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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스란 Jan 12. 2024

아들의 방에서 우는 소리가 들렸다

너 분명히 오늘 실컷 놀고 웃으며 들어왔어

드디어 내일이 졸업식이다.

아니, 12시가 넘은 시간이니 오늘이 졸업식이다.


다른 글을 실컷 쓰고 1시가 넘어가는 시계를 보며 노트북을 닫으려다가 멈췄다.

아까 분명 아들의 방에서 우는 소리가 들렸다고 남편이 내게 와서 말하고 내려갔다.


내가 글을 쓴다고 다락방에 올라온 것은 오후 9시 반이 넘어서였다.

남편과 아들 둘이 나란히 앉아 복잡한 방정식이 어쩌고저쩌고 하며 수학공부를 하는 것을 뒤로한 채 흐뭇한 마음으로 맘 편히 내 글을 쓰려고 노트북, 책, 블랙티가 담긴 머그컵까지 바리바리 싸들고 올라왔다.


10시가 넘자 아들이 올라와 나 오늘은 그만하고 좀 쉴 거라길래 쉬나 보다 했다.

남편은 그대로 앉아 있고 아들만 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이상한 상황이 된 듯했다.

10여분이 지나자 남편이 어이없다는 듯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린다.

"쟤는 가타부타 말도 없이 들어가서는 안 나오네."

아들을 큰 소리로 불러냈다.

아빠한테 아무 말 없니 들어간 거냐며 중간에 자리를 뜰 때는 이러저러하여 그만하고 싶다고 다음엔 언제 보자고 정해야 하지 않냐며 답답하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아까 엄마한테 말하고 갔잖아요."

그렇다. 나에게는 말하고 갔다. 근데 아빠와 함께 있던 아들이 그만하고 들어가는 걸 왜 나한테만 말하고 들어간 것인지는 여전히 궁금하다. 그렇다고 전해 달라는 이야기를 한 것도 아니다.

"자기랑 문제 있었어?"

"아니."

"아빠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 그냥 힘들어서 그래요."

"공부하는 게 힘들다고?"

"아니, 그냥 쫌."

영 대화하기 하기 힘든 짜증이 묻어는 말투다.

"몸이 아파? 마음이 아파?"

"내가 그런 것까지 말해야 해요? 둘 다요!"

정말 당황스러운 상황이다.

"방금 전까지 아빠랑 둘이 있었잖아. 힘들어서 안 하고 쉬겠다는 말을 들어야 하는 상대는 아빠지. 다시 제대로 말하고 들어가."

남편이 다락방까지 올라와서는 조용히 말을 건넨다.

"쟤 방에서 지금 우는 소리 들려."

열흘 전에 나름 놀라 숨죽이며 방문에 귀를 대고 우는 소리를 확인했던 터라 크게 놀라지 않고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누가 우리 착한 아들을 힘들게 했어?"

누가 봐도 들으란 듯이 크게 말하며 남편이 아들방 앞을 지나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오늘은 졸업 전날이라 강당에서 준비할 것이 많다며 점심 식사 후 오후 1시쯤에 하교를 했다.

아들 졸업식을 앞두고 미용실에서 뿌리 염색을 하던 나는 일찌감치 놀 계획을 가진 아들과 카톡을 주고받았다.

역시나 그 계획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 듯했다.

미용실에 들렀다가 친구와 점심까지 먹고 돌아오는 길에 전화를 하니 이제 볼링장에서 막 나오는 참이란다.

오늘은 꼭 아들의 노동력이 필요했던 터라 늦은 시간이긴 했지만 직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하던 일을 마저하는 동안 30~40여분 걸어와서 힘들었는지 편평한 곳을 찾아 누워 쉰다.

다시 잘 구슬려 불러들였던 이유인 짐 옮기는 일을 시켰다.

"듬직한 아들이 있어서 좋네."

해가 진 후에 함께 집에 들어오자 배가 고프니 저녁을 얼른 달라며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급한 대로 저녁을 차려주 먹음직스럽게 밥 두 공기, 국 두 대접을 끝내고 다음 끼를 위해 넉넉히 해둔 반찬까지 먹깨비처럼 모두 먹어 치웠다.

"오늘도 볼링 7게임 쳤어?"

"아니, 2게임이요. 끝나고 사진 찍고 그랬어요."

"인생 네 컷, 뭐 그런 거?

사진을 거의 안 찍는 아들이기에 귀한 사진이라 보고 싶었는데 다행히 주섬주섬 꺼내 보여준다.

자기 반 7명이란 아이들은 남자, 여자 섞여 있었는데 꽤나 밝은 모습으로 잘 찍은 사진이었다.

투명비닐에서 꺼내어 내 폰으로 얼른 찍어 저장했다.

다른 사람 보여주면 안 된다길래 혼자만 보겠다며 약속을 몇 번을 하고서야 겨우 찍을 수 있었다.

그러는 사이 아들은 후식을 먹으며 EPL 하이라이트를 보고 있었다.

같이 본 지 몇 번 있는 하이라이트라지만 도저히 기억해 낼 수 없는 외국 선수들의 이름을 또 들으며 복습을 했다.

내일 일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후 남편이 와서 내가 자리를 피한 것이 우리 저녁 모습이었다.

한 바퀴를 다 돌이켜 생각해도 어느 시점에 아들이 울 일이 있었는지 도저히 모르겠다.

그냥 중3 아들이 졸업을 한다니 오만가지 생각이 드나 보다 예상할 뿐이다.

아니면 앞으로 공부를 많이 할 것에 대한 앞선 걱정일 수도 있겠다.

아까 놀다가 속상한 일이 있었는데 그게 갑자기 생각난 걸까?

아니면 힘든 공부를 멈추려고 딴에 생각한 방법일까?


아들이 소리 내어 운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잘 모르겠다.

전에는 문을 조심스레 두드려 엄마가 이야기 들어줄까 물었다가 아니라며 모른 척해주길 바라는 듯하여 이번엔 아예 모른 척하고 넘어갔다.


숨죽여 울지 않고 부모가 들릴 수 있는 곳에서 소리 내어 울 수 있는 것이 다행인 것 같기도 하고 울어야 하는 상황이 안타깝기도 하다.


내가 다른 사람이 있는 곳에서 소리 내어 운 적이 언제였는지 떠올려 본다.

기억도 가물할 만큼 오래전 인 건 확실하다.

아마도 나이가 들면서 울음을 삼키는 법을 배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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