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그 사람을 바꾸기보다, 내 응시를 바꾸는 일
“그 사람만 좀 변해주면, 내가 이렇게까지 힘들진 않을 텐데…”
나는 오랫동안 그렇게 믿었다.
문제는 언제나 ‘상대’였고,
내 고통은 그의 말투, 그의 태도, 그의 무심함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기다렸다.
그가 좀 더 따뜻해지기를,
좀 더 나를 이해해주기를,
그리고 한 번쯤 “미안하다”고 말해주기를.
하지만 그는, 끝내 변하지 않았다.
그 사람은 내 삶에 오래 머물러 있는 인연이었다.
가족이었고, 가까운 친구였고, 때로는 신앙 안의 동역자였다.
나는 ‘함께 가야만 하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그의 무신경한 말과 행동을 참았다.
그가 나를 조롱해도, 나는 웃어 넘겼고
그가 나를 무시해도, 나는 침묵으로 넘겼다.
겉으로는 괜찮은 척했지만,
사실은 마음속으로 매일 갈라지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그가 또 한 번 선을 넘는 말을 내게 던졌을 때
나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도대체 왜 저 사람은 안 바뀌는 거죠, 하나님?”
나는 속으로 울부짖었다.
그때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속삭이듯 말씀하셨다.
“그 사람을 보는 너의 시선은, 바뀌고 있니?”
나는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나는 한 번도 내 시선의 방향을 점검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늘 상대의 태도만 문제 삼았고,
내 마음과 해석, 감정의 반응은 늘 옳다고 여겼다.
그날 이후, 나는 기도 중에 질문하기 시작했다.
나는 왜 이 사람을 이렇게 해석하고 있을까?
이 감정은 정말 그 사람 때문인가?
아니면 내가 지닌 상처의 ‘필터’ 때문은 아닐까?
그리고 깨달았다.
그 사람은 늘 그랬던 사람이고,
진짜 문제는 내가 그를 바라보는 렌즈였다는 것.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특히 오래된 성향이나 상처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게 하나 있다.
‘그를 해석하는 나의 시선.’
어떤 사람은 늘 공격적으로 보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그의 삶을 들여다보니,
그는 방어적이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던 환경 속에 있었던 사람이었다.
상처가 곧 성격이 된 사람.
그걸 알게 된 순간,
나는 그 사람을 미워하기보다 불쌍히 여길 수 있게 되었다.
예수님은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셨다.
바리새인의 기도를 들으셨지만, 진심은 없음을 아셨고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셨을 땐, 죄보다 갈증을 먼저 보셨다.
우리는 자꾸 ‘말’과 ‘행동’에 집착하지만,
예수님은 영혼을 먼저 보셨다.
그래서 변화는, 먼저 응시가 변할 때 일어난다.
그 사람을 다르게 보기 시작할 때,
내 마음도 변하고, 관계의 공기마저 바뀐다.
어느 날, 그 사람이 나에게 또 예전처럼 날카로운 말을 했다.
예전 같았으면 나는 속으로 분노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 사람을 바라보며 이렇게 생각했다.
“이 사람 안에도 아직 해결되지 못한 고통이 있구나.”
“하나님, 제가 이 사람을 정죄하지 않고, 이해하게 해주세요.”
그 순간 나는 자유로워졌다.
그 사람이 변하지 않았는데도,
내 마음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고통은 누가 얼마나 바뀌느냐보다
내가 그 고통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려 있다.
가시가 박히는 순간,
가시를 뽑는다고 상처가 곧 아물지 않는다.
그 가시가 내 안에서 어떤 의미로 남을지를 결정하는 것은, 내 응시다.
사람은 바뀌지 않아도,
관계는 다시 태어날 수 있다.
내 시선이 바뀌는 순간부터.
“사람은 바꾸기 어렵다.
그러나 사람을 향한 나의 시선은 바꿀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진짜 변화의 시작이다.”
〈가장 슬플 때, 하나님은 침묵하신다〉
왜 기도해도, 울어도, 외쳐도 아무 응답이 없을까?
하나님의 침묵은 거절이 아니라, 깊은 일하심의 시작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