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졌던 날들이 없었다면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한다.
지금의 내가 조금이라도 숨을 쉬며 살아가고 있는 이 상태가,
과연 아무 일도 없었다면 가능했을까 하고.
아무것도 무너지지 않았고,
아무 데도 부서지지 않았고,
그저 계속 버티기만 했다면
나는 지금 어디쯤에 서 있었을까.
아마도 여전히 바쁘다는 말로 나를 속이고,
괜찮다는 말로 나를 밀어내며,
고장 난 줄도 모른 채 하루를 소비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때는 몰랐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알고 싶지 않았다.
삶이 나에게 보내던 미세한 신호들을
애써 무시하며 살았다.
조금만 쉬어야 할 때에도
“이 정도는 다 견딘다”라고 말했고,
마음이 먼저 무너지고 있을 때에도
“마음이 약해진 거야”라며 다그쳤다.
그러다 결국,
더는 다그칠 힘조차 남지 않았던 날이 왔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고,
그저 주저앉아 버린 날.
그날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 한편이 서늘해진다.
그 시절의 나는
너무 무너져 있어서
앞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야
조심스럽게 되묻는다.
그날들이 없었다면,
나는 과연 멈출 수 있었을까.
아마도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너무 오래
멈추지 않는 법만 배운 사람이었으니까.
무너졌기에 멈췄고,
멈췄기에 들여다볼 수 있었고,
들여다봤기에
비로소 바뀌기 시작했다.
그때는 고통뿐이었지만,
지금의 나는 안다.
그날들은
나를 부수기 위해 찾아온 시간이 아니었다.
나를 살리기 위해
강제로 세운 브레이크였다.
그날들이 없었다면
나는 여전히
망가진 줄도 모르고 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보다 훨씬 더 깊은 곳에서
조용히 썩어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제는
그 시절을 떠올릴 때
도망치듯 눈을 돌리지 않기로 했다.
아직도 아프지만,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무너졌던 날들이 있었기에
나는 멈췄고,
멈췄기에
비로소 나를 보기 시작했다.
그것만으로도
그날들은
내 인생에서
결코 사라져야 할 실패가 아니다.
그때는 정말로 모든 게 끝난 줄 알았다.
하루아침에 감정이 무너졌고,
관계는 끊어졌으며,
삶은 갑자기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
아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는데
세상은 내가 뒤처졌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여전히 각자의 자리에서
움직이고, 웃고, 일상을 이어가고 있었고
그 속에서 나는
고장 난 사람처럼 멈춰 서 있었다.
그래서 그 무너짐을
‘실패’라고 불렀고,
‘나약함’이라고 불렀고,
‘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 시절을 다르게 바라본다.
감정이 폭발했던 건
이유 없이 예민해져서가 아니었고,
관계가 끊어졌던 건
사람을 잘못 만나서만은 아니었으며,
삶이 멈췄던 건
의지가 약해져서가 아니었다.
그건
너무 오래 무리한 삶이
마지막으로 보내온 구조 신호였다.
차가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멈춰 서는 건
고장이 아니라
더 큰 사고를 막기 위한 경고일 때가 많다.
그때의 나는
이미 브레이크가 닳아 있었고,
엔진은 과열돼 있었으며,
계기판의 경고등은
이미 오래전부터 깜빡이고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계속 달리기만 했다.
멈추면 안 된다고,
쉬면 뒤처진다고,
버티는 게 강한 거라고 믿으면서.
결국 삶은
내가 멈추지 않자
강제로 멈춰 세웠다.
그게 바로
그 무너짐이었다.
그때 무너지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내가 얼마나 위험한 속도로
살고 있었는지도 모른 채
계속 달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 무너짐은
나를 벌주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나를 멈추게 하기 위한
마지막 안전장치였다.
당시에는
그 사실을 받아들일 여유도,
이해할 힘도 없었다.
다만 아팠고,
억울했고,
왜 하필 나냐는 생각만 반복했다.
하지만 지금은 말할 수 있다.
그 무너짐은
삶이 나에게 등을 돌린 순간이 아니라,
삶이 끝까지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이대로는 안 된다.”
“지금 멈추지 않으면,
너는 정말로 망가진다.”
그 말이
가장 거친 방식으로
나에게 전달되었을 뿐이다.
그래서 이제는
그 시절을 떠올릴 때
‘끝났던 날들’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날들은
내 삶이 처음으로
정비를 시작한 순간이었다.
그 시절의 나는
스스로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이해하려고 하지도 못했다.
그저 하루하루가 버거웠고,
아침이 오는 게 두려웠으며,
눈을 뜨는 순간부터
다시 하루를 버텨야 한다는 사실이
숨이 막히게 느껴졌다.
아무 이유 없이 눈물이 났고,
아무 일도 없었는데 가슴이 조여왔으며,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몸이 먼저 반응했다.
그래서 나는
그런 나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
“왜 이렇게 약해졌지?”
“예전에는 이 정도는 다 견뎠는데.”
“이것도 못 버티면 앞으로는 어떻게 살지?”
나는 나를 위로하기보다
다그쳤고,
이해하기보다
비난했다.
도망치듯 약속을 취소했고,
연락을 피했고,
사람을 만나는 일 자체가
큰 부담이 되었다.
그럴수록
더 무너졌고,
더 고립됐으며,
스스로를 더 싫어하게 되었다.
그 시절의 나는
계속 스스로에게 묻고 있었다.
“나는 왜 이렇게 됐을까?”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질문 자체가
너무 가혹했다는 걸 안다.
그때의 나는
잘못된 사람이 아니었다.
너무 오래 버텨온 사람이었다.
매번 괜찮은 척했고,
상처받지 않은 척했고,
아무 일 없는 얼굴로
하루하루를 넘겨왔다.
그동안 쌓인 감정들은
갈 곳이 없었고,
말이 되지 못한 채
몸과 마음 안에
고여만 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
더는 버틸 수 없는 지점에
도달했을 뿐이다.
그 시절의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게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소한만 하고 있었다.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던 날도,
사람을 피했던 선택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숨만 쉬고 있던 시간도
모두 나름의 방식으로
나를 지키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포기한 게 아니라,
붕괴를 막기 위해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는 안다.
그 모습이
비겁함이 아니었고,
무능함도 아니었으며,
나약함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는 걸.
그건
한 사람이
자기 자신을 완전히 잃지 않기 위해
선택한
마지막 방어였다.
그래서 이제는
그 시절의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여전히 아팠던 기억은 남아 있지만,
그 안에 담긴
필사적인 생존의 흔적도
함께 본다.
“그때의 너는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었구나.”
“그 방식밖에 없었겠구나.”
그 말을
이제야
나 자신에게 건넬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
과거는 더 이상
나를 찌르는 기억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지탱하는 이유가 되었다.
우리는 흔히
무너지지 않고도
괜찮아질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조금만 참으면,
조금만 더 버티면,
아무 일 없다는 얼굴로
시간을 넘기다 보면
언젠가는 다시 제자리를 찾을 거라고
스스로를 설득합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건 회복이 아니라
연기에 가까웠습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지만,
안에서는 이미
여러 회로가 과열되고 있었고,
경고등은 계속 깜빡이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았던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멈추는 법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무너지는 걸
실패라고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삶은
다른 방식으로
나를 멈춰 세웠습니다.
감정이 먼저 무너지고,
관계가 끊어지고,
몸과 마음이 동시에 작동을 멈췄을 때,
비로소 나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제야
멈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무너짐은
삶이 보내던
가장 강한 신호였습니다.
“지금 방식으로는 더 이상 안 된다.”
“이대로 가면, 너는 너를 잃는다.”
“이제는 안을 들여다봐야 한다.”
무너지지 않았다면
나는 계속 같은 속도로 달렸을 것입니다.
문제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애써 무시한 채
앞만 보고 갔을 것입니다.
하지만 부서졌기 때문에
멈췄고,
멈췄기 때문에
처음으로 안을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겉모습이 아닌
속 구조를.
성과가 아닌
감정의 상태를.
역할이 아닌
나 자신을.
무너짐은
모든 걸 잃는 순간이 아니라,
무엇이 잘못 조립되어 있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었습니다.
아프지 않았다면
나는 고치지 않았을 것입니다.
고통스럽지 않았다면
나는 질문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버텨왔을까?”
“무엇을 위해 나를 이렇게 다뤘을까?”
“이 삶은 정말 내가 선택한 방식이었을까?”
이 질문들은
무너짐이 없었다면
끝내 나오지 않았을 질문들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말할 수 있습니다.
그날들은
나를 망가뜨린 날들이 아니었습니다.
나를 멈추게 하고,
다시 조립하게 만든
필연적인 중단 구간이었습니다.
복구는
항상 무너진 뒤에 시작됩니다.
정비는
고장이 드러난 후에야 가능합니다.
무너지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망가진 줄도 모른 채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그날들은
더 이상 두려운 기억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가능하게 한 조건으로
자리를 바꿉니다.
이제는
그 무너졌던 장면들을
조금 다른 눈으로 떠올려봅니다.
그때의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처럼 느껴졌고,
스스로를
끝까지 실망시킨 존재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기억을 다시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비난이 아니라
관찰의 시선으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아마도
완전히 힘이 빠져
아무것도 하지 못하던 순간일 것입니다.
해야 할 일은 산처럼 쌓여 있었고,
머리로는 다 알고 있었지만
몸이 전혀 움직이지 않던 날들.
그때의 나는
게으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도망치고 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미 너무 많은 신호를 무시한 끝에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상태였을 뿐입니다.
또 다른 장면은
관계가 무너졌던 순간일지도 모릅니다.
말 한마디를 꺼낼 힘조차 없었고,
설명하고 싶었지만
설명할 언어가 남아 있지 않았던 때.
그래서 침묵했고,
그래서 멀어졌고,
그래서 혼자가 되었습니다.
그때의 나는
무책임했던 것이 아니라,
이미 내 몫의 책임을 너무 오래 짊어지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마,
가장 아픈 장면은
스스로를 한심하게 바라보던
그 수많은 밤일 것입니다.
“왜 이것밖에 안 되지.”
“다른 사람들은 다 잘 버티는데.”
“나는 왜 이렇게 약할까.”
그 말들은
나를 일으키기 위한 채찍이 아니라,
이미 쓰러진 나를
더 깊이 바닥으로 누르던 말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도 나는
완전히 놓아버리지는 않았습니다.
아주 미세한 형태로라도
살아 있으려 애썼습니다.
울면서 하루를 버텼고,
도망치듯 잠들었고,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날들을
어찌 됐든 지나왔습니다.
그건 대단한 의지가 아니었습니다.
용기라고 부르기에도
너무 초라해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압니다.
그건
살고자 하는 본능이었습니다.
완전히 꺼지지 않으려는
최소한의 저항이었습니다.
나는 무너졌지만,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았습니다.
부서졌지만,
어딘가에서는 계속
나를 붙잡고 있었습니다.
그때의 나는
회복을 준비하고 있던 게 아니라,
그저 버티고 있었을 뿐이었지만,
그 ‘버팀’이 없었다면
지금의 회복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그 시절의 나를
비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만큼 힘들었는데도
너는 끝까지 떠나지 않았구나.”
“살아 있으려고
너 나름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했구나.”
무너졌던 장면들은
여전히 아프지만,
이제는 그 안에서
살아남은 나의 흔적도 함께 보입니다.
그리고 그 흔적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는 사실을
이제는 부정하지 않습니다.
이제 와서야 나는 묻게 된다.
그날의 무너짐은 정말로 실패였을까.
아니면, 더 이상 그 방식으로는 살 수 없다는 신호였을까.
그 시절의 나는 부끄러워 숨기고 싶었지만,
지금의 나는 그 시간을 지워버리고 싶지는 않다.
아직 완전히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하나만은 분명해졌다.
그날들이 없었다면, 나는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회복이란,
무너졌던 날들을 용서하는 일이 아니라
그날들이 왜 필요했는지를
천천히 이해해 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 나는 어떤 순간에 무너졌었는가?
– 그 무너짐은 내 삶에 무엇을 멈추게 했는가?
– 나는 이제 그날들을, 부끄러움이 아닌 ‘이유’로 바라볼 준비가 되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