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이라는 포장지 #8

8화. 배신이 알려준 진짜 사랑

by 공인멘토
ChatGPT Image 2025년 8월 13일 오후 06_07_51.png

"그 사람이 나쁜 게 아니라, 내 마음이 아팠던 거였다."


“그 사람은 내 마음을 정말 잘 아는 줄 알았어요.”
“난 진심을 다했는데… 그 사람은 아니었더라고요.”

그 말을 꺼낸 후,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배신이란 감정은, 상처보다 더 복잡하다.
단지 마음이 무너진 게 아니라,
내가 그토록 아꼈던 시간들까지 한꺼번에 부정당하는 듯한 고통.

나는 진심이었다.
그런데 결과는, 이별이었다.
그걸 배신이라 부르고 나서야,
비로소 내 감정이 설명되었다.


배신은 감정이다. 상대가 나쁜 게 아니다.


배신이라는 감정은
상대가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내가 기대했던 방향으로 그가 머물러주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다.

그 사람은 나를 떠났다.
그 사람은 나를 외면했다.
그 사람은 내 진심을 받아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그 사람이 ‘악의 있는 존재’라는 뜻은 아니다.
그저, 삶의 방향이 달랐을 뿐이다.
그리고 우린 각자의 길을 가야 했다.

나는 그걸 인정하지 못해
그 사람의 떠남을 '배신'으로 해석했다.
배신은 그렇게, 내가 만든 감정의 그림자였다.


떠나는 사람을 미워하면, 내 삶도 같이 무너진다


한때, 나는 그 사람을 원망했다.
어떻게 그렇게 쉽게 돌아설 수 있냐고.
왜 나에겐 아무 말도 없이 떠나느냐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떠나는 사람은, 사실 용기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
더는 머물 수 없는 곳에서
억지로 함께하지 않겠다는 선택은,
나와 그 사람 모두를 위한 해방이기도 하다.

억지로 인연을 붙잡으면,
그 결과는 둘 다 망가지는 것이 된다.
고통은 더 깊어지고, 서로를 향한 증오는 엉켜버린다.
그때부터 우리는 사랑했던 기억조차 더럽히기 시작한다.

그러니,
떠나는 사람에게 미안해해야 할지도 모른다.

"내가 부족했기에 그 사람이 떠났구나."
"내가 미처 돌보지 못한 사이,
그 사람은 외면 속에서 외로움을 키웠구나."

그 사람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
내 사랑의 마지막 예의일지도 모른다.


예수님도 배신당하셨다. 하지만 끝까지 사랑하셨다.


나는 성경 속 장면을 떠올렸다.
예수님은 가장 가까운 제자들에게 배신당하셨다.
베드로는 세 번 부인했고,
유다는 은 삼십에 팔아넘겼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증오하지 않으셨다.
떠난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후 먼저 찾아가셨고,
사랑을 다시 건네셨다.

왜일까?
예수님에게 배신은 상대의 실패가 아니라,
사랑을 더 깊이 보여줄 기회였기 때문이다.


진짜 사랑은, 상실 속에서도 나를 지킨다


나는 그 사람을 다시 만나지 않았다.
화해는 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나 자신과 화해했다.

내 진심은 틀리지 않았다는 걸 받아들였다.
그 사람은 떠났지만,
내가 했던 사랑은 진짜였고,
그 사랑은 나를 더 성숙하게 만들었다.

배신은 끝이 아니라, 정체성의 기회였다.
나는 그 사건을 통해
“나는 어떤 사랑을 하는 사람인가”를
더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사랑은, 상대를 위한 책임이다


나는 이제 안다.
인연을 만날 때,
‘내가 좋자고’ 만나는 관계는 쉽게 무너진다.
하지만 상대를 위하고,
상대의 삶을 소중히 여기는 사랑은
끝나더라도 아름다울 수 있다.

사랑은 받는 게 아니라,
줄 수 있었던 나를 확인하는 감정이다.
그리고 그 줄 수 있었던 시간만큼
내가 어떤 존재인지, 분명하게 보여준다.

묵상:


배신은 타인을 잃는 일이지만,
진짜 사랑은 그 상실 속에서
내 안의 빛을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다음 화 예고

〈고통은 외면이 아니라 초대다〉
하나님이 우리를 고통 속으로 밀어 넣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이라는 문을 열고
진짜 나를 만나자는 초대장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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