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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철구 Jun 03. 2023

고향집 마당에 핀 꽃

곧 군대 가는 아들과 고향엘 다녀왔다. 할머니께 큰절하고 할아버지 산소도 들렀다.




나는 우리 집 마당을 좋아한다. 조경이나 원예와는 거리가 먼 시골 마당이지만, 나름대로 풍성하고 거칠지만 자연스러움이 있다. 마당 한쪽의 텃밭에는 파와 상추며 쑥갓 등 제철 채소들이 자라고 응달진 곳엔 더덕도 몇 년째 뿌리를 내리고 있다. 볕이 잘 드는 뜨락에는 매년 자식들이 사다 준 카네이션이며 난초 등 화분이 있고, 마당 가운데는 고추모종과 저절로 핀 꽃이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학교에 다녀오면 마당에 물을 뿌리고 비질을 하고 마지막으로 또 물을 뿌려 먼지가 날리지 않도록 했다. 논밭에서 해그름 할 때까지 일하시는 늙은 부모님을 돕는 일이라 생각했는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어릴 때부터 그랬던 것 같다.

가끔 고향집에 가면 먼저 하는 일 중에 하나가 마당에 물을 뿌려 쓸고 화단 겸 텃밭에 물을 뿌리는 일이었다.


시골동네는 집집마다 겨울이면 마당 한편에 무덤 같은 무구덩이가 있었다.

매년 늦가을 마당에 구덩이를 파 무를 보관하고 무덤처럼 동그란 봉문을 만들고 한쪽에 작은 입구를 내고 겨우내 무밥도 먹고 생채도 해 먹을 수 있는 식량창고였다.


내가 중학교 때던가 그 마당에 시멘트로 덮어 더 이상 무구덩이는 볼 수 없었다. 

시멘트로 마당이 덮이고 사십 년쯤 지났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군대 군데 갈라진 시멘트 틈 사이로 어디서 날아든 씨앗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웠다.


끈끈이대나물이 시멘트 틈 사이에 자리를 잡고 피고 지고 한 지는 십 년이 넘었다. 어머니가 고무통이나 스티로폼 박스에 고추 모종을 심어 키우신 후에는 시멘트 틈 사이로 고추씨앗이 싹을 틔워  자라기도 하고 어느 해에는 파 한 대가 혼자서 자리기도 한다.


그 오래되고 낡은 마당에는 고향의 추억들이 고스란히 있다. 학교에 다녀와 물을 뿌리고 비질을 하던 학생이 있고, 해 질 녘 먼 들녘을 바라보며 안으로 안으로 웅크려 들던 소년도 있고, 겨울 밤하늘을 가득 메운 별들의 움직임을 보며 아득해하던 실패한 재수생도 있고, 숯을 피워 바비큐 만들어 먹는 단란한 가족도 있다.


언젠가는 고향에서의 추억들이 오래된 시멘트처럼 회색으로 남겠지만 저 혼자 핀 분홍 빛깔의 끈끈이대나물처럼 오래도록 아름답게 기억하고 싶다.


이제 손자가 군대를 간다. 결혼하는 건 보고 죽어야 될 텐데 넋두리하시던 시골의 어머니는 이제 그 아들의 아들이 군대 가는 것도 보셨으니 그 아들의 아들이 결혼하는 것도 꼭 보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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