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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뭐야 Feb 14. 2023

<드라마학개론>

“사랑하니까 떠난다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드라마를 보던 너의 한 마디에 감정이 듬뿍 실려있다. 보아하니 주인공이 이별이라도 통보한 모양이었다.

 

“드라마야, 진정해.”

“아니, 어떻게 사랑한다면서 떠난다는 말이 저렇게 뻔뻔하고 가증스럽…”

“어허, 따라해. 드라마는.”

“드라마는.”

“드라마다.”

“현실이다.”

“야.”

“하지만 몰입이 되는 걸 어떻게 하라고.”

“너 MBTI 검사 다시 해 봐. 난 너가 T라는 게 믿기지가 않아.”

태블릿에서 눈을 떼지 않는 너에게 과자와 맥주를 가져다 주고는 네 옆에 슬쩍 앉는다.

 

“너는 어떻게 생각해?”

“응? 뭐를?”

“아까 드라마에서 나온 장면 있잖아.”

“사랑하니까 떠난다는 거?”

“응, 그거.”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럴 수가 있어?”

“왜, 사랑하지만 여러 가지 현실적인 일들로 인해 떠나는 게 더 좋은 순간이 올 수도 있잖아.”

“그래도 어떻게 사랑과 이별이 동시에 일어날 수 있는 거야?”

“글쎄, 내가 떠나는 것이 상대방에게 있어 더 좋은 거라 생각한다면, 그건 사랑이지 않을까?”

 

“어떻게 그게 사랑이 될 수 있어? 너무 이기적인데.”

“상대방을 생각하는 게 이기적인 거야?”

“아니, 상대방한테 직접 물어본 것도 아니잖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남의 감정을 단정지어 버리는 건 이기적인 것 같아.”

“듣고 보니 그렇네.”

“그렇지? 너는 그러니까 그런 일 없도록 해.”

“애초에 그런 순간이 온다면 감당이 안 될 것 같아.”

“예를 들어?”

“음, 떠나는 입장에서도 잊지 못하는 거니까, 매일마다 생각이 안 날 수가 없겠지?”

“또?”

“그런데 그럴 때마다 떠날 때의 감정선이 떠올라서 힘들어하겠지?”

“또?”

“그럼에도 이미 헤어졌으니 돌아가지 못하는 그 때를 떠올리며 자책하겠지.”

“지금처럼?”

“응.”

테이블에 올려둔 맥주캔을 힘차게 깐다. 액정이 꺼져 컴컴한 태블릿 액정 위로 하얀 맥주 거품이 몇 방울 튄다.

 

“지금처럼.”


—-


최근에 글을 쓸 시간이 정말 없다. 종이 위에 나의 글을 쓰는 것보다, 종이 위에 쓰인 남의 글을 읽어야 하는 시간이 더 많아져서일 것이다. 그래서 약간은 뿌듯하면서도,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억지로라도 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지난 번에 쓴 ‘사랑글’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기에, 중환자실에 갇힌 연애세포를 끄집어내서 글을 쥐어짜냈다.


이렇게 ‘억지로 쓰인‘ 글은 결국 자기복제의 전철을 밟게 되는 것 같다. 이미 전에 썼던 구성. 썼던 문체. 썼던 표현. 썼던 소재. 이것저것 짜집기해 나온 결과물은 분명히 예전과는 다르긴 한데 굉장히 익숙한 느낌을 준다. 최근에 노량진에서 밥을 먹을 때 고시뷔페를 애용중인데, 닭고기와 돼지고기에서 똑같은 맛이 나는 게 이번 글을 참 닮은 것 같다. 인간 노량진화가 진행중인 것인가.


여튼 결론은, 얼른 합격해서 이 곳을 탈출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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