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단상
한낮의 햇살이 기우뚱하다. 빛을 투과한 잎 그늘에 신비로운 기운이 서려있다. 입추에 찾아왔던 시원한 바람은 고온의 습기와 잦은 비에 잠시 숨죽이고 있다가 처서가 지나자 다시 활개를 편다.
이 즈음의 숲에선 여름의 맑은 기운에 농도를 더한 성숙함이 느껴진다. 식물은 존재만으로도 빛나던 꽃의 시간에서 열매의 시간으로 건너간다. 알알이 머금었던 햇살을 벅찬 에너지로 뿜어내는 열매들의 얼굴이 붉어지는 동안 바람을 조우한 나뭇잎들이 풀벌레들과 함께 가을 주제곡을 연주한다.
이 아파트에 입주할 당시, 내 마음을 유혹했던 공간은 발코니였다. 공간이 넓고 훤해서 엔틱 티테이블 세트를 들여놓았다. 나란히 창밖을 보며 우리 부부가 차를 나누는 공간이지만 기실은 혼자 앉을 때가 더 많다.
창밖으론 산책로와 우거진 숲이 펼쳐져 있다. 겉보기엔 번화가와 도로에서 비켜나 있어 조용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숲은 결코 고요하지 않았다. 생명의 소리가 한순간도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계절의 변화를 시시각각 체감할 수 있는 가을에 숲의 소음이 정점에 이른다.
하늘빛이 그리워 발코니에 나갔다가 선선한 바람에 이끌려 그대로 의자에 앉는다. 짧아서 아쉬운 가을 하루가 삭제되고 있다. 가을은 연주를 위해 펼쳐놓은 악보처럼 기호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필시 이번 가을도 은은한 피아니시모로 시작하여 크레셴도 음표로 확장되다가 순식간에 클라이맥스를 찍고 디크레센도로 기울어 페이드아웃 될 것이다.
옅은 바람에 살랑이며 떨어지는 단풍잎이 어느새 골목과 산을 불태우곤 빈 가지만 남겨놓는 풍경은 뭉클하다. 가을은 그렇게 존재의 의미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지고 사라진다.
계절마다 그 때를 즐기는 이벤트가 있지만 특별히 가을이 되면 전시회나 콘서트 초대가 많다. 가을을 주제로 한 시와 노래가 많은 건 긴박한 계절의 변화에 비슷한 느낌을 공유하고 싶은 인류 보편의 특성 때문일 것이다.
글을 쓰다가 무력감을 느낄 때가 많다. 음악이 주는 풍성하고도 섬세한 느낌들을 글로 표현할 수 없을 때나, 마음에서 솟아나는 느낌들을 말로 풀어낼 수 없을 때 그렇다. 특히 이런 계절에 감각을 스치는 너무 많은 메시지들은 어려운 암호들 같아서 다 해독할 수 없다. 그러니 기록한다는 것도 겉핥기 수준을 면할 수 없다.
그저 나를 통과해 빠르게 사라지는 이 모든 느낌들이 방금 지나간 바람의 향기처럼 아쉬울 뿐이다. 그림자 혹은 사라지는 것들의 흔적을 쫓아가면서 회상에 의존하여 묘사하고 해석하려 애쓰는 것이 작가의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가을이 깊어지면 발코니 의자에 앉아있는 시간이 길어진다. 잔잔한 바람이 올 때마다 새로운 질문도 따라 온다. 미뤄두었던 생각들이 펼쳐지고 접혀있던 감정들이 바람에 몸을 맡긴다. 마음의 갈피마다 빛깔이 다른 사유가 그득하다. 이렇게 찬찬히 돌아보게 만드는 가을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가을은 느낌표의 계절이다.
이 가을, 스치고 지나가는 수많은 느낌들 속에서 나는 무엇을 해석하고 깨달을 것인가. 그 무엇을 마음에 남길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