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포장이 아플수록, 내용은 깊어진다
“당신은 언제가 가장 아팠나요?”
이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머릿속이 저절로 그 장면을 떠올렸다.
텅 빈 방, 불 꺼진 천장, 말라붙은 눈물.
그날 나는 삶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모든 걸 잃고, 바닥에 주저앉은 그 순간.
그게 내 인생에서 가장 아팠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그건 지금 돌아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깊어졌던 순간이기도 했다.
그날 나는 혼자였다.
은행은 계좌를 막았고, 통장은 잔고가 아니라 ‘마이너스’만을 보여줬다.
사업은 망했고, 신용불량이 되었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사기를 당했다.
사랑했던 사람도 떠나갔다. 아무 말 없이, 너무 조용하게.
방 안은 조용했다.
바깥은 봄이었지만, 내 안은 겨울 같았다.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무 기도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바닥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하나님, 왜 저한테 이런 선물을 주셨습니까?”
나는 그 고통이 인생의 쓰레기인 줄 알았다.
내가 잘못 살아온 결과, 내가 받아 마땅한 벌.
아니면 하나님도 날 포기하신 증거라고 생각했다.
그 시절의 나를, 나는 오랫동안 부끄러워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게 말할 수 있다.
“그때가 없었다면, 나는 정말 얕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때 나는 무너졌지만,
그 무너짐이 나를 낮추었고, 낮아진 내가 비로소 보게 된 것이 있다.
내 중심이 얼마나 오만했는지
사람을 얼마나 조건으로만 대했는지
말이 아니라 경청과 침묵이 위로라는 것을
고통은 나를 바꾸지 않았다.
고통을 뚫고 지나온 내가, 나를 바꿨다.
포장지를 생각해본 적 있는가?
가장 값비싼 선물은 얇은 비닐에 싸여 있지 않다.
단단하고, 무겁고, 찢기 어려운 재질로 감싸진다.
왜냐하면 그 안에 담긴 것이 그만큼 귀하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가볍게 살 사람에게 무거운 포장을 하지 않으신다.
반대로, 깊은 사람에게 깊은 고통을 주신다.
왜냐하면 그 사람을 통해 건너가야 할 메시지, 품어야 할 영혼,
말하지 않고는 안 될 ‘진실’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포장이 아프다.
그래서 고통스럽다.
그러나 그 아픔만큼, 그 사람은 깊어진다.
고통은 내 일상의 무게를 바꿔놓았다.
과거의 나는 누군가 아프다고 하면,
말로 위로했다. “괜찮아질 거야, 힘내.”
그러나 지금의 나는 말하지 않는다.
그저 옆에 가만히 앉아 있는다.
내 중심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다.
실패는 나를 위협하지 않는다.
성공은 나를 흥분시키지 않는다.
나는 다만, 내 안에 깊이를 남기고 싶다.
아픈 사람은 얕은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들의 울음을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울음을 지나온 사람뿐이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40일 동안 광야에 머무르셨다.
그곳에서 금식하며, 유혹을 받고, 홀로 있으셨다.
그 기간이 없었다면,
예수님은 군중 앞에서 말씀하실 수 없었을 것이다.
광야는 고통이다.
그러나 그 고통은 방향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심지를 다지는 시간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광야가 없다면 우리는 얕다.
깊어지지 않은 믿음은 흔들린다.
그리고 흔들리는 사람은 타인을 붙잡을 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를 낮게 만들기 위해 아프게 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우리를 깊게 하기 위해, 단단한 포장지를 쓰신다.”
〈그 사람을 바꾸기보다, 내 응시를 바꾸는 일〉
인연은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 때,
그 인연의 결도, 무게도, 상처도 달라진다.
포장을 바꾸는 게 아니라, 눈을 바꾸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