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고통은 외면이 아니라 초대다
“고통은 삶이 나에게 보내는 초대장이다.
삶의 흐름이 어긋났다는, 하느님의 정밀한 신호다.”
“왜 저한테만 이런 일이 생기죠?”
한때는 그렇게 울부짖었다.
나름대로 성실하게 살았고,
누구에게 해를 끼친 적도 없었다.
그런데도 삶엔 계속해서
상실, 거절, 실패가 찾아왔다.
나는 그 고통을 원망했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조차 흔들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한 문장이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왔다.
“혹시 이 고통이
나를 다시 제대로 살게 하려는 신호는 아닐까?”
우리는 본능적으로 고통을 피한다.
통증은 위험을 알리는 신호이기에,
우리는 불편한 상황을 회피하고,
상처 준 사람을 멀리하며,
실패를 되도록 빨리 덮으려 한다.
나도 그랬다.
눈을 감았고, 감정을 눌렀고,
삶의 파동을 무시하며 달려갔다.
그런데 어느 순간,
고통을 피하다가, 내 삶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문득 깨달았다.
고통은 나를 무너뜨리려는 것이 아니라,
흐트러진 나를 다시 정렬시키려는 하나님의 손길이었다.
고통은 영혼의 신호가 아니다.
하나님의 신호다.
곧, 대자연의 질서가 내게 보내는 정밀한 피드백이다.
삶이 어긋났을 때,
생각과 행동이 진리에서 멀어질 때,
내가 나를 잃었을 때
하나님은 고통이라는 방식으로 말씀하신다.
“거기 아니야.”
“지금의 방향은 너를 아프게 해.”
“돌아서, 다시 나에게로 와.”
고통이 깊어졌을 때,
나는 나의 가장 밑바닥에 도착했다.
더는 붙잡을 것도, 꾸밀 것도 없던 순간,
비로소 하나님 앞에 나 자신을 온전히 드러냈다.
그때 깨달았다.
기도는 언어가 아니라,
“하나님, 저 여기 있어요”라는 존재의 열림이었다.
나는 도망치기를 멈췄다.
그리고 그 고통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서
나는 하나님의 시선과 처음으로 눈을 마주했다.
고통은 흔히 ‘징벌’로 오해된다.
“내가 뭘 잘못해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하지만 그 물음은 틀렸다.
성경의 인물들은
고통을 통해 부르심을 받았다.
욥은 이유도 모른 채 모든 걸 잃었지만,
그 자리에서 하나님과 가장 깊은 대화를 나눴다.
다윗은 죄로 무너졌지만,
눈물 속에서 “상한 심령”의 예배를 배웠다.
엘리야는 도망치다 광야에서 쓰러졌지만,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었다.
하나님은 벌을 내리시는 분이 아니라,
삶의 흐름이 엇갈릴 때
고통이라는 신호를 통해 다시 부르시는 분이다.
예전의 나는 ‘정상’이었다고 믿었다.
열심히 살았고, 관계도 잘 유지했고,
겉보기엔 아무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고통이 찾아온 뒤에야 깨달았다.
그 모든 평온이,
사실은 억눌린 감정과 두려움 위에 세워진
불완전한 평화였다는 것을.
고통은 그 모든 걸 무너뜨렸다.
그러고 나서,
진짜 나를 다시 세워가기 시작했다.
“이 고통은 내 삶이 잘못 흘러가고 있다는
하나님의 조정 신호였습니다.”
“이제는 외면하지 않겠습니다.
이 고통을 피하지 않고,
나를 다시 정렬시키는 초대로 받겠습니다.”
삶이 나를 다시 세우기 위해 보내는
하나님의 정밀한 신호다.
〈왜 나는 그렇게까지 참았을까?〉
그때는 지혜였다고 믿었던 참음이
지나고 보니 자기 억압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이제는 참는 것이 아니라,
나를 정직하게 마주하는 용기를 배워야 할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