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다시 살아나는 느낌
예전에는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스스로도 설명하지 못했다.
눈을 뜨고, 씻고, 일하고, 밥을 먹고, 다시 누웠다.
모든 행동은 있었지만, 그 안에서 ‘나’는 없었다. 움직였을 뿐 살아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 요 며칠, 이상하게도 아주 작은 변화들이 스치듯 지나갔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
예전처럼 “또 하루가 시작됐네…”라는 무거운 숨이 먼저 튀어나오지 않았다.
그저, 눈을 떴다는 사실이 조금 덜 버겁게 느껴졌다.
여전히 큰 변화는 없는데, 설명하기 어려운 미세한 완충 같은 기운이 있었다.
마치 몸속 어디선가 조용히 멈춰 있던 스위치가 아주 작게 ‘딸깍’ 하고 움직인 듯한 느낌이었다.
출근길 엘리베이터 안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지금 살아 있는 건가?”
이 질문이 부정이 아니라, 오히려 확인하는 듯한 느낌으로 떠올랐다는 게 신기했다.
예전 같으면 이런 질문은 절망의 한숨으로 나왔겠지만,
오늘은 묘하게 생각이 돌아오기 시작한 사람의 혼잣말처럼 들렸다.
크게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직장도 그대로, 사람들도 그대로, 일상의 난잡함도 여전했다.
그런데 ‘느낌’이 조금 달라졌다.
지나가는 바람의 온도가 더 정확하게 느껴졌고,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단순한 소음이 아니라
어딘가 내 주변을 흐르는 ‘삶의 징후’처럼 들렸다.
이 변화가 기적처럼 나타난 건 아니다.
회복이란 말씀처럼, 어느 날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오는 게 아니라
조용히 스며들고, 어느 순간 내가 알아차릴 수 있는 지점에 도착한다.
그리고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바로 그 지점이었다.
“크게 바뀐 건 없는데… 이상하게 ‘느껴진다’.”
그 작은 변화 하나가
내가 조금은 다시 살아나고 있음을 말해주는 첫 신호처럼 느껴졌다.
이상한 건, 마음보다 먼저 감각이 돌아왔다는 거였다.
감정이 회복되면 눈물부터 날 줄 알았는데,
오히려 가장 먼저 달라진 건 ‘느낌’이었다.
회사 건물 앞에 내리자마자,
아침 햇살이 예전과 다르게 느껴졌다.
따뜻하다는 감각이 아니라,
정말로 살갗 위에 닿는 온기의 결이 느껴지는 느낌이었다.
예전엔 햇빛이든 비든 그저 지나가는 날씨일 뿐이었는데,
오늘은 햇살이 몸 위에 올려놓은 손바닥처럼 은근하게 스며들었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늘 듣던 음악을 틀었을 때도
정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분명 똑같은 노래인데,
가사가 더 또렷하게 들리고,
리듬이 피부를 건드리듯 전해졌다.
예전에는 그냥 배경음처럼 흘려보냈는데
오늘은 음악이 ‘내 안으로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스스로도 깜짝 놀랐다.
“나… 지금 이 음악을 ‘느끼고’ 있네?”
커피 향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습관처럼 손에 쥐었던 따뜻한 컵이
오늘은 유난히 온기가 강하게 느껴졌다.
입에 넣는 순간,
커피가 ‘쓴맛’이 아니라 ‘쓴맛 안에 숨어 있던 고소함’으로 다가왔다.
한 모금 삼키는 동안
내 몸이 그 맛을 따라 천천히 깨어나는 것 같았다.
감정이 회복된다는 건,
사실 이런 감각의 살아남이라는 걸 그제야 알았다.
감정은 머리에서 느끼는 줄 알았는데,
감각은 가장 먼저 몸으로 돌아왔다.
몸이 깨어나자 마음이 뒤따라 움직이는 방식이었다.
예전엔 모든 맛이 무맛이었고, 모든 빛이 무채색이었다.
그냥 살아남기 위해 움직였던 날들이라 그랬다.
그런데 지금은,
빛도, 냄새도, 소리도 미세하게 내 안으로 들어와 의미를 만들고 있었다.
“감각이 살아난다는 건,
내가 다시 삶과 연결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 문장을 마음속으로 반복하는데,
어딘가에서 조용히 심장이 ‘응’ 하고 대답하는 느낌이 들었다.
감각이 조금씩 돌아오자,
문득 하나의 질문이 마음에 내려앉았다.
“나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순간을 놓치며 살았을까.”
그 생각이 들자마자,
마치 오래된 필름이 감기듯
그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순간들이 스쳐가기 시작했다.
출근길에 스쳐 지나간 봄바람,
벚꽃이 흩날리던 날의 흰빛,
누군가 건넸던 따뜻한 말,
내 앞에 놓였던 맛있는 음식들…
그 모든 것이 그때는 아무 의미도, 아무 감정도 주지 못했다.
나는 살아 있었지만,
살아 있다는 느낌 없이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그때의 나는
아침에 눈뜨는 일이 의무였고,
회사로 가는 길은 탈출할 수 없는 코스였고,
밥을 먹는 건 ‘배고프면 안 되니까’라는 기능적 행위였을 뿐이었다.
기쁜 일이 와도 “그래, 뭐” 하고 넘겼고,
슬픈 일이 있어도 “별일 아니야”라고 눌러버렸다.
돌아보면,
나는 그처럼 많은 감정들을
의도적으로 잃어버리며 살아왔다.
그리고 그 선택은 ‘생각해서 한 선택’이 아니라
그냥 버텨야 해서 만든 습관이었다.
언젠가 누가 웃으며 했던 말이 있었다.
“넌 왜 이렇게 무덤덤하냐?”
그 말이 칭찬처럼 들리기까지 했다.
감정 없으면 흔들리지 않는 줄 알았으니까.
하지만 지금 돌아보니,
그건 흔들리지 않는 게 아니라
이미 무너져 있어서 아무 감각이 없던 것에 가까웠다.
사실 나는
슬펐어야 할 순간에도 울지 않았고,
기뻐야 할 순간에 웃지 않았다.
감정을 ‘관리한다’는 착각 아래
나는 감정을 계속 제거해 왔던 거다.
그러니 삶이 무미건조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다시 느끼기 시작하니 깨닫는다.
내가 감정을 잃었던 게 아니라,
감정이 삶으로 들어올 통로를
나 스스로 닫아걸고 살았던 것이라고.
감정이 돌아오자
비로소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색도, 냄새도, 온기도 없이 살아왔는지 알게 되었다.
“감정을 다시 느낀다는 건,
삶이 다시 내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말을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중이었다.
천천히, 느리지만 확실하게.
회복이라는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종종 어떤 장면을 떠올린다.
눈물로 결심하고,
하룻밤 사이에 인생이 뒤집히고,
갑자기 활력이 넘쳐서
예전의 나로 돌아오는 기적 같은 순간.
하지만 내가 겪은 회복은
그런 극적인 변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나에게 회복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변화들의 축적이었다.
깨닫지 못한 사이,
조용히 스며들고,
느리게 번져오는 변화였다.
어느 날은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 것 같아
답답하기도 했고,
“이게 회복이 맞나?” 싶은 마음이 들 때도 많았다.
그런데도 기묘한 일이 있었다.
어제와 똑같은 하루였는데,
내가 그 하루를 받아들이는 마음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 괜히 커피 한 잔이 맛있게 느껴지고,
—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지고,
— 한숨 대신 숨을 들이마시는 횟수가 늘고,
— 누군가의 말에 상처받아도 예전처럼 오래가지 않고.
이런 사소한 변화들이
나도 모르게 쌓여가고 있었다.
회복은 폭발이 아니라,
스며듦이었다.
돌이켜보면,
어느 하루가 특별히 나를 살린 건 아니었다.
대신 아주 작은 ‘살아 있음’이
날마다 한 방울씩 내 안에 떨어졌다.
그리고 그 한 방울들이 모여
어느 순간 내가 변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예전에는
“언제쯤 좋아질까”만 한숨처럼 흘러나왔지만,
이제는
“아, 내가 움직이고 있구나”라는
작은 확신이 생겼다.
나는 아직 완벽하지도,
완전히 회복된 것도 아니지만,
분명히 **‘돌아오고 있는 중’**이라는 느낌이 있었다.
회복은 어느 날 갑자기 오지 않는다.
하지만 오고 있는 중이라는 감각은
어느 순간 분명하게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선명해진다.
나는 지금 바로 그 지점에 있었다.
지난날은 여전히 나와 함께 있지만,
현재의 나는 그때의 나와 다르게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살아나는 방향으로 걷고 있었다.
하루를 마무리하려고 앉아 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 나는 언제 숨이 깊어졌지? 언제 잠깐이라도 마음이 움직였지?”
예전 같았으면 그런 질문을 떠올리는 것조차 귀찮았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아주 작은 순간이라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마치 오랫동안 어둠 속에 있다가 겨우 찾아낸 빛의 조각을
두 손으로 꼭 감싸 안는 마음처럼.
나는 조심스럽게 오늘의 ‘살아 있는 순간’을 떠올려보기 시작했다.
커피 한 모금이 몸에 스며들 때 느껴지던 은은한 따뜻함.
버스 창밖을 스칠 때 눈에 들어온 햇살의 결.
점심시간에 누군가의 소소한 농담에 나도 모르게 터졌던 짧은 웃음.
그 순간들 어디에도 대단한 사건은 없었지만, 분명 생기가 있었다.
그게 바로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아마 회복이라는 건 이런 작은 움직임을 포착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크게 나아져서가 아니라, “아, 지금의 내가 괜찮다”라고 느낄 수 있는
아주 짧은 찰나의 흔들림.
그걸 알아보고 기록할 때, 회복은 방향을 잃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작은 공책 한 권을 꺼내 오늘의 감각을 적어 내려갔다.
“오늘, 햇살이 좋았다.”
“누가 건넨 말 한마디가 마음을 덜 무겁게 했다.”
“걷다가 불어온 바람이 기분 좋았다.”
이런 기록만으로도 마음이 조금 더 단단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살아 있는 순간을 기록한다는 건,
내가 얼마나 잘 버티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알려주는 일이다.
그리고 그 기록이 쌓일수록, ‘삶과 다시 연결되고 있다’는 확신이 자란다.
내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는 사실을
내가 먼저 증명해 나가는 과정이다.
오늘 하루를 조용히 되짚어보며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보았다.
“나는 오늘 어느 순간, 분명히 살아 있다고 느꼈는가?”
그 순간이 매우 작고 짧을지라도, 분명히 어딘가에는 있었다.
대화 속의 작은 미소였을 수도 있고,
걷다가 스친 바람이었을 수도 있고,
문득 가벼워진 내 호흡이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또 하나.
“그 느낌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누군가의 말, 내 안에서 일어난 감정,
혹은 그냥 오랜만에 찾아온 평온함일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나는 이렇게 자문했다.
“나는 지금, 조금씩 살아나는 중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이 질문에 ‘예’라고 말할 수 있다면,
회복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