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가장 슬플 때, 하나님은 침묵하신다
“하나님, 정말 거기 계신가요?”
그 문장이 입 밖으로 나오는 데까지 참 오래 걸렸다.
기도는 습관이 되었고, 예배는 일상이었고, 믿음은 내 중심이었다.
하지만 정작 가장 무너질 때,
나는 그 어떤 응답도 들을 수 없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시기는 말 그대로 절망이었다.
삶의 방향도, 사람도, 돈도, 건강도
모든 게 동시에 흔들렸다.
나는 매일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살려달라”고, “붙잡아달라”고,
“하나님, 어디 계시냐”고.
그런데 이상할 만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기도는 허공에 퍼졌고,
말씀은 내 심장을 뚫지 못했고,
찬양은 내 입술을 지나가기도 전에 메말라버렸다.
하나님은 거기 계셨을까?
아니, 진짜 계시긴 했던 걸까?
나는 아프다는 걸 알았다.
고통은 몸으로도, 마음으로도 느껴졌다.
그런데 그보다 더 아픈 건, 하나님의 침묵이었다.
“왜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세요?”
“왜 제가 이렇게까지 울어도, 기도해도, 아무런 응답이 없나요?”
믿음은 고통 때문에 무너지지 않는다.
믿음을 흔드는 건 ‘응답 없음’이다.
하나님이 나를 듣지 않으신다는 감각,
그 감정이 믿음의 바닥을 부식시킨다.
겟세마네의 밤에도 하늘은 조용했다
성경을 펴다, 예수님의 기도가 눈에 들어왔다.
겟세마네.
십자가를 앞둔 밤,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하셨다.
“아버지여,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마 26:39)
그 기도는 얼마나 간절했을까.
핏방울처럼 땀이 흐를 만큼의 절박함.
그런데, 그날 밤 하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예수님도 침묵을 경험하셨다.
하나님의 아들이자, 완전한 순종의 사람이신 그분조차
그 밤엔 홀로 계셨다.
하지만 그 침묵은, 거절이 아니었다.
그건 구속의 계획이 시작되는 정적이었다.
하나님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일하고 계셨다.
아무 소리도 없이, 구원을 설계하고 계셨다.
하나님은 말로만 응답하시지 않는다
우리는 기도하면 ‘음성’이 들리길 원한다.
감동이 오거나, 명확한 사인이 오기를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안 계신다”고 결론내린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처럼 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때로 시간으로 말하시고,
상황으로 응답하시고,
침묵으로 움직이신다.
기계가 고장 났을 때,
정비공이 가장 조용히, 섬세하게 일하는 순간이 있다.
그때는 소음도 없고, 말도 없다.
다만, 고치고 계시는 중이다.
하나님도 그렇다.
말하지 않으실 때,
그분은 가장 정밀하게 내 영혼을 다듬고 계신다.
침묵은 끝이 아니었다
오래 지난 후, 나는 깨달았다.
그 침묵의 시간에 나는 죽지 않았다.
오히려 더 깊어졌고,
그날들 속에서 나는 진짜 ‘신앙’을 처음 배웠다.
그 전까지 나는,
응답이 있어야 믿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침묵을 견딘 후,
나는 응답이 없어도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게 하나님의 진짜 선물이었다.
믿음의 무게를 견딜 수 있는 그릇으로
나를 다시 빚으신 시간.
나중에야 알았다.
하나님은 그때도 내 곁에 계셨고,
내가 울고 있을 때,
그분도 함께 울고 계셨다는 걸.
그분은 응답이 늦은 분이 아니라,
내 고백이 다 나올 때까지 기다리시는 분이었다.
“하나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지만,
그 침묵 속에서 나를 가장 정밀하게 만지고 계셨다.”
〈‘억울함’이라는 포장지를 찢는 날〉
상처보다 더 끈질긴 감정, 억울함.
그 감정이 인생의 해석을 지배할 때,
우리는 피해자가 아닌 ‘포장된 포기자’가 된다.
그 껍질을 찢는 순간, 진짜 자유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