. 공원을 산책하다 그 왕왕거림이 점점 커짐에 놀란다. 매미가 어찌나 우는지 처음엔 귀가 아프다. 후엔 백색소음이 돼서 익숙하다. 분명 시끄러운데 여름과 어울리는 소리다. 그래서 난 매미가 싫지 않다. 악다구니 쓰듯 울어대는 그 울음이 안 됐다. 내가 매미를 이렇게 가엽게 보게 된 이유가 있다.
작년 겨울, 첫째 딸아이가 쓴 시때문이다.
아이 가방에서 연습장에 썼다 찢은 종이를 발견했다. 날짜까지 적어둔걸 보니 뭔가 쓰고 싶어서 끄적인 거 같은데..
2월에 왜 매미 생각이 났는지. '슬픈 일'이 있어서 털어놓고 싶은 건지. 엄마에게 서운한 게 있는데 말을 못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물었으나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아직 이 쪽지는 우리 집 좁은 통로 냉장고 옆면, 나만 보는 구석에 붙어있다.
무심코 썼든 고심해서 썼든 딸아이의 시는 날 위로한다.
'매미는 나무에게 슬픈 일 다 털어놓는다.'
아홉 살 감성, 딸아이의 한 문장에 가슴이 아렸다.
나도 모르게 마음이 울컥했다. 이따금 예배 후에 교회 구석자리에서 울며 기도하던 나, 또는 누군가 같아서.
아이 양팔을 다 벌려 안아도 안 잡히는 고목나무는 매미에겐 절대자이자 매미 세계의 전부가 아닐까.4년을 땅속 애벌레로 살다 성충의 삶을 고작 한 달 사는 매미.
그저 나무에 딱 붙어 힘껏 우는 게 매미가 할 수 있는 어떤 최선의것이라 생각되니 우는 매미가 힘든 시절의 나 같았다.
매미소리가 울리는 여름, 공원에서 매미와 물아일체(?) 느끼며 딸이 지은 시에 과몰입하며매미를 생각해 보았다.
그런가 하면 아들은 오늘도 매미사냥을 나간다. 매미채를 들고 나를 재촉한다. 아들과 놀아주다 조류공포증도 극복, 벌레공포증도 극복한 나였다. 그깟 매미가 대수랴.
아이에게 최대한 잡을 기회를 주다 아이 키가 닿지 않는 위치의 매미만 잡아준다. 매미채를 길게 늘여 조용히 다가가다 휙 낚아챈다. 중요한 건 낚아채는 순간 손목의 스냅으로 매미가 매미채 그물 안쪽에 쏙 들어가게 해야 넓은 입구로 날아가버려서 놓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매미사냥은 꽤 중독성이 있어 자꾸만'한 마리만더'를 외치며 계속 아파트 단지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다.
매미 울음소리가 유독 가까이 들릴 때 나무를 찬찬히 훑어보면 어김없이 매미가 있다. 오늘은 껍질이 장수풍뎅이같이 생긴 녀석들도 봤는데 말매미라 한단다. 아이 친구가 알려줬는데 진짜 장수풍뎅이같이 껍질이 반짝반짝한 게 꽤나 특이하고 매력 있었다.
몇 년 전, 아이들 매미채를 처음 사준 해만 해도 매미가 나온 매미 껍데기만 봐도 기겁을 했는데 이젠 껍데기를 벗어놓고 나온 매미가 신통방통하다. 다리 끝하나, 배주름 하나 부서지지 않고 이토록 정교한 허물 벗음이라니. 자연세계는 정말 오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