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출 것 같지 않던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안녕을 고하는 겨울초입에 들어서야 또다시 내 눈에 들어와 결심을 했다. 세상밖으로 내 보내자고. 도서관 신간코너에 떡! 하니 꽂혀있는 책을 보며 어찌나 반가우면서도 미안하던지 오늘은 그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지려나.
이명희 작가의 "커피는 내게 숨이었다"는우연히 댓글이 오가다 류귀복 작가님(나는 행복을 촬영하는 방사선사입니다)의 추천으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5월 초에 도서관에 예약을 했건만 무려 한 달이나 더 지나서야 받아볼 수 있었다. 어차피 책장에 들일 거였다면 차라리 일찌감치 주문할 것을. 읽는 내내 기다린 한 달이 억울하단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렇게 숨통이 트일 수 있는 거였다면 말이다. '매일을 커피, 수영, 머리숱 진짜 많은 뇌성마비 열두 살 아들과 함께 살아온 이야기.' 이 한 문장으로도 가슴이 미어진다. 도대체 왜 무엇이 그녀를 이리도 아프게 했을까. 울고 또 울어도 해결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그녀를 구한 건 오직 한 잔의 커피였다.
커피에 투영했던 그녀의 삶
한 모금의 환상이 불러온 이야기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여기 와서까지 아픈 사람을 떠올리긴 싫다. 나는 지금 아픈 아이의 엄마로 사는 게 지긋지긋해 여기로 달려온 거였다. 도망치고 싶지만 도망칠 수 없어 도망친 셈이라도 쳐 보려 여기로 뛰쳐나온 사람이었다. p.46.
어느 누가 이 사람의 지금을 그르다 말할 수 있을까. 커피 한 잔으로 숨이라도 쉬어 보겠다는데, 잠시라도 도망칠 순 없지만 도망쳐 보고 싶은 그 심정을 손톱만큼이라도 이해한다 말할 수 있을까.
자식은 내 살점과도 같다. 어느 부모가 아픈 자식을 낳고 싶었을 것이며, 살점을도려내는듯한 그 아픔을 어찌 이해한다 말할 수 있을까. 그런 자식이라도 내자식이고, 장애가 있건 없건 그저 내 자식인 것이다. 내 목숨이 붙어있는 한 언제까지일지 모를 자식의 온 미래를 받쳐 주어야 한다. 그것이 가끔은 숨이라도 제대로 쉬어야 가능해지는 일이지 않을까. 다만 마음을 살피고 나를 마주하는 일은 최대한 미뤄두고 싶은 그녀의 그 간절함을 어찌 헤아려야 할까. 아무리 지긋지긋하다 토로한들 차마 속시원히 토해내지 못하는 그 무언가를 가늠할 수 없음에 목이 멘다.
두 발 딛고 서 있는 곳을 두고, 여긴 내가 있을 곳이 아니었다고 뇌까리는 내가 사라지지 않았다. 내 안의 어떤 내가 조금도 희미해지지 않았다. 어떻게든 나를 벌하려는 나와 어떻게든 죗값을 치르려는 내가 내 안에 팽팽하게 살아 숨 쉰다. 그런데 나는 그들을 화해시키지도, 살리지도, 죽이지도 못하고 있다, p.22
뜨거운 태양이 몸을 사리며 떠나던 시각, 횡단보도 앞의 끊어지는 대화 속에서 하얗고 고운 손이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차마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저 너머에서 들려오는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곱게 화장을 한 그녀는 수화를 하고, 친구인듯한 상대는 다정스럽게 눈을 맞추며그녀의 말을 듣고있었다. 입가에는 미소가 가득하고 한마다 한마디 정성스럽게 받아주는 그 모습이어찌나아름답던지 내 눈에서는 기쁨인지 감격인지 모를 액체가 뚝뚝 떨어질 것만 같았다.
어느 날 언니의울음 가득한 목소리가 전화기를 타고 들어왔다.
'우리현이가 한쪽 귀를 못 듣게 되었다는구나.'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니!'
청천벽력과도 같은 그 소리에 그저 전화기를 붙잡고 하염없이울어야 했다.
급작스런 일 앞에서 조카내외는 간신히 마음을 추스르고인공와우수술을 시켰건만얼마 지나지 않아 나머지 한쪽마저 수술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아직 초등학생인 현이에게는 너무도 가혹한시련이었다. 우리 현이도 저렇게 자랄 수 있겠지. 저런 좋은 친구를 만날 수 있을 거야. 그래서 언젠가는세상은 살아볼 만한 거라고 말해줄 수 있겠지.장애의 경중은 존재하겠지만 그 아픔을 이해한다고, 그 수고를 다 안다고 말할 수는 없어도 가장 소중한 내 자식을 품으며 지키고 싶은 것을 지켜온 그녀에게 존경의 마음을표한다.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편견 없이 누구에게라도 친절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되기를 꿈꾸며...
* 오래전에 써 놓은 글인데 이제야발행합니다.많이 늦었지만 류귀복 작가님 책 추천감사드립니다.