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이라는 포장지 #7

7화. ‘억울함’이라는 포장지를 찢는 날

by 공인멘토
ChatGPT Image 2025년 8월 13일 오후 05_50_20.png

사람들은 종종 물었다.
“그 일, 정말 용서하셨어요?”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어느 날, 거울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런데 왜 아직도, 생각만 해도 목이 메이지…”

나는 그 사람을 용서했지만,
억울함은 남아 있었다.

상처는 겉에 남고, 시간이 지나면 흉터가 된다.
하지만 억울함은, 마음 깊은 곳에서 응고되어 썩는 감정이다.
이해받지 못한 감정.
말하지 못했던 감정.
그러나 가장 오래 남는 감정.


억울함은, ‘존재가 무시당했다’는 통증이다


억울함은 단순한 분노가 아니다.
그건 “나는 그런 취급을 받을 존재가 아니었어요”
라는 영혼 깊은 절규다.

나는 그 상황에서 참았고, 말하지 않았고,
기도했고, 축복하려 애썼다.
그런데도, 내 마음 한구석은 마르지 않았다.
사과 한마디 받지 못한 현실 앞에서
나의 존재 자체가 무시당했다는 감각은 사라지지 않았다.

억울함은 외부에서 생긴 것 같지만,
실은 내 안에서 만든 감정이었다.
나는 나를 대변하지 않았고,
그 침묵이 나를 아프게 했다.


억울함은 ‘지나가지 못한 나’의 고통이다


그 일이 억울한 게 아니다.
그 일 앞에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지나친 내가 억울한 거다.

“그때 왜 나는 침묵했을까.”
“왜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을까.”
“왜 나는 나를 변호하지 못했을까.”

억울함은
과거의 사건보다,
그 안에서 자신을 무시한 현재의 나에게서 생겨난다.

나는 너무 많은 상황에서
믿음을 핑계로 참았다.

“믿는 사람은 용서해야 하니까.”
“말 꺼냈다가 더 다칠까 봐.”
“그냥 내가 지나가면 되지.”

그 말들이
결국 나에게 내 감정을 억누르라고 강요한
종교적 합리화였음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말하는 순간, 포장이 찢어진다


기도 중에 나는 하나님께 물었다.
“왜 이 감정이 나를 이렇게 오래 잡고 놓아주지 않나요?”

그분은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늘 상처는 말했지만,
억울함은 한 번도 나에게 정직하게 말하지 않았구나.”


나는 멈췄다.
나는 기도했고, 울었고, 말씀을 읽었다.
하지만 한 번도
“하나님, 저 억울했어요.
그 상황에서 왜 저만 그렇게 침묵해야 했는지 모르겠어요”라고
정직하게 내 감정을 드러내 본 적이 없었다.

믿는 사람은 억울하다고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용서하지 못한 사람처럼 보일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하나님은,
포장된 용서보다
찢긴 진심을 기다리셨다.

억울함은 잘못 살고 있다는 신호다

그때 하나님은 내 마음에 이런 깨달음을 주셨다.


“억울함은,
누군가가 너를 다치게 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순간 네가 너 자신을 돌보지 못했다는 신호란다.”


그 말은 내 내면을 찔렀다.
억울함은 타인의 잘못이 아니라,
내가 나를 외면한 자리에서 생겨난 감정이었다.

그리고 그 감정은
하나님께서 삶을 다시 정직하게 살라는 신호였다.

억울함은 사라지는 감정이 아니다.
고백되고, 책임져야 하는 감정이다.

나는 그제야 알았다.
이 억울함은 징벌이 아니라 초대였음을.
다시 나를 돌아보고,
내 삶의 방식이 어디서부터 어긋났는지
정직하게 묻는 은혜의 기회였음을.


그래서 나는, 억울함조차 감사하게 되었다


그날 이후 나는,
그 일이 생각나도 숨이 차지 않았다.
그 사람이 여전히 사과하지 않아도,
그 일은 끝나지 않았지만,
나는 나를 회복했기 때문에 자유로워졌다.

억울함은,
삶을 더 잘 살라는 하나님의 메시지였고,
나는 그것을 감사라는 해석으로 포장할 수 있게 되었다.


“억울함은 타인의 잘못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일깨우기 위해 보내신 초대장이었다.”


다음 화 예고

〈배신이 알려준 진짜 사랑〉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한 후,
우리는 사랑을 믿지 않게 된다.
그러나 배신은 때때로,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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