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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야 Jun 19. 2024

잔잔한 파도를 꿈꾸며...

글의 소중함

 한바탕 해일이 쓸고  같습니다.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제멋대로 흩어져 버린 방파제가 되어버린 기분이었습니. 그렇게 조각조각 부서진 파편들이 어딘가에 생채기를 내었는지 평온했던 마음이 조금씩 뾰족해져만 갔습니다. 하염없이 밤길을 거닐며  날 선  마음을 잠재우려 몇 날 며칠을 다독여야 했습니다. 이미 내 손을 떠났었고 그 글은 이제 내 것이 아닌 모두의 것이 되었으니 그것이면 충분한 것이라고, 애써 덧칠하고 또 덧칠하며 겹겹이 그 생채기들을 싸매곤 했습니다.


  나의 글은 내가 낳은 자식과도 같은 것이라는 것을 어딘가에서 보고 들은 것 같습니다. 그게 사실일까. 미처 알지도 못했고 알 수도 없었습니다. 이제야 조금 알아가는 것일까요. 드라마의 어느 한 장면들이 스쳐갑니다. 작가는 울분을 참지 못하고 소리칩니다. 왜 내가 쓴 대로 하지 않는 거냐고. 그 정도로 퀄리티가 있는 것은 아니기에 그에 견줄 수야 없지만, 내가 쓴 글을 단박에 알아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더 경이롭기까지 했습니다.


 이제와 뭔 소용이 있을까 마는 몰라도 너무 몰랐던 나의 불찰이었기에 그 어느 누구를 탓할 수도 탓하지도 않습니다. 글을 보낼 때면 의례히 붙는 단서 "편집 방향에 따라 원고를 윤문하여 실을 수 있으니 양해 바랍니다." 그랬습니다. 분명히 보았고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나의 부족했던 부분들을 발견하여 윤문하여 준다면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이겠습니까.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더구나 겨우 1년 차인 글린이로서 감사한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메일을 확인하지 않은 탓에 책자에 실린다는 것을 미리 알지도 못했던 본인 글에 무심했던 필자. 왜 주문하지 않은 책이 내게 온 걸까. 그 의문도 잠시, 보낸 지 두 달이 지나서야 받아 든 책자를 보며 아~ 이곳으로 글을 보냈었지. 별생각 없이 채택되지 않았지만 글을 보내준 그 마음이 가상하여 보내준 것이라 여겼습니다. 세권이나 되는 이 책자를 누구에게 권해볼까 생각하다 우선 대충 한 장씩 넘겨보았습니다. 많지 않은 분량에 누구나 읽을 수 있고 심플하니 내용도 좋았습니다.


 다시 펼쳐놓고 처음부터 보내주신 분들께 감사하는 마음까지 한껏 얹어 한줄한줄 정성껏 읽어 내려갔습니다. 아~ 글은 이렇게 쓰는 거야. 감동이 물밀듯이 밀려왔습니다. 이러니 내 글이 실리지 못한 거야. 단숨에 깨닫고야 말았습니다. 어느 순간, 글 제목이 어디서 본듯한 문장, 내용을 몇 줄 읽기도 전에 알았습니다. 내 글이라는 것을. 자식 같다던 내 글이라는 것을.  잠시 한 기분이라는 것이 이런 건가.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읽어 내려갔습니다.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아 좀 더 시간을 두고 퇴고해서 보낼 것을. 너무 급하게 보내버린 것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그런데 왜 내 자식이 아닌 것 같지. 왜 한 번에 확신하지 못했을까. 그 의문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우연히 알게 된 월간지에 글을 보냈습니다. 책자는 다르지만 두 번째 도전이었지요. 첫 번째와 마찬가지로 조금은 다른 경험들, 다른 글세상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 매월 주제가 주어지기에 저녁마다 산책을 하며 그에 맞는 글감을 찾아 헤매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과부하가 걸리기 직전에서야 초고를 쓸 수 있었습니다. 너무 늦은 탓에 퇴고는 다음날로 미루고 오랜만에 마음 편히 숙면을 취했습니다. 다음날 다시 노트북을 켜고 살펴보다가 이 글을 꼭 보내야 할까. 이 부분에서 갑자기 망설임이 끝없이 나를 흔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오늘 결정하지 않으면 며칠 준비한 글이 날아갈 것만 같았습니다. 다시 한번 퇴고를 하고 버려지기 전에 서둘러 보내버렸습니다.


 글을 쓰면 며칠씩 저장을 해두고 꺼내보고 또 꺼내보며 퇴고의 시간 속에서 푸우욱 숙성을 시키는 편입니다. 그런데 그 과정을 무시했으니 어느 정도 글이 달라질 수는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뒷부분에서 글의 연결이 생각했던 것과 다르고, 내가 왜 이렇게 썼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제야 정신을 가다듬고 메일을 열어보니 이미 한 달 전에 글이 채택되었다는 메일이 와 있었습니다. 급히 보낸 메일을 찾아 원본확인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원래의 제목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글 속의 한 문장이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쓰는 형식 또한 달라져 있었고요. 초고와 퇴고에서도 글 제목 때문에 고민을 했었는데  더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볼 것을... 이해가 되지 않았던 부분들은 역시 여기저기 잘려 나가고 내 의도와 다르게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내 글이 아팠을 것 같습니다.


 그런 것인 줄은 나만이 알고 있을 뿐 독자들은 모를 것이니 다행이라 해야 할까요. 그렇다고 글의 내용이 확 달라진 것도 아니니, 엄밀히 따지자면 그렇게 황당해하고 해일을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앓는 소리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이렇게 경험하며 무뎌져야 한다고 스스로를 달래었습니다. 이것이 현실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수없이 되뇌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경우가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몇 개월 전 첫 번째로 채택된  곳에서는 친절하게 문자와 전화까지 주시며 양해를 구했습니다. 또한 글도 더 매끄럽게 다듬어졌을 뿐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아서 오히려 배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물론 사람마다 역량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요. 아주 잘 쓰고 좀 덜 잘 쓰는 차이, 이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쓰고 또 씁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애써 쓴 나의 글들은 너나없이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글이 월등하게 훌륭하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다만 흔하지 않은 스토리로 누군가의 마음을 잠시 촉촉하게 해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은 있었습니. 아니 누구를 위해서라기보다 나 자신을 위해서 썼다고 하는 것이 을지도 모릅니다. 글을 쓰며 실컷 눈물을 흘리고 나니 무거웠던 마음이 훨씬 더 가벼워졌거든요.


 생각들이 여기에 도달하자 뾰족했던 마음이 조금씩 수그러들고 평화가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부산했던 생각들도 차분해지며 잔한 파도가 되어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랬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의 차이였습니다. 충분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선택해 주셨고 독자들이 더 좋은 글로 만날 수 있도록 애써 주신 것이라 여겨지니 그제야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너무 감사했습니다. 보내진 글이 사장되지 않고 세상에 빛을 볼 수 있도록 해주신 점에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어쩌면 여러 작가님들께서도 이런 경험이 있지 않았을까요.  참 궁금해지는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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