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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우 Mar 09. 2023

초등학교 6학년의 적정 영어 수준

우리 애는 잘하는 걸까, 못하는 걸까?

오늘도 어김없이 상담전화가 걸려왔는지 수업을 마치고 나와보니 노트북 위에 메모지들이 덕지덕지 붙어있습니다. (갑자기 '장수탕 선녀님' 주인공 덕지가 생각나네요. 이 집중력 무엇...)


'초등학교 6학년 여학생. A학원 수강경험. B, C 학원 레벨테스트 결과 이러쿵저러쿵한 결과가 나와 걱정이 태산이심.'


물 한잔 마시고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전화를 드립니다.


'안녕하세요~ OO학원입니다. 상담전화 드렸는데 시간 괜찮으실까요? (당연히 괜찮으심)'


여기까지 말하고 나면, 차분하게 그다음으로 넘어가며 조곤조곤 설명을 드릴 수 있는 학부모님이 계시고 인사멘트가 끝나자마자 따발총처럼 자녀의 영어실력과 그간의 히스토리를 쉴 새 없이 걱정거리와 함께 쏟아내시는 학부모님이 계십니다. (뭐, 딱 이렇게 두 부류의 분들은 아니겠지만 대표적으로 말이죠)


전자의 경우에는 대부분 대략적인 설명을 드리고 나면 굉장히 분석적으로 혹은 감정적으로 자녀의 학습 상황,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점 그리고 바라는 점 등을 이것저것 말씀하시게 마련입니다.


수천회의 이런 상담을 해오며 여러 가지를 느끼지만 한 가지 중요한 점을 말씀드려 볼게요.



자녀의 실제 영어실력을 제대로 아는 학부모는 많지 않습니다.



'우리 애는 문법은 좀 하는데 독해는 어렵다고 하네요.'라든가 '단어 외우는 걸 싫어하고 못해서 그렇지 문법이나 독해를 웬만큼은 해요'라는 말들을 많이 하시고요, '이전 학원에서는 상위권 반이었는데 여기 레벨테스트를 봤는데 중위권 성적도 겨우 받았네요'라는 이야기도 많이들 하십니다.


어느 정도 참고는 하지만, 사실 학원에서는 아이가 과제를 얼마나 성실하게 잘해오고 수업시간에 집중력을 어느 정도로 유지하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배운 내용을 테스트하여 나온 결과를 통해 복습과 자기 주도학습을 잘하는 아이인지를 판단합니다.


가르치다 보면 언어적인 센스나 학습 능력은 탁월한데 제대로 영어라는 과목에 접근하는 방법을 몰랐었기 때문에 현재 실력은 떨어져 보이지만 많은 가능성을 보여주고 빠른 성장을 이루어내는 학생들이 있는가 하면 현재의 영어실력은 좋아 보이지만 본질은 모르고 실전 능력에만 치중하여 응용력이 너무 부족하고 필요한 기초가 군데군데 빠져있어 하나하나 찾아서 채우기엔 너무 역부족인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럼, 대체 초등학교 6학년은 어느 정도의 영어 수준을 가지고 있으면 좋을까요?


영어의 3대 영역인 단어, 문법, 독해 이 세 가지로 구분하여 제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 단어

시중에 나와있는 여러 Voca 교재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voca교재에는 맨 뒷부분쯤에 A~Z까지 알파벳순으로 교재의 모든 단어가 색인으로 정리되어 있죠. 중등부 초급, 중등 기초라고 적혀있는 책을 하나 골라 색인을 살펴보면서 모르는 단어가 없도록 하는 정도면 기본이 잡혀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대충 husband, nephew, imagine 이 정도 단어들입니다. 그러니 모르는 단어는 없어야겠죠.)


조금 더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면 중등 기본 혹은 중등 고급단어 내지는 수능 기본단어까지도 섭렵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영어 공부의 경우, 어휘가 80% 이상의 중요도를 차지하므로 너무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한 것이 아니라면 긍정적으로 보겠습니다.


단, 여기서 주의하실 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consider'라는 단어를 '고려하다, 간주하다'라고 알고는 있는데 그냥 알고만 있고 '고려하다'는 말이 '신라 하다' 나 '백제 하다'는 말처럼 무슨 말인지 모르고 있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즉, 한글어휘가 아직 자리잡지 않은 상태에서 'altruism'(이타주의) 같은 단어를 외워봐야 써먹을 수가 없다는 말이죠.


더 근본적인 문제는 단어를 외울 때는 반드시 "품사"를 함께 외워주어야만 하는데 대충 뜻만 많이 알고 있으면 나중에 문법에 문제가 생깁니다.


어느 정도 선행을 하는 것은 좋지만, 매우 정확하게 의미의 활용까지 예문으로 살펴보며 외우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2. 문법

동명사, 분사, 가정법, 접속사 등등 대부분의 문법 용어는 '한문'입니다.  


그래서 저 같은 경우 'To부정사'를 설명할 때, '不定詞'를 한문으로 써놓고 "와~ 3개 국어가 난무하는 이 강의실 수준 보소!"라고 농담을 던지며 '정해지지(定) 않은(不) 말(詞)'이라는 뜻부터 알려주고 시작합니다.


한문공부를 하라는 것은 아니고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치동의 경우 빠르면 3~4학년, 늦어도 5학년말부터는 모든 문법의 기초인 중등문법을 시작하는데 어디서 어떤 선생님에게 배웠는지에 따라 정말이지 실력이 너무 천차만별인 데다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학생들을 그다지 많이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결론은, 6학년 초반쯤 되었을 때 "품사"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앞서 말씀드린 어휘와 품사를 함께 잘 외워두었다면 처음부터 시작해도 절대 늦지 않습니다. 잘 아는 학생들도 어딘가 반드시 구멍이 있고 모르는 학생들도 대충 들어서 알고 있는 것들이 있다 보니 무조건 체계적으로 처음부터 차근차근 정리를 시작해야 되는 시기이지 "우리 아이가 6학년이 되었는데 문법을 이렇게나 모르다니!" 하고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당장 중학교 내신시험을 볼 예정도 아니고, 수능 시험에 응시할 수도 없는 노릇인데 어디 가서 써먹으려고 그렇게 안달이 나서 발을 동동 구르고 계신지 정말 그런 어머님들 보면 상담하면서 일종의 "혼쭐"을 조금 내드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차라리 독서를 많이 해서 문해력과 이해력을 높이는 것이 훨씬 더 유리한 고지를 빠르게 점령할 수 있는 방법이니까요.


예를 하나 들어드릴까요?


조동사를 가르칠 때 'must'를 반드시 따로 가르쳐야 하는데요, 이 단어가 두 가지 의미를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강한 의무''강한 추측'의 의미로 "반드시 ~해야 한다"와 "~~ 것임에 틀림없다" 정도의 의미가 됩니다.


자, 여기서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져요.


"'반드시 해야 한다'의 반대말이 뭐지?"라고 물으면 10명 중 9명이 "하면 안 된다!"라고 대답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16년간 강의하면서 이 질문에 제대로 대답을 한 초중등학생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다시 물어봅니다.


"'너 이 과자 먹으면 안 돼!'를 반대로 말해봐!"    "어..... 너 이 과자를...." 하면서 아이들은 갈등을 하죠.

본인들이 말한 대로라면 "너 이 과자를 반드시 먹어야 해."인데 이상하거든요. 그러다 넌지시 한 아이가 말을 던지죠.


"너 이 과자 먹어도 돼?"  자신이 없어서 질문하는 듯이 이렇게라도 대답하면 칭찬세례를 퍼부어줍니다.


이렇게 잠깐이라도 생각해보는 과정을 통해 "강한 의무"와 "허락"이 서로 반대말이 아님을 알게 된 아이들은 이제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쉽사리 "반드시 해야 해"의 반대 의미인 한국말을 잘 뱉어내지 못합니다.


뭘까요?  



정답은 "~할 필요는 없어"입니다. 




이 답을 스스로 생각해 내기 위해 단번에 알려주지 않고 이런 과정을 거치며 아이들이 기억할 수 있도록 해주기는 하지만 불과 7년 전 정도만 해도 5분이면 슥슥 대답을 해내던 아이들이 이젠 10분이 지나도록 생각해내지 못하는 현상을 경험하며 여러 가지 복잡한 추론들을 하기 시작하죠.


책을 읽히고 논리적인 대화를 많이 나누도록 하는 것이 훨씬 나은 방법일 겁니다.



3. 독해

요즘은 영어에 대한 노출이 유치원 때부터 이루어지는 경우가 다반사라서 아이들이 오히려 글을 읽는 데에는 크게 부담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울과 지방의 격차, 강남과 비강남권의 격차 이런 문제들은 조금 뒤로 미루어 두기로 하죠. 여러 가지 미디어와 책들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관심을 조금 가지고 아이들에게 이런저런 책들을 주변에 놔두기만 해도 이런 격차들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어질 테니까요.


영유를 나온 친구, 채드윅 같은 국제학교를 다니다 온 친구, 영어를 싫어해서 그림 많은 영어책만 좀 보다가 온 친구 등등 수많은 케이스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어떤 영어를 구사하고 엄청나게 다른 이해도를 가지고 있다 해도 궁극적으로는 다시 문해력 이야기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선, 기본적인 독해는 어휘를 어느 정도 잘 습득하고, 읽는 방식을 문법과 함께 조금 배우면 '소리 내어 읽기'를 많이 한 아이가 절대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게 됩니다. 언어를 배울 때 입이 닫혀있다면 크게 잘못하고 있다는 걸 항상 알려주어야 하죠.


초등학교 6학년의 기본 독해 실력은 중2~3 교과서정도를 쭉쭉 읽어낼 수 있으면 족합니다. 


간혹 관계대명사와 같은 문법이 포함된 문장도 굳이 딱딱한 내용을 알려줄 필요 없이 읽는 방식에 대해 설명해 주고 대처하게 하면 아이들은 쉽게 읽어내곤 합니다.


많은 학부모님들이 원하시는 소위 "우리 아이가 독해실력이 좋아요"의 수준은 '수능 독해' 혹은 '토플 독해'를 원활하게 해서 문제를 풀고 맞추는 것을 말씀하시는 겁니다.


여기서 큰 딜레마가 생기는 것이지요.


조금 쉬운 예를 보여드리겠습니다.  


".... Hamlet 역을 한 배우의 수가 우리에게 Shakespeare의 연극에 대해 말해주지 않듯이 많은 것이 화폐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도 우리에게 화폐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주지 않는다"


"만약 사회가 개인의 집합 그 이상이라면, 그들 사이에는 어떤 종류의 관계가 있어야 하고 적어도 무엇이 옳고 그런 행동인지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하며 이것이 자연법 전통에 있는 법철학자들이 "법 없이 사회가 존재할 수는 없다'라고 주장하게 만든 근거이다."


그래도 많이 배운 우리들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지만, 6학년 아이들이 이걸 얼마나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조금 의문입니다. 왜냐면, 그들은 한글 해석본을 읽는 것이 아니라 영어로 된 문장을 읽고 그것을 한글로 전환하는 과정을 머릿속에서 제한된 시간 내에 해내야 하니까요.


미국 대학교 1~2학년 전공서적 수준 (AR난이도 10 이상)의 지문을 1분~1분 30초 내에 읽고 이해하는 시험에서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 잘하기를 바란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물며, 대학입학시험인 토플점수가 지금 높게 나온다는 것은 대충 이해한 것을 찍거나, 아이의 문해력과 어휘력이 그 정도 수준에 이미 올라있는 것을 의미할 겁니다. (후자인 학생들을 본 적은 거의 없습니다만)


비문학적이며 일부러 지식을 자랑하기 위해 어려운 어휘들로 도배시켜 놓은 지문들은 나중에 읽어도 늦지 않습니다. 지금은 수준에 맞는 영어지문을 정확하고 빠르게 읽는 연습을 하는 것과 '한글 독서'의 수준을 서서히 올리고 양을 늘려나가는 것이 훨씬 실력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네요.


교육은 어찌 보면 선택의 과정인 듯합니다. 아이에게 어떤 길을 보여주고, 어느 수준까지 올라가도록 채찍질을 할 것인지 부모가 일방적으로 정할 수도 있고 아이가 스스로 도달하길 원할 수도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적어도 연령과 두뇌의 성장 수준에 맞지 않는 과도한 선행이 그렇게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을 저는 보지 못했습니다. 중1 때부터 수능문제를 풀면 1~2등급이 나오던 학생이 정작 본인이 고3 때 수능시험장에 가서 2등급을 맞는 경우를 꽤나 많이 봤거든요.


적절한 보폭과 속도를 꾸준하게 유지하며 균형 잡힌 학습을 해나가는 것이 중요할 겁니다.


자, 그럼 오늘도 아이들과 보폭 맞추러 가보겠습니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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