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이라는 포장지 #11

11화. 슬픔도 쓰면 기도가 된다

by 공인멘토

말하고 싶지 않았다.

눈물이 났다.

아무 이유 없이,

아무 말도 못 한 채 그냥… 울고 싶었다.


사람들은 내게 말했다.

“말로 풀어야지.”

“무슨 일인지 얘기라도 해봐.”

하지만 그 순간의 나는

슬픔조차 설명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저, 조용히 쓰고 싶었다.

말 대신, 글로.

눈물 대신, 글자로.



어떤 감정은 말보다 기록이 먼저다


슬픔에는

입이 닫히고, 손이 열린다.

누군가에게 설명하기엔 너무 복잡한 감정.

“왜 슬퍼?”라고 물으면

“그냥…”이라는 대답밖에 떠오르지 않는 순간들.


나는 그런 슬픔을

몇 줄의 문장으로 써 내려가곤 했다.


“하루 종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창밖에 비가 오는데, 내 마음 같았다.”


“이건 분명 사랑이었는데, 왜 아프지?”



이 문장들이

나를 살렸다.



쓰는 순간, 감정은 방향을 얻는다


처음엔 아무 생각 없이 썼다.

그냥 흘러나오는 말을 받아 적는다는 마음으로.

그런데 이상했다.

글을 쓰는 중, 내 마음에

조금씩 질서가 잡히기 시작했다.


억울함이 이름을 얻었고,


외로움이 모양을 가졌고,


눈물이 방향을 가졌다.



이해받지 못할까 봐 두려웠던 감정들이

글 속에서 나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때 처음 알았다.

슬픔도 쓰면, 기도가 된다는 것을.



기도는 문장이 아니라, 존재의 울음이다


나는 종종 ‘제대로 된 기도’를 하지 못한다고 느꼈다.

말이 정리되지 않았고,

입을 열면 눈물부터 쏟아졌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성경을 다시 읽으며 깨달았다.

하나님은

“간구”보다 “탄식”을 들으시는 분이시라는 것.


>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롬 8:26)



나는 말하지 못해도,

하나님은 내 울음의 결을 아시는 분이셨다.


그 사실이

내 침묵을 기도로 바꾸어 주었다.



글이 나를 다시 껴안게 했다


슬픔 속에서 쓴 글을

나중에 다시 읽으면

그게 꼭 ‘지난날의 나’가 보낸 편지 같았다.


“그때 너도 많이 외로웠지?”


“말하지 않아도, 나는 너를 이해해.”


“그래, 잘 버텼어. 고마워.”



이 짧은 문장들이

내게 기적처럼 위로가 되었다.

누구의 말보다,

내가 내게 건네는 문장이

가장 큰 회복이었다.



하나님은 ‘쓰는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나는 오랫동안

“하나님, 이 슬픔을 가져가 주세요”라고 기도했지만,

어쩌면 하나님은

**“그 슬픔으로 너를 만나자”**고 말씀하셨던 걸지도 모른다.


눈물의 언어로 써 내려간 그 기록들이

곧 하나님과 나만 아는

기도의 일기장이 되었다.


기도는 울지 않는 사람이 하는 게 아니었다.

기도는 울음을 잊지 못한 사람이 쓰는 고백이었다.


“말할 수 없던 슬픔이 문장이 될 때,

그 글은 곧 기도가 된다.”



다음 화 예고


〈마지막 포장지: 감사라는 해석〉

고통과 슬픔을 지나

마지막에 도착한 포장지는

‘감사’라는 이름의 해석이었습니다.

신앙의 열매가 맺히는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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