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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안 Nov 15. 2023

플라스틱 박스가 너무 많아

그건 정리가 아니었나봐

" 애들이 어려서 세간이 많아요."


집 보러 온다는 전화에 후다닥 집을 치우고 부동산 손님을 맞으며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 아이 어릴 땐 다 이래. 나도 이랬어. 짐 보지 말고 구조 봐요. 구조~"


내 말의 의도를 파악하신 부동산 사장님이 힘을 실어주신다.


대충 정리한 티가 나는 집,

물건의 자리는 있지만 자리를 이탈한 물건무더기가 있는 집,

남들에게 자랑스럽게 오픈하기엔 시간이 좀 걸리는 집,


"이 짐들만 없으며 더 아늑하고 좋은 집이에요."라고 자꾸만 말하고 싶은 우리 집이다.


장난감 박스가 자가증식한건 아닐테고..






치워도 치워지지 않는 '짐'이란, 물건을 숨기려고 사서 물건들을 집어넣었으나 그 자체로 물건이 되어서 쌓여있는 박스들이다.


잡동사니 담을 때 더없이 좋은 선택이라 여겨 샀던 플라스틱 박스가 한자리 차지하고 쌓여있다.

장난감 종류별로 라벨링 했지만 분류되지 못한 장난감들이 하나, 둘 섞이면서  열어서 놀아야하는 박스들,

양말, 속옷 담겠다며 구입한 라탄무늬 박스, 

아이 학용품 넣는다고 산 플라스틱 서랍장,

모자, 벨트, 장갑 넣는다고 옷장옆에 둔 또 다른 플라스틱 박스,

침대밑에 넣어 수납하면 좋을 거 같아서 산 언더베드 박스..

하.. 다이소에서, 쿠팡에서 10년 동안 많이도 사모았다. 아, 물론 이케아에서도.






  정리수납 전문가가 말했다. 정리 잘 안된 집 특징 중 하나가 플라스틱 수납박스가 많은 집이라고. 나 역시 의식적으로 미니멀한 삶을 지향하면서 앞으론 절대 사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 물건 1순위가 바로 수납박스이다.

우리 집 수납박스가 더 가관인 건 라벨링까지 해놓고 넣어놔도 결국은 안 쓰는 것들이 담겨  잠시 머무는 쓰레기 박스가 되어있다는 것이다.



물건을 잘 숨겨놓고 필요할 때 요긴하게 꺼내 쓰는 사람이 있는 반면, 눈에 보이는 물건들을 주로 사용하며 넣어둔 물건을 잘 잊어버리는 사람이 있다. 나는 후자에 속한다. 결국은 나다. 나의 소비이고 나의 생활패턴이다. 상품 설명의 이미지처럼 잠시는 그럴듯해 보였지만 결국 즉흥적이고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나는 박스에 숨겨둔 물건을 잊은 채 깔끔함을 추구한다는 명분아래 분류 안 되는 물건들은 대충 넣어 덮어버리며 지내온 것이다.



하나하나 열어 훑어보고 바로 버리기 시작했더니 텅텅 빈 박스들이 켜켜이 쌓였다. 산 가격이 아까워 쉽게 버리지도 못하고 이사 후 어딘가에 집어넣어 쓸 수 있는 방법도 있을 테니 당장 버리지도 못하고 또 두고 있을 생각을 하니 한숨이 나온다.  






이제 새로운 곳으로 옮기려고 하니 지난날의 내가 쌓아둔 '짐'들이 마음 한편 거슬린다. 그것들이 한 자리차지하고 있는 게 불편했고 그 안에 뭐가 있는지 몰랐던 게 나 자신과 가족들에게 부끄러웠으며 꼭 쓰지 않아도 될 플라스틱 소비라 지구에게 미안했다.


비단 수납박스만은 아닐 것이다. 한 때는 잘한 결정 같았는데 말미에는 때론 '짐'이 되어 후회를 남기기도 한다. 그것이 소비이든 행동이든 말이든  좋은 점의 이면을 미리 볼 수 있었다면 좋으련만.





 다시 수납함을 사야 할 거 같을 땐 그것들을 잔뜩 가졌던 때를 떠올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길 바란다.


 글로 남기고 자꾸 다짐하다 보면 나에게, 가족들에게, 환경에 조금은 더 괜찮은 내가 되어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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