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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우 Jan 31. 2023

대치동 초등학생들의 슬기로운 학원생활

<2. 너희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니?>

오랜만입니다. 


그간 여러 가지 일로 너무 분주하고 일본 여행도 연말에 길게 다녀왔더니 마음만 움찔움찔거리고 손가락은 안 움직인 탓에 글을 쓸 시간이 없었네요.


2023년을 시작하면서 좀 더 많은 글들을 써보고 다양한 장르에 도전해 보면서 한 해동안 마음에 남은 아쉬움들이 없이 쏟아내보려고 합니다.  많이 부지런해져야겠네요. (출판사와 문제집 작업도 한창이라 ㅜㅜ)


지난 글 말미에 '동기만 확실하다면 굳이 대치동이 아니어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내용으로 글을 맺었습니다.



아이들은 오늘도 학원으로 꾸역꾸역 몰려듭니다.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만난 우리 유림이는 '선생님은 제 마음속 1타 강사예요!'라며 우렁찬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주네요. (고... 고맙다 ㅜㅜ)


그렇게 오늘도 3시부터 10시까지 쉼 없이 수업, 시험, 각종 과제검사, 보충 등을 마친 아이들을 줄줄이 만나고 헤어지며 도대체 이 녀석들은 무슨 생각으로 학원을 다니고 있는 건지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물어봤죠.   


"너희들 힘들지 않아?  무슨 생각을 하면서 학원을 다니고 있어?"



다니기 싫은데 엄마가 다니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다니는 거고 공부하기 싫은데 억지로 다니는 거다라는 정도의 대답을 기대했었는데 생각보다 의외의 대답이 많았습니다. 



"의대 가려면 지금부터 열심히 해도 갈까 말까 한데 하기 싫어도 해야죠."  - 초6

"저는 디자이너가 될 건데 일단 예체능은 학교를 좋은 곳으로 가야 해요." - 초5 

"특목고 가려면 지금부터 많이 해놔야 하고 가서도 따라갈 수 있대요." - 초6


물론 엄마한테 혼날까 봐 억지로 다니는 아이들도 있고요, 어찌나 학원에 오길 싫어하는지 갖은 핑계를 다 대며 매일 지각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어찌 보면 당연하게도 그런 친구들은 레벨상 낮은 반에 있고 실력 향상이 더딥니다. 사실상 대치동에 있으나, 다른 곳에 있으나 별 차이가 없는 그런 학생들인데 상대적으로 그 수가 매우 적습니다. 그리고 물론 어중간한 지위를 차지한 학생들도 있죠. 


대략 40% 정도 되는 아이들이 '스스로의 목표의식'이 매우 뚜렷하게 설정되어 있다는 것이 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자기주장이 꽤나 강하고 자존감도 높으며 집중력, 인내심 등이 따라서 훌륭할 수밖에 없는 그런 학생들인 거죠. 


이 아이들은 과제 성실도 95% 이상, daily TEST 통과율 90% 이상, 수업 집중력 최상, 정기적인 학원 TEST 고득점을 상시 유지합니다. 그러면서 표정이 밝고 수업시간에 질문하면 서로 먼저 아는 척하려고 으쓱으쓱 대고 가장 목소리가 크고 활기찹니다. 


과연, 그런 동기부여를 누가 주었을까 궁금하여 또한 나름대로 서치를 해본 결과는 이러합니다. 


동기부여 1순위 : 부모님, 선생님

동기부여 2순위 : 잘 나가는 친척 형제, 자매, 삼촌, 고모, 이모 등등 

동기부여 3순위 : 각종 미디어 (주로 유튜브)


지난 글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부모님 스스로가 성공한 사람이어야 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부모님의 생활패턴이나 태도는 매우 중요함을 알 수 있었죠. 


삼성직원으로서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서 회사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엔지니어 아빠를 둔 하윤이는 가끔 피곤해하면서도 집에 와서 이런저런 대화도 많이 하고 공부를 강요하지 않으며 다양한 직업의 세계를 소개해주고 주말에는 책을 한 권 훑어보며 산책도 같이 해주는 아빠를 너무 좋아합니다. 


이 아이의 꿈은 특이하게도 '선박설계 엔지니어'라는군요. 초등학교 6학년치곤 너무 구체적이어서 기특하기도 했습니다. 예비고 1인데도 아직 꿈이 없는 학생들을 너무 많이 본 탓일까요.


이 동네에서 강사 생활을 시작하며 바로 옆 동네와 사뭇 달라 조금 놀라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던 몇 가지 상황들이 있었습니다. 


학생이 아프거나, 여행을 다녀와서 학원을 빠지게 되면 보충수업을 원하는 것이 꽤나 정형화되어 있지만 적어도 제가 강의하는 학원 3곳에서는 보충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스케줄에 따라 스스로 과제도 알아서 다 해오고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남아서 질문을 하고 갑니다. 보통 학원을 빠진 아이들은 숙제도 안 해오고 시험도 통과를 못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곳의 아이들은 그러한 경우의 수가 매우 적었습니다. 


또한, 학생의 문법실력이 부족해서 수업이 어렵거나 숙제가 오래 걸리면 보충수업에 대한 요구나 수업교재나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시는 학부모님들이 꽤나 많은데 이 지역에서는 단 한 분도 그런 경우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문법 과외나 다른 학원을 추가로 다녀야 하는지 추천하는 교재가 있다면 집에서 추가로 학습을 시킬 테니 알려달라는 문의가 있어서 자발적으로 보충수업을 해준 적도 있을 정도니까요. 


삶을 보는 관점에 여유가 있고 가장 효율적이며 실질적인 방식을 찾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그전까지 막무가내로 이걸 내놓아라, 저걸 내놓아라 하는 분들과의 썩 유쾌하지는 못했던 만남과 다른 모습에 처음에는 충격적이기도 했습니다.  


혹시 아이가 성적이 떨어졌을 때, "아니, 왜 우리 애 성적이 떨어졌나요? 학원을 다녔는데"라고 따져 물으시는 분들이 아닌 "이번 우리 애 성적이 왜 떨어졌는지 분석을 좀 해주시겠습니까? 뭐가 부족한지 알고 싶고 학원에서는 어떻게 보완을 해주실 계획인가요?"라고 물으시는 분들을 보면서 약간의 다른 관점이 만들어내는 차원이 다른 표현과 설득 방식이 가진 차이점을 확실히 인지하게 됩니다. 



부정적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 항상 약간은 조심스럽지만, 개인적인 제 생각은 '부(富)'가 세습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태도'와 '습관' 그리고 '가치관'이 전달되는 거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아이가 성인이 되어서도 행복하고 자신만의 인생을 잘 살아가려면 어린 시절에 행복하고 자존감이 높아져야 한다는 것은 이제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타인에 대한 배려, 스스로에 대한 엄격함 등을 갖추게 되는 것은 오로지 어른들의 집안 교육이 그만큼 중요한 것도 다들 아실 테 지요. 


어른 스스로가 그러한 태도와 마음가짐을 지니지 못하면서 자녀가 그러하길 바라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빠가 혹은 엄마가 귀찮아서 아이들과 놀아주지 않고 대화하지 않고 책을 읽어주지 않으면 유아기 때부터 형성된 그러한 태도는 고스란히 지속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대치동의 초등학생들이 (물론, 상위 40% 정도지만) 훌륭한 여러 가지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는 이유는 결론적으로 훌륭한 가정교육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로 만들고 싶다면, 공부를 시키기 전에 아이의 마음가짐과 태도부터 올바르게 정립시키면 될 거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어려움을 만나도 시도해 보고, 힘들어도 견뎌내고 스스로 목표설정을 하여 동기를 부여하고 나아가기 위해 또한 노력하는 그런 아이들은 공부가 아니라 무엇을 해도 성공할 테니 말입니다.


전전긍긍하는 학부모가 되시기보다는 아이에게 올바른 가치관과 사회성, 그리고 많은 대화를 통한 비전들을 함께 나누고 스스로 소중하고 대단한 사람임을 먼저 알려주시고 묵묵히 그 혹은 그녀가 하나의 온전한 인격체로서 자신의 길을 헤쳐 나가는 걸 지켜보시는 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오늘 아이들에게 혹시 짜증이라도 한번 안 냈었는지, 상처 주는 단어라도 쓴 게 없는지 되돌아보고 반성해 봐야겠네요. 누구나 완벽할 순 없으니 항상 긴장하고 공부하고 되돌아보며 사는 수밖에요. 내일은 또 아이들에게 어떤 말을 전해주고 무엇을 좀 더 쉽게 이해시켜 주고 그들에게 만족감을 줘야 할지 고민하다 잠들어야겠습니다. 


그럼, 모두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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