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왜 나는 그렇게까지 참았을까
그땐 참는 게 옳다고 믿었다.
말하면 다칠까 봐,
말하면 오히려 내가 나쁜 사람이 될까 봐.
나는 침묵했고,
나는 이해했고,
나는… 참았다.
그런데 시간이 한참 흐른 뒤
내 안에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나는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참았을까?”
우리는 어릴 때부터 배웠다.
“화를 내지 말고, 참고 넘겨라.”
“네가 어른이니까 이해해야지.”
“상대의 입장도 생각해 봐.”
그래서 참는 것이 성숙이고,
말하지 않는 것이 지혜라고 믿었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살았다.
화가 나도 참고,
억울해도 웃으며 넘기고,
상처받아도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참는 내가 더 괜찮은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 어느 날, 이상한 증상이 생겼다.
말도 안 되는 작은 말에 울컥했고,
별일 아닌데 잠을 이루지 못했고,
웃는 얼굴 뒤로 질문 없는 분노가 밀려들었다.
기도 중, 하나님께 물었다.
“하나님, 왜 제가 이렇게 예민하고 힘든 걸까요?”
내가 묵상 중에 받은 마음은
‘너는 지금껏 너무 많이 참았단다.’는 말이었다.
나는 ‘선택적 침묵’이 아니라
‘강요된 침묵’을 스스로에게 주입하고 있었다.
내 감정은 틀렸다고 여기며,
내 불편함은 사소하다고 여기며,
내 분노는 미성숙하다고 여기며…
나는 나를 수년간 부정하고 있었다.
참는다는 건 어떤 면에서
‘감정을 살리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이다.
나는 참느라 내 화를 못 느꼈고,
나는 참느라 내 슬픔을 무시했고,
나는 참느라 ‘내 편’을 잃었다.
내가 참는 동안
나는 나를 돌보지 않았다.
그래서 누군가 나를 위로해 줄 때도
**“괜찮아요, 전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요”**라고 말하며
자기감정을 외면하는 법을 먼저 배웠다.
하나님은 나의 인내를 모르실까?
아니, 다 아신다.
하지만 그분은 내가 참는 모습을 자랑스러워하기보다,
내 마음 깊은 곳의 진심을 꺼내길 원하신다.
나는 어느 날 처음으로
기도 중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 저 그때 너무 화났어요.”
“그 사람 말에 자존심이 무너졌어요.”
“저는 왜 늘 이해하는 사람이어야 하나요?”
“전 그 자리에 있지 않았어야 했어요.”
그 고백이 끝나자
처음으로 내가 나 자신을 안아주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나에게 돌아온 순간이었다.
나는 그 일들을 통해
참는 것이 언제나 옳은 게 아니라는 사실을 배웠다.
때로는 ‘아니요’라고 말하는 용기,
‘지금 이 말은 상처가 돼요’라고 표현하는 힘이
참음보다 더 필요한 경계였다는 걸.
나는 이제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말은 제게 상처가 됩니다.”
“저는 그런 방식의 관계를 원하지 않아요.”
“제 마음도 존중받고 싶어요.”
이 단순한 말들이
내 삶에 ‘새로운 선’을 그었다.
침묵으로 사라졌던 나의 공간에,
이제는 진심이 머물 수 있게 되었다.
“참음은 미덕일 수 있다.
그러나 참기만 하는 인생은
자기감정을 숨기는 훈련일 뿐이다.”
〈슬픔도 쓰면 기도가 된다〉
말할 수 없던 감정이
문장으로 태어날 때,
그 슬픔은 하늘로 올라가는 기도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