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나를 고쳐보기로 했다
1절. 아직 무너져 있지만, 다르게 느껴지는 하루
몸은 여전히 무거웠다.
눈꺼풀은 천근만근이고, 손끝은 힘이 없었다.
일어나야 한다는 의무와, 눕고 싶다는 욕망이
침대 위에서 오래도록 줄다리기를 했다.
결국 몸을 억지로 일으켰지만,
거울 속 얼굴은 어제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뭔가 조금 달랐다.
어제와 똑같이 피곤하고,
어제와 똑같이 무기력했는데,
마음 한구석에서 아주 미세한 속삭임이 들렸다.
“왜 이렇게 됐는지, 이제는 알 것 같다.”
단순한 문장이었지만, 그건 큰 차이였다.
어제의 나는 무너진 채 그저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의 나는, 무너져 있는 나를
처음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눈앞의 풍경은 똑같았다.
쌓인 책상, 밀린 메시지, 가라앉은 마음.
하지만 내 시선은 달라져 있었다.
어제는 그 모든 것이 나를 짓누르는 짐이었다.
오늘은 그것들이 단지,
돌봐야 할 나의 일부처럼 보였다.
“똑같은 무기력인데, 왜 마음은 어제와 다르지?”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아마 그 이유는, 이제야 인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고장 나 있었다는 사실을.
내가 멈췄다는 사실을.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다시 움직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삶은 언제나 미세한 차이에서 바뀐다.
크게 변한 건 아무것도 없는데,
어느 순간, 같은 풍경이 다르게 느껴진다.
그 작은 다름이 시작이 된다.
어쩌면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일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무너져 있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다르게 말하고 싶다.
“그래도, 이제는 나를 고쳐보기로 했다.”
2절. 내가 나를 고쳐야 한다는 말의 의미
그동안 나는 늘 바랐다.
누군가 나를 이해해 주길,
상황이 갑자기 나아지길,
환경이 바뀌길.
마치 외부의 힘이 내 삶을 정상 궤도로 돌려놓아 주기를
간절히 기대하며 버텼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아무도 내 삶을 대신 고쳐줄 수 없다는 것을.
누구도 내 안을 끝까지 들여다볼 수 없고,
누구도 내가 쌓아온 고장의 습관을 대신 치유해 줄 수 없다.
“이제는 내가 나를 고쳐야 한다.”
이 말은 처음엔 자기 비난처럼 들렸다.
마치 ‘너 스스로가 문제야’라는 선고 같았다.
하지만 곱씹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그건 자책이 아니라 자기 책임이었다.
남 탓도, 상황 탓도, 운명 탓도 하지 않고
그저 지금의 나를 인정하는 태도.
내가 나를 고치겠다고 말하는 순간,
나는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니었다.
나는 내 삶의 수리공이 되었다.
고쳐야 한다는 말은,
완전히 새 사람으로 바뀌겠다는 선언이 아니다.
그저 지금의 고장 난 부분을 살펴보고,
다시 작동할 수 있도록 작은 손질을 시작하겠다는 다짐이다.
삶을 거창하게 바꾸는 게 아니라,
내가 나를 외면하지 않겠다는 약속.
그렇게 생각하니,
“나를 고쳐야 한다”는 말이
더 이상 무겁지 않았다.
오히려 따뜻하게 다가왔다.
누군가를 원망하며 흘려보낸 시간보다
훨씬 가볍고, 훨씬 단순했다.
나는 이제야 알았다.
나를 고친다는 건 벌주는 게 아니라 살리는 것임을.
내 삶을 돌보는 가장 직접적이고 단순한 방법임을.
그래서 오늘, 나는 스스로에게 다시 속삭였다.
“이제는 내가 나를 고쳐야 한다.”
그 말이 나를 짓누르지 않고,
오히려 조용히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3절. 그동안의 나는 나를 외면하고 있었다
돌아보면, 내 삶은 ‘외면’의 연속이었다.
힘들다는 신호를 느끼면서도
“괜찮아, 다들 이 정도는 겪지”라며 무시했고,
피곤에 지쳐도
“조금만 더 참으면 나아질 거야”라며 눌러버렸다.
나는 늘 참고, 숨기고, 미뤘다.
감정이 북받쳐 올라와도
“이건 유난이야”라며 억눌렀고,
분노가 차올라도
“성숙한 사람은 화내지 않아”라며 삼켰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내가 내 감정을 어디에 두었는지조차 모르게 되었다.
나는 나를 버려두었다.
해야 할 일, 지켜야 할 체면,
남들이 기대하는 역할에 몰두하다 보니
정작 내 안의 작은 목소리는 점점 잦아들었다.
“나 힘들어”라는 신호는 들었지만
곧장 지워버렸고,
“이젠 못 버티겠어”라는 외침은
‘더 강해져야 해’라는 주문으로 덮어버렸다.
그 결과, 나는 겉으로는 멀쩡했지만
속은 이미 무너져 있었다.
그런데도 그 무너짐마저 인정하지 않고
끝내 버티려 했다.
그러니 결국 삶은 나를 강제로 멈추게 했다.
나는 이제야 깨닫는다.
고장 난 건 내 삶이 아니라,
나를 방치한 나 자신이었다는 것을.
고친다는 건 특별한 기술이 아니다.
그저 오래 외면했던 나를
다시 돌아보는 일이다.
“너 괜찮아?”라고 내가 나에게 묻는 순간,
그게 바로 수리의 시작이었다.
나는 그동안 한 번도
내 안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다.
나를 챙기지 않았고, 나를 살피지 않았다.
그게 바로 고장의 본질이었다.
고장은 돌발이 아니라,
방치의 결과였다.
그리고 나는 그 방치의 시간을 이제 멈추려 한다.
4절. 작동을 위한 첫 번째 조건: 지금 이대로의 나를 인정하는 것
나는 늘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남들처럼 활기차게 웃고,
끝까지 버텨내고,
아무렇지 않게 살아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니 고치겠다고 마음먹으면서도
늘 완벽한 회복을 꿈꾸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복구란 완전히 새로워지는 게 아니다.
기계가 수리를 거친다고 해서
출고 당시의 새것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듯,
삶도 마찬가지다.
망가진 흔적은 남아 있다.
때로는 예전처럼 작동하지 않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그 상태로도 다시 움직일 수 있다.
고쳐야 작동하는 게 아니라,
작동하면서 조금씩 고쳐지는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는 말을
내가 나에게 해줄 수 있어야 했다.
아직 무너져 있고,
여전히 무기력하며,
때때로 아무것도 하기 싫어도
그 자체로 살아 있다는 증거다.
고친다는 건 완벽을 목표로 하는 게 아니라,
지금의 나를 인정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나는 여전히 고장 나 있지만,
그럼에도 오늘 하루를 살아냈다.”
이 고백이야말로 복구의 첫 단추였다.
나는 이제야 알았다.
삶을 고치는 첫 번째 조건은
지금의 나를 버리지 않는 것,
지금의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
그저 “괜찮다”라고 말해주는 것.
그 말 한마디가
다시 움직일 수 있는 시동 버튼이었다.
5절. 나를 고치기 위한 작은 실험
나는 거창한 계획 대신, 아주 작은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고치는 건 거대한 수술이 아니라,
작은 손질의 반복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첫째, 오늘 하루 10분, 감정 상태를 적어보기.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아니라,
그때 내가 어떤 기분이었는지를 기록하는 것.
“짜증 났다”, “마음이 가벼웠다”, “텅 비었다.”
이 단순한 단어들이
내 마음의 회로를 드러내는 지도였다.
둘째, 피하고 싶던 일 하나를 작게 해 보기.
밀린 전화 한 통,
쌓아둔 빨래 한 움큼,
읽지 않은 메시지 하나.
완벽하게 다 끝내려 하지 않고,
단지 첫걸음을 떼는 것만으로도
내 안의 멈춤은 조금씩 풀려갔다.
셋째, 잠들기 전, 오늘 가장 어려웠던 순간 하나 짚어보기.
하루를 통째로 평가하지 않고,
한 장면을 붙잡아 나와 대화하는 것.
그 순간을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삶은 더 이상 흘려보내는 시간이 아니었다.
돌아보는 순간, 비로소 점검과 수리가 일어났다.
나는 깨달았다.
고친다는 건 거창한 정비가 아니라,
그저 내 삶 위에 손을 얹는 일이라는 것을.
작은 실험이 모여,
나는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다.
나는 아직 고장 난 채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멈추지 않고,
조금씩이라도 나를 손봐주기로 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오늘 하루를 무사히 통과했다면,
그것이 곧 수리의 증거다.
오늘의 점검 질문
– 나는 지금, 어떤 방식으로 나를 고치고 있는가?
– ‘고치기 위한 삶’이 아니라, ‘살기 위한 수리’는 무엇인가?
– 나는 오늘, 나에게 어떤 수리를 허락했는가?
작은 수리가 쌓이면,
삶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