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8. 29
특별한 약속이 없는 하루, 여유롭게 하루를 시작한다.
출근하는 아내와 고3 둘째 아들이 등교를 하고 나면 나의 일과는 시작된다.
32면의 신문을 광고까지 꼼꼼히 읽고 여기저기서 전해주는 뉴스 스크랩들 중 눈에 띄는 제목들은 링크를 타고 들어가 기사를 읽고 메모한다.
비가 부슬부슬 내려 우산을 쓰고 아파트 안에 있는 커뮤니티센터에 운동하러 갔다.
원래 골프 약속이 있었지만 최근 무리를 한 탓에 몸에서 ‘멈춤 신호’를 보내와 양해를 구하고 취소를 했는데 다행히 비까지 내려 미안함이 조금 줄어든다. 스트레칭, 유산소 근력, 걷고 뛰기를 반복해서 50분, 어프로치와 빈 스윙, 퍼팅 연습까지 2시간의 운동을 마치고 나니 몸이 한결 가볍다.
난초와 화분에 물을 주고 난초대에 있는 깍지벌레 하나를 닦아줬다. 23년 6월 19일, 큰아들의 입대일에 깍지벌레 낀 행운목의 가지들을 다 잘라내며 아들이 휴가 나올 때쯤 다시 건강하고 푸른 잎들을 기대했는데 예상보다 빨리 잎들이 풍성해졌다. 생명의 힘이 대단하다.
씻고, 빨래하고, 화분 정리하고 나니 허기가 느껴진다.
금방 한 밥과 김치찌개와 비비고 김으로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커피 한 잔 내려 책상에 앉으니 정오가 넘었다. 시간은 일할 때나 놀 때나 참 빠르게 지난다.
창밖은 세차게 내리는 비로 회색빛이다.
회색의 아파트 건물 사이 하늘도 뿌옇게 채워져 있다. (사진으로는 회색으로 뿌연 하늘을 담을 수가 없다. 당연하지만 렌즈가 아직 눈의 해상도를 못 쫓아온다.)
라디오에서 동물원의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가 나온다.
창 밖의 빗소리와 제법 잘 어울린다.
이제 가을이구나. 이 비가 그치고 나면 가을이 성큼 다가와 있겠지.
오후의 계획은 기타 연습, 글쓰기, 필라테스였지만 비가 오니 필라테스 스튜디오 갈 엄두가 안 난다. 트레이너 쌤에게 수업을 다른 날로 조정하고 집 근처 지압하는 곳을 찾아 최근의 과로로 뭉친 근육들을 풀었다. 세 달 동안 이틀에 한 번 꼴로 골프를 쳤더니 안 뭉친 곳이 없다. 특히 다리근육과 연결된 소둔근과 중둔근이 속 깊이 뭉쳐있다.
마사지를 마치고 나오니 어느새 비는 그쳤다.
비 오는 날이니 마나님과 김치전에 막걸리 한 잔 생각했었는데 어찌할지 잠시 망설여진다. 급하게 선택한 메뉴는 육개장과 도토리묵과 막걸리. 마트에 들러 하얀 뚜껑의 장수 막걸리 2병, 고사리, 콩나물, 도토리묵, 가지를 샀다. 토란대는 가격이 너무 비싸 단위가 잘못된 건지 몇 번을 다시 봤다. 한 봉지에 22,000원이라니, 토란대 없는 육개장은 허전하긴 하지만 ‘농산물은 비쌀 때는 안 먹으면 된다 ‘ 장모님의 말씀이 생각나 토란대는 다시 진열대에 올려두었다.
토란 빠진 육개장인 듯, 경상도식 소고깃국인 듯 정체가 모호한 국을 끓이고 김치전 반죽을 하고 도토리묵무침 재료를 준비하고 아내에게 퇴근 시간을 물으니 이제 막 출발했단다.
그 사이 난 어제 마시다 남은 와인 한 잔 하며 브런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